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1) 전두환 ‘시위대 해산 군 투입’ 결심… 레이건 “무력사용 반대” 경고서한 전달 진통
청와대-백악관 X파일(91) 전두환 ‘시위대 해산 군 투입’ 결심… 레이건 “무력사용 반대” 경고서한 전달 진통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4-09 06:25:18
  • 최종수정 2021.04.0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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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서울에서 연일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사태처럼 시위대 해산에 군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미국 정가에 파다하게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백악관이 대책회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6월 17일. 미국 대사관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가 도착했다. 친서는 전두환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군을 동원하면 안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앞서 한국의 김경원 주미 대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정상적인 외교루트인 외무부를 통하지 말고 주한 미국 대사가 직접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국무부에 제시했다. 외교루트를 통하는 것보다 대사가 친서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 대사관의 면담요청을 받은 청와대는 대사관에 일정에 대한 회신을 해주지 않았다. 비서실이 전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안만나는게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청와대는 외무부에 “미 대사관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릴리 대사가 지방문화원 순시 중이던 터라 미 대사관을 방문한 외무부 관리는 해리 던롭정무참사관에게 청와대의 뜻을 전했다.

이에 던롭 참사관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미국 대통령이 귀국의 대통령에게 대사를 시켜 직접 전달하려는 친서다. 더욱이 전달하는 자리에서 구두로 부연설명 하라는 지시가 있다”고 강변했다.

외무부 관리는 “잘 알겠지만, 전 대통령이 대사를 안만나더라도 레이건 대통령의 뜻을 전해들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던롭은 의전을 따지며 목청을 높였지만, 그 관리는 막무가내였다.

관리가 외무부로 돌아간 후, 릴리 대사가 지방 출장에서 돌아왔다.

던롭은 전화로 한국 외무부 관리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통화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전 대통령이 미국 대사를 안만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귀국 대통령이 그랬다는 말을 접수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이 그럴만큼 어리석은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실 수 없어요. 빌어먹을.. 누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 사람 이름을 대요. 당장!”

이 통화는 곧바로 효과가 났다. 곧바로 최광수 외무장관이 대사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날인 19일(금)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는 전화였다.

던롭 참사관의 전화를 받은 외무부 관리는 장관에게 “미국측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 아무래도 대통령께서 대사를 만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보고했고, 장관이 청와대에 직보해 일정을 조율했던 것이다.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더욱 거세져갔다. 사진은 부산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일대에 운집한 시민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더욱 거세져갔다. 사진은 부산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일대에 운집한 시민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물밑에서 미 대사관과 청와대간 ‘면담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격렬한 시위는 전국 각 도시에서 밤새 계속됐다.

서울에서는 군인 한명이 사망했다. 부산에서는 경찰청장이 치안을 위해 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경찰들이 모두 지켜서 더 이상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소문이 급속히 번지기 시작했다.

19일 오전 10시, 전 대통령은 국방장관, 3군 참모총장, 안기부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20일(토) 오전 4시’를 기해 전국 각 대학 캠퍼스와 여러 도시에 전투 태세를 갖춘 군을 배치할 것을 지시했다.
야당 정치인의 구속과 군사재판 개정까지 계획에 들어가 있었다. 각 군에는 계엄령 준비 명령이 하달됐다.

이한기 총리는 “이 나라가 급속히 ‘사회혼란’으로 빠져들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날 12시, 릴리 대사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윌리엄 J 리브시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 오찬 행사에 참석했다. 대사는 “오후에 전 대통령을 예방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대사는 광주의 교훈을 고려해, 리브시 장군과 공동전선을 펴면 한국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하는 사태를 잘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릴리 대사는 점심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면서 리브시에게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시위를 진압하는데 군을 동원하지 말라고 강조하겠다”고 설명했다.

리브시는 듣기만 했다.

대사는 그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였다.

미리 계획됐던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 릴리 대사는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한미연합사령관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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