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백운규 구속영장 기각 배경엔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 판결
[WIKI 프리즘] 백운규 구속영장 기각 배경엔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 판결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2.09 17:56
  • 수정 2021.02.1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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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전담, 직권남용죄 '의무 없는 일' 별도 입증 요구 판례 인용
구속심사인데 '혐의소명' 아닌 '범죄증명' 판례 가져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9일 새벽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앞서 검찰이 청구한 백운규(사진)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례적으로 '569자 이유'를 공개했다. 전날 6시간 넘게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심리한 오 부장판사는 사전구속 사유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검사가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부족" "범죄혐의에 대하여 다툼의 여지"를 언급하며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를 주문했다.

오 부장판사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한 백 전 장관 혐의는 무엇일까. 백 전 장관이 받는 혐의는 '산업부 장관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에 의무 없는 일인 원전 월성 1호기 즉시 가동중단과 여기에 필요한 경제성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지난 4일 법원에 구속영장청구서를 제출하면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범죄사실로 기재했다. 오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죄 구성요건, 원인 '공무원의 직권남용'과 결과 '사람의 의무 없는 일'은 "모두 증명되어야 하는데"라며 그러지 못함을 시사했다. 이 부분은 지난해 1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낼 때 박상옥 대법관이 '같은 결론, 다른 이유' 별개의견으로 밝힌 대목과 같다.

전원합의체는 김 전 실장이 직권을 남용해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문화체육관광부에 '좌파 문화예술인 문화예술기금 지원배제'를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문예기금 지원 여부를 심의하는 주체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는 입증이 없다고 했다.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은 박 대법관 역시 "형법 제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충족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및 그로 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되어야 한다"고 설시했다. 직권남용이 입증됐다고 해서 의무 없는 일도 입증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직권남용 상대방이 민간인이 아닌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이라면 그들의 행동반경을 법으로 제한하는 법적 의무가 존재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들에게 법적 의무가 없다면 직권남용 결과인 의무 없는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 부장판사는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및 그로 인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되어야 하는데"라며 일부 조사를 바꾸는 것 빼고는 박 대법관 의견을 그대로 가져왔다. 박 대법관은 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직권' '남용' '의무'와 같이 광범위한 해석의 여지를 두고 있는 불확정개념을 그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해석·적용할 때에는 헌법 제13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의 원칙 및 최소침해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오 부장판사 역시 "불확정개념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범죄를 해석·적용할 때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의 원칙 및 최소침해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함"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백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했다고 하더라도 한수원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는 검찰이 증거를 충분히 찾지 못했다는 취지다. 현직 대법관 중 유일 검사장 출신인 박 대법관 의견을 인용해 검찰수사가 미진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피의자 사전구속 요건은 범죄증명이 아닌 혐의소명이라는 데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정한다. 반면 같은 법 제201조 1항은 사전구속 사유로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제시한다. 오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 직권남용 혐의는 '소명 부족'이라면서도 입증 수준이 높은 '증명 부족' 대법관 의견을 끌어온 것이다. 

때문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발부받으려면 백 전 장관이 한수원 관계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추가 증거를 충분히 찾아야 한다. 오 부장판사가 참조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다양한 준비과정과 검토 및 다른 공무원, 부서 또는 유관기관 등과의 협조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라며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이 규율하지 않는 일종의 진공(眞空)이 존재하는데 여기에선 관행이란 이름으로 허락되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탈(脫)원전 정책 집행을 목적으로 산업부와 한수원이 서로 협조한 것이라면 애초 직권남용죄 적용은 불가했다는 말이 된다. 

산업부 장관 감독을 받는 한수원은 탈원전 정책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정책 집행 상대방인가. 전원합의체는 "협조 또는 의견교환 등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필요하고, 동등한 지위 사이뿐만 아니라 상하기관 사이,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검찰이 백 전 장관에게 추가로 적용한 혐의엔 업무방해도 있다. 한수원이 피해자란 얘기다.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업무방해 혐의도 입증할 수 없는 구조다. 대전지검은 영장 기각 후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렵지만, 더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는 짧은 입장을 발표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되는 경우 기각사유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불가피하다. 백 전 장관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못하면 청와대에서 탈원전 정책 수립을 책임진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 '윗선' 수사는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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