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87) 주한미국대사 화형식… 광주민주화운동 방조 의혹
청와대-백악관 X파일(87) 주한미국대사 화형식… 광주민주화운동 방조 의혹
  • 특별취재팀
  • 승인 2021.01.27 07:03
  • 수정 2021.01.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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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1986년 10월.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5년의 임기를 마친 후 귀환하면서, 제임스 릴리 대사가 후임자로 서울에 오게 됐다.

1928년 중국에서 태어난 릴리 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미국 육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중앙정보국에서 약 30년간 근무한 정보통이었다. 중국어에도 능통한 그는 다른 대사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중국과 아시아권 정보에 강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능력과 별개로 주한미국대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자리였고, 미국에 대한 반감의 화살은 서울에 머물던 주한미국대사에게 향하곤 했다.

릴리 대사가 공식 부임하기 전부터 학생들은 ‘신임 릴리 대사 화형식’을 거행했다. 이는 릴리 개인이 아닌 미국 정부에 대한 항거의 표시였다.

1986년 3저호황을 토대로 성장일로를 구가하던 전두환 정권의 경제개발 전략은 한국에는 플러스가 됐지만, 미국과는 엄청난 무역 불균형을 초래했다. 미국에서는 목축업자, 조선업자, 금융업자, 보험업자, 영화 제작자들이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자유를 한국에서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들끓었다.

반면, 한국 정부 관리들과 학생들은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대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등쳐먹는 일’로 간주됐다.

미국 정부, 주한미국대사관에 대한 가장 큰 반감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미국이 신군부를 방조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주한미국대사가 전두환 정권을 엄호하는 ‘총독’과 같은 흉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릴리 대사는 부임하자 마자 재야 인사들을 만나며 자신이 인계받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상황에 대해 최대한 설명하려 애썼다.

제임스 릴리 대사는 한국에 부임하면서 '화형식'으로 환영 인사를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불개입 해명을 위해 애썼던 그는 2009년 타계했다. [연합뉴스]
제임스 릴리 대사는 1986년 한국에 부임하면서 '화형식'으로 환영 인사를 받았다. 한-미 관계 회복을 위해 애썼던 그는 2009년 11월 타계했다. [연합뉴스]

다음은 릴리 대사가 월리엄 글라이스틴, 리처드 워커 전 대사로부터 인계받아 재야 인사들에게 제시했던 미국의 입장이다.

한국민들은 1980년 5월 18일 0시 1분을 기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려 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 대사관은 불과 3시간 전인 5월 17일 저녁 9시에 통보받았다.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러한 통보를 받고 크나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일부 인사들은 또 미국의 정찰 능력으로 볼 때, 미국이 분명히 한국군의 병력 이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실질적인 위협 세력인 북한에 대한 동태 파악이었으며, 한국군의 이동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계엄당국의 명령에 따라 광주사태 초기 현지에 출동한 한국 특전사 병력은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OPCON) 밖에 있었다. 이 특전사 병력은 현지에서 발생한 최악의 폭력 사태에 책임이 있었다. 이 병력은 한국에 침투하는 무장 공비나 기타 침략군에 대항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국군 가운데 유일하게 폭동 진압훈련을 실시했던 정규 부대인 20사단도 OPCON의 대상이 아니었다. 20사단은 OPCON에서 해제됐기 때문에 미국은 20사단의 병력 이동을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을 권한이 없었다.

한편으로, 신군부가 광주에서 취한 조치들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했던 미국의 목소리는 계엄사령부의 언론, 통신 통제 때문에 한국민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한국민들은 워싱턴의 국무부와 국방부가 잇따라 내놓은 ‘폭력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물론, 서울의 미대사관이 발표한 성명조차 접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신 보도들도 삭제됐다.

릴리 대사는 특히 ‘미국은 광주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한국군의 모든 움직임을 승인했다’는 계엄당국의 발표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릴리 대사의 호소는 1989년 3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도 계속됐지만, 재야 인사들과 학생들의 의심을 거두기엔 역부족이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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