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朴 인사발표 전 文 사전결재 있었나 靑 "대통령 인사는 통치행위" 주장하지만...
[WIKI 프리즘] 朴 인사발표 전 文 사전결재 있었나 靑 "대통령 인사는 통치행위" 주장하지만...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2.23 18:49
  • 수정 2021.02.2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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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례로 본 '법적 면제' 통치행위 인정 가능성은
대북송금 사건 때 남북정상회담만 "통치행위 인정"
현대상선 4만5000달러 송금행위는 "통치행위 부정"
통치행위는 국가에 '중대한 위험 발생' 경우만 성립
대법, '통치행위에 이르는 과정' 통치행위 범위 아냐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신현수(왼쪽) 민정수석. [사진=연합뉴스]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신현수(왼쪽) 민정수석. [사진=연합뉴스]

청와대는 신현수(사진) 민정수석 사의 표명 소동이 일단락됐다는 입장이다. 22일 정상 출근한 신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차담회에서 "거취 문제는 대통령에게 일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대검검사급 검사) 인사 전 대통령 결재가 있었는지 청와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민정수석 사의 사태 배경엔 사정 업무를 총괄하는 대통령 참모로서 주무장관의 인사권 침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신 수석 지인들은 해석한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문 대통령 사전결재 없이 인사발표를 강행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동아일보>는 해당 의혹을 최초 보도했고 청와대는 20일 "대통령 재가 없이 법무부 인사가 발표되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때 '대통령 재가'는 사전결재와 사후결재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하루 뒤 "대통령의 인사 재가 과정은 통치행위다.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을 피해갔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박 장관은 "제 머릿속엔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는 개념조차 없다. 청와대는 '재가됐고, 결재했다'고 표현했다. 그걸로 갈음하겠다"고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박 장관 말과 다르게 청와대 관계자 입에서 '결재'는 등장한 적 없다. 청와대가 언급한 '재가' 관련 통치행위 주장도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대통령이 검사 보직을 결정하는 행위는 위법이 발견되면 효력은 사라질 수도 있는 행정행위인 까닭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통치행위를 인정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사법기관이 명시적으로 인정한 통치행위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헌재·1996년), 남북정상회담(대법·2004년), 대통령 파병결정(헌재·2008년) 뿐이다. 대법원은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인정을 지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하며, 그 판단은 오로지 사법부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며 통치행위 판단 주체는 통치행위를 주장하는 쪽이 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유지한다. 

설령 대통령 인사가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대통령 인사 재가 과정' 역시 통치행위로 보기는 쉽지 않다. 통치행위는 통치권자의 행위만을 가리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대통령 사전결재 없이 인사를 발표했고, 문 대통령이 사후 추인했다면 여기서 통치행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나 '대통령 인사'다. 이같은 구분 짓기는 참여정부 때 송두환 특별검사팀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 대법원 판결에 잘 나와 있다. 

2004년 3월 26일 대법원(주심 김용담 당시 대법관)은 대북송금이 불법인데도 편의를 봐준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라면서도 "송금한 행위 자체는 헌법상 법치국가의 원리와 법 앞에 평등원칙 등에 비추어 볼 때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달리 판단했다. 국민의정부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현대상선이 북측에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하는데 산업은행 대출 등 도움을 줬다. 현대상선은 대가로 대북 사업권을 약속받았다. 송금행위는 재정경제부장관에게 신고되지 않았고 통일부장관 승인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대법원과 헌재는 국가에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예외적으로 통치행위를 인정한다. 유신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발령한 긴급조치 제1호를 2010년 대법원은 위헌으로 규정하면서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는 통치행위 원칙을 정했다. 헌재는 앞선 1996년 문민정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도입한 것이 위헌인지 쟁점이 된 사건에서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에 처하여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를 국가긴급권 발동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번 검찰 인사를 앞두고 국가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다는 징후는 없었다. 때문에 청와대의 통치행위 주장은 역설적으로 위법 소지를 자인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가능케 한다. 통치행위는 법적 판단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법심사 예외를 주장할 때 쓰이는 법률이론이다. 대통령 인사 과정에 불법이 없었다면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 결국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청와대가 불러일으킨 모양새다. 법조계 일각에서 대통령 인사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신 수석이 박 장관 감찰을 건의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하자 사표를 낸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입으로 '감찰을 건의한 적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힌 상태다. 문 대통령, 박 장관, 신 수석 세 사람 중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번 사태는 청와대 희망사항 '일단락'이 아닌 미궁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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