[WIKI 컬쳐] 50주년을 맞이한 영화 ‘러브 스토리’... 대대적 성공 vs 신랄한 풍자 대상
[WIKI 컬쳐] 50주년을 맞이한 영화 ‘러브 스토리’... 대대적 성공 vs 신랄한 풍자 대상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21-01-05 06:54:22
  • 최종수정 2021.01.02 1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연한, 로맨틱 감성 멜로 영화 『러브 스토리』는 1970년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 이후 이 영화는 억지 눈물을 짓게 만든다는 비판과 수많은 패러디들을 양산하고 있다.(사진=파라마운트 영화사)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연한, 로맨틱 감성 멜로 영화 『러브 스토리』는 1970년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 이후 이 영화는 억지 눈물을 짓게 만든다는 비판과 수많은 패러디들을 양산하고 있다.(사진=파라마운트 영화사)

작년은 불세출의 명작 『러브 스토리』가 출간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작년 말 이와 관련한 특별 기고문을 게재했다. 다음은 이 기고문의 전문이다.

50년 전 단순하면서도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연예 산업을 발칵 뒤집어놓았었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연한 신파극 풍의 영화 『러브 스토리』는 박스 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영화의 원작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죽어가는 25살 여자를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에릭 시걸이 쓴 『러브 스토리』의 소설과 영화 각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작품이 등장한 1970년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미국 내에서는 민권운동의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던 때였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사랑의 힘’을 강조하는 감상적인 작품이 천연덕스럽게도 세상에 얼굴을 들이민 것이라고, 에릭 시걸의 딸이자 작가인 프란체스카 시걸은 말한다. 그녀는 정직한 진짜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말한다. 소설 『러브 스토리』의 50주년 기념판에는 그녀의 서문이 들어있다.

131페이지짜리 소설 『러브 스토리』를 펴낼 때 에릭 시걸의 나이는 30살이었고, 그는 예일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25살에 아내를 암으로 잃은 제자에게서 따왔다. 영화에서 라이언 오닐이 연기한 주인공 올리버 바렛 4세는 감수성이 풍부한 부잣집 아들로 하버드 대학의 하키 선수였다.

작품 속의 올리버는 흥미를 유발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걸은 올리버는 대부분 실제 인물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를 모델로 그렸으며, 부분적으로는 앨 고어(Al Gore)가 반영되기도 했다고 말한 바가 있다. 토미 리 존스는 영화에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시걸은 이 두 사람에 대해 그들이 하버드 학생일 때 알게 되었다. 몇 년 뒤 시걸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조사관인 테리 렌즈너를 모델로 삼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알리 맥그로우가 연기한 여주인공 제니는 빵가게 주인의 딸로 도도한 성격을 지녔다. 그녀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다니며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걸은 1970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제니는 자신이 하버드 대학생 시절 사귀던 여성을 모델로 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올리버, 당신은 재벌집 아들이고,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여자야.”

작품 속의 제니는 이렇게 농담을 한다.

두 사람이, 올리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눈밭에서 장난치고, 다투기도 하면서 깊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매혹시킨다. 그들이 동거 생활에 돌입하면서 제니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병은 소설에서만 백혈병이라고 간단히 언급된다.

“진부한 스토리였지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알리 맥그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자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러브 스토리』가 크리스마스를 기해 대대적으로 상영되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엄청난 인파가 매표소에 진을 쳤다.

1970년 영화 관객수는 감소 추세에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러브 스토리』가 난관에 봉착해있던 파라마운트 영화사에 단비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여전히 극장에 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하나의 현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더 힐러가 감독한 영화 『러브 스토리』는 아카데미상의 6개 분야 후보에 올랐으며, 프란시스 레이가 만든 주제가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또 이 영화는 골든글로브상에서는 최고 드라마상과 맥그로우와 오닐 각각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맥그로우는 빠르게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갔다.

베스트셀러 로맨스 소설가 수잔 엘리자베스 필립스는 자신이 알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은 다음 이 영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소설과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20대 초반이었던 필립스는 눈물을 찔끔거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러브 스토리』는 정말 지독한 눈물샘이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필립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큰소리로 읽어줬지요. 눈물이 흐르지 않은 대목이 없었어요. 우리 부부는 지금 결혼한 지 50년 됐어요.”

그런데 필립의 남편은 이 순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웃었다.

46년 만에 하버드대를 찾은 영화 '러브스토리'의 두 주인공. 사진=연합뉴스 AP
46년 만에 하버드대를 찾은 영화 '러브스토리'의 두 주인공. 사진=연합뉴스 AP

끊임없이 회자되는 『러브 스토리』의 명대사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알리 맥그로우조차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는 이 말의 진실을 느낄 수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본질을 비껴가는 말입니다. 본질은 정말로 상처를 깊게 인식하는 데 있으며 …… 그러므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 미안해.’라고 말하고 나가버리는 단순한 사과보다는 훨씬 큰 의미가 숨어있는 겁니다.”

