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삶과 죽음 사이는 존재하는가' 인권위, 헌재에 묻다
[WIKI 프리즘] '삶과 죽음 사이는 존재하는가' 인권위, 헌재에 묻다
  • 윤여진 기자
  • 기사승인 2021-02-10 16:42:27
  • 최종수정 2021.02.04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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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7조 '기본권은 법률로만 제한한다'
헌재 다수의견, 기본권은 본질과 비본질 합
비본질은 법률로 제한한다는 법률유보원칙
소수의견, 본질로만 이뤄진 기본권 존재해
생명권 제한은 곧 박탈, 본질만 있다는 증거
기본권 사이에 우열없다는 다수의견에 배치
인권위 "생명권, 기본권中기본권" 헌재 공략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인간의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 일부다. 기본권에도 계급 피라미드가 있으며 꼭대기엔 생명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헌재는 기본권의 높고 낮음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이뤄진 형법 제250조 위헌심사에서 헌재 소수의견은 이같은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사형제를 유지하는 3개국(한·미·일)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책임에서 헌재는 자유롭지 않다. 헌재에게 과거의 소수의견을 현재의 다수의견으로 바꾸는 출구전략을 넌지시 일러준 것이라고 이번 인권위 의견표명을 독해하는 이유다. 

인권위는 의견서에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라며 "인간의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 보장할 의무만 있을 뿐, 이를 박탈할 권한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고 적었다. 생명권 제약은 곧 상실을 뜻하고 인간의 존엄함을 명한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는 뜻이다. 사형제 폐지 정당성을 시적으로 표현한 2010년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위헌의견을 떠올리게 한다. 

2010년 2월 25일 헌재가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사형을 규정한 형법 제250조를 합헌결정할 당시 위헌의견에 선 김 전 재판관은 "삶과 죽음 사이의 중간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말을 남겼다. 김 전 재판관은 "생명은 제한되는 순간 사라지므로 생명을 제한하는 것은 곧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생명권은 그 내용이 본질적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으로 구별될 수 없는 단층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 '철학하는 자세'로 평가할 수 없는 말이다. 헌재가 위헌심사 핵심기준으로 삼는 헌법 제37조 2항 기존 해석을 뒤집는 말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는 원칙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예외로 구성된다. 예외 규정은 '기본권은 본질적인 것과 비(非)본질적인 것으로 구성된다'는 속뜻을 가진다. 때문에 기본권 비본질은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률유보원칙이 이어진다. 기본권 내부에 우열이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기본권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는 말이 된다. 입법권 아래에서 모든 기본권은 제한될 수 있는 탓이다. 헌재는 이같은 법리에 따라 '절대적 기본권'을 부정한다. 
 
김 전 재판관 의견은 헌재 공식 입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생명은 조금의 제약이 가해져도 사라진다. 존재만이 생명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주거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인간의 생활과 사고를 보장한다면 생명권은 말 그대로 생명을 담보하는 까닭이다. 생명권을 본질과 비본질로 나눌 수 없다면 법률로 제한은 애초 가능하지 않다. 김 전 재판관은 "제37조 제2항의 전단에 의하면 생명권도 제한할 수 있지만 그 후단에 의하면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고민을 드러냈다. 삶을 가르는 순간 죽음이다. 이같은 냉혹한 현실을 인정 않는 합헌의견을 두고 그는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김 전 재판관 문장이 시적이라면 김희옥 전 재판관 문장은 사회과학적이다. 그 역시 별도 위헌의견을 내고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는 함부로 사회과학적 또는 법적인 평가가 행하여져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생명권엔 법률유보원칙 적용이 어렵다는 얘기다. 25년 전 유이(有二)한 위헌의견을 낸 조승형 전 재판관도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서는 부정적인 어떠한 사회과학적 평가나 법적인 평가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조 전 재판관은 나아가 헌법 제37조 2항의 원칙과 예외를 전복한다. 조 전 재판관은 헌재가 1996년 11월 28일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형법 제250조를 합헌 결정할 때 법률유보원칙을 재해석했다. 그는 "헌법 제37조 제2항 본문은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함에 있어서는 입법목적의 정당성, 입법수단의 필요성 등 제(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제1차적이고 원칙적이며 상대적인 기본권 제한의 한계규정을 정한 것"이라며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는 위와 같은 상대적인 한계규정을 준수하더라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최종적이고 예외적이며 절대적인 기본권 제한의 한계규정을 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권 본질을 제한할 수 없는 게 절대규칙이고, 제한 수단을 법률로 정한 게 상대규칙이란 취지다. 이같은 해석에 따르면 본질로만 가득한 기본권은 존재한다. 김종대 전 재판관을 고민하게 한 모순은 사라진다.  

두 차례 헌재 결정에서 위헌의견은 이제껏 단일한 안을 내지 못했다. 김종대·김희옥·조대현 전 재판관은 생명권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원칙상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타협했다. 반면 김진우·목영준·조승형 전 재판관은 절대적 기본권으로까지 승격을 시도한다. 두 갈래 안에서도 이들은 위헌의견을 두 명 이상 의견으로 내놓지 못하고 나홀로 의견을 냈다. 그만큼 관습으로 굳어진 사형제를 단번에 위헌이라는 이름과 생명권이라는 칼로 해부하기는 어렵다. 이번 인권위 의견표명은 이제껏 흩어져있던 소수의견을 기본권 피라미드론(論)으로 한데 모은 것이다. 남은 건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재구성하는 헌재의 결심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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