요즘도 맥그로우는 50년 전 영화 촬영 당시로 돌아가 이 말의 참뜻을 물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말도 안 되는 대사였어요. 그러나 나는 대사를 했고, 지금도 그 대사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밖에도 『러브 스토리』 때문에 생겨난 많은 패러디들을 맥그로우는 보아왔다. 그 중에서 그녀는 캐롤 버넷과 하비 콜먼이 등장하는 ‘심슨네 가족들’이라는 패러디 물을 가장 좋아한다.

“정말 재미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심슨네 가족들’ 중 호머와 마지 심슨은 영화 『러브 스토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보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인 바트 심슨은 도입부 대사 “죽어가는 25살 여자를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를 듣자 “아이고, 썩은 냄새 풍기기 전에 그 여자를 묻어버려야지!”라고 소리를 질러 엄마 아빠를 경악하게 한다.

‘심슨네 가족들’의 작가들 중 상당수가 『러브 스토리』가 촬영된 하버드 대학을 다녔는데, 하버드에서는 『러브 스토리』가 여전히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입생들이나 일반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하버드 대학의 대학 생활을 소개하는 봉사 활동 동아리 ‘크림슨 키 소사이어티(Crimson Key Society)’는 해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록키 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스타일의 영화를 상영한다.(이 행사는 코로나19로 금년에는 취소되었다.)

이때 히피 복장을 한 상급생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야유를 보낸다. ‘크림슨 키 소사이어티’의 대표인 데이비스 베일리는 영화 내용 전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매 10초마다 상급생들이 집단적으로 소리를 지르든 아니면 개인적으로 소리를 지르든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합니다. 일부는 화면을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베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너무 신파조이기 때문이지요.”

지극히 감상적인 신파조 작품이라는 비판은 1970년 『러브 스토리』가 최초로 등장했을 때부터 비평가들의 단골 메뉴였다. ‘허위’라거나 ‘진부하다’거나 ‘억지로 지어낸 느낌이 강하다’는 비판을 달고 살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에릭 시걸의 베스트셀러는 대중문화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계가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되었다.

유대인 랍비의 아들로 태어난 시걸은 뉴욕에서 자랐다. 『러브 스토리』가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시걸은 플라톤과 플라우투스(Plautus)를 주제로 학문적 연구 업적을 남기기도 했으며, 예일 대학에서의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신문 연재만화 ‘둔즈베리(Doonesbury)’의 제작자 게리 트뤼도는 대학 시절 시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시걸의 강의가 학생들을 열광시켰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1972년 시걸은 예일 대학에서 해임되었다. 이와 관련해 제자였던 게리 트뤼도는 2010년 시걸이 사망한 직후 동창회지에 글을 써서 ‘불공정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금요일 밤 자니카슨 쇼에 나가 몸에 꽉 끼는 가죽 바지를 입고 여자 스타와 시시덕거리고 나서 월요일 아침 대학 강의실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예일 대학 측은 『러브 스토리』의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공과 에릭 시걸 교수의 해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연관성을 부인한다.

에릭 시걸의 딸 프란체스카 시걸은 아버지가 예일 대학에서 임기를 마치지 못한 사실을 두고두고 괴로워했다고 말한다. 그는 하늘이 무너질 정도의 심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시걸은 『러브 스토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에릭 시걸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을 썼다는 말이다.

로맨스 소설가 수잔 엘리자베스 필립스는 1970년 무렵의 비평가들은 대중의 인기와 연관된 작품들은 무엇이나 혐오했다고 말한다.

“당시의 정통 문학계는 예술 작품이 이런 식으로 엄청난 대중적 공감을 얻었다는 그 자체를 경멸했어요.”

필립스는 이렇게 말했다.

“영감은 지적이어야지 감성적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러브 스토리』가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가 수없이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가야하는 영화라고 평했다. 또, 르몽드 지는 “아무도 감히 쓸 생각을 못하지만,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소설”이라고 평했었다.

알리 맥그로우는, 눈물을 자극하는 소재가 홍수인 현 시대의 관객들이 과연 『러브 스토리』처럼 단순한 사랑과 상실을 다룬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릴지 궁금하다.

“전례 없이 자동화된 오늘날 세상에서 정말 끔찍한 일은 우리가 인간의 감정과는 반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알리 맥그로우는 요즘도 『러브 스토리』에 너무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언제나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아, 그 영화에 나왔던 분이시지요? 왜 다른 영화를 찍지 않나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내가 죽어가는 늙은이라는 사실은 계산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dtpchoi@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