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청재킷 입고 '최신원 재판' 방청한 문찬석 "율촌이 다 해, 난 조언만"
[WIKI 인사이드] 청재킷 입고 '최신원 재판' 방청한 문찬석 "율촌이 다 해, 난 조언만"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4.25 17:27
  • 수정 2021.04.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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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대 횡령·배임 혐의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첫 공판 스케치
검찰 단계 선임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은 방청석에서 '변론 모니터'
판사 출신 율촌 변호인단, 대법 판례만 아홉 번 인용하는 모두진술
재판 뒤 검사들 "저렇게 뻔뻔하게 얘기하니".. '비공개 답답함' 토로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신원 네트웍스 회장 첫 공판을 방청한 문찬석 변호사. [사진=윤여진 기자]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신원 네트웍스 회장 첫 공판을 방청한 문찬석(오른쪽) 변호사. [사진=윤여진 기자]

"율촌이 다 했어요. 오늘 옷도 이렇게 입고 왔잖아요"

22일 낮 12시 15분쯤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 식당가 앞에서 마주친 문찬석 변호사는 "최신원 회장 변호 계획을 공유했느냐"는 기자 물음에 손사래 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첫 공판기일이 열린 최신원(68·구속) SK네트웍스 회장 재판에서 법무법인 율촌의 변론 프레젠테이션(PT)을 '모니터'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캐주얼 청재킷 차림으로 방청석 끝자리에 앉은 문 변호사는 율촌 소속 이재근 변호사의 모두진술을 찬찬히 들었다. 지난해 8월 광주지검장을 끝으로 25년 검사 생활을 끝낸 문 변호사는 최 회장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직전에 선임됐다. 검찰 고위 간부로 퇴직한 지 6개월 된 전관이 맡은 사건이기에 최 회장 측이 기대한 건 '구속을 막아내는 일'이었다. 지난 2월 17일 최 회장 영장실질심사를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판사가 구속사유를 인정해 문 변호사로선 변호인 역할이 더는 없는 셈인데 이날까지 사임계를 내지 않았다. 율촌이 짠 변론 계획에 관여하느냐고 기자가 물은 이유다. 실제 문 변호사는 재판이 잠시 휴정되자 법원 복도에서 율촌 변호사들을 만나 "협의합시다"라고 말했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초대 단장을 역임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 '다스'의 300억원대 횡령 줄기를 찾아낸 그를 20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최 회장이 포기하기엔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변호사 문찬석'이 해야 할 일은 뭘까. 단서는 "왜 이렇게 뻔뻔하냐"는 특별수사통 검사들의 불편함을 불러낸 율촌의 PT에 있다. 

이날 이재근 변호사는 공소요지를 설명하는 검찰 측 모두진술을 반박하는데 1시간 30분을 썼다. 검찰 모두진술이 20분에 불과했던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분량이다. 이 사건 1심 재판부 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 유영관 부장판사가 변호인 모두진술 중간에 자르고 "5분만 쉬고 합시다" 말할 정도였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재판에 넘긴 여섯 가지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며 근거로 꼬박꼬박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최 회장처럼 그룹 총수가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한화'와 최 회장이 회장직을 지낸 SK텔레시스처럼 자본잠식 상태인 '쿠팡'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로 간 체면을 차리는 한국 재벌 문화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최 회장의 변론은 노골적이었으며 다급했고 한편으론 치밀했다. 이같은 변호를 선보인 부장판사 출신 이 변호사에게 필요한 건 '검찰의 관점'이다. 

22일 오후 6시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청사를 나서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들이 탑승한 승용차. [사진=윤여진 기자]
22일 오후 6시쯤 재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들이 탑승한 승용차. [사진=윤여진 기자]

이날 변호인은 모두진술에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을 모두 아홉 번 말했다. ① 배임 행위자가 이익을 봤고 회사 역시 이익을 봤다면 배임이 아닌 '합리적 경영 판단'이라는 판례 ② '합리적 경영 판단' 법리에 따라 그룹 내 계열사 간 '지원성 거래'는 적법하다는 판례 ③ 회삿돈을 임의로 사용했지만 즉시 반환이 예정됐다면 횡령죄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없다는 판례 ④ 자본시장거래에서 거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영 행위는 '중요사항'이 아니어서 '고지 의무'가 없고 '착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례 ⑤ '중요사항 고지 의무'는 '거짓기재 때'가 아닌 '거짓기재로 정보 전체 맥락을 상당히 변경할 때' 발생한다는 판례 ⑥ '고지 의무' 위반만으로 사기적 부정거래죄 구성요건인 '기망행위'를 단정하지 말라는 판례가 잇따라 나왔다. 

변호인은 심지어 공판준비절차에서 검찰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인용할 수 있다는 판례까지 언급, 재판부와 검사들을 당황케 했다. 증거채택 전인 피신조서를 변호인이 박학준 전 SK텔레시스 대표이사 반대신문에서 인용하자 검사는 "제시하는 (검찰) 진술조서들을 (변호인이) 부(不)동의해서 제시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이의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제시할 수는 있는데 검찰한테는 (증거채택 부동의를 이유로 증인신문에서 인용) 못 하게 하면 모양새가 그러니까"라며 "풀어서 말하라"고 해 직접인용을 막았다. 하지만 휴정 시간 판례를 재검토했는지 재판부는 "아직 (피신조서) 증거조사가 안 됐어도 피고인 측에서 (직접인용)하는 건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적어도 법리와 판례 검토에서만큼은 변호인이 검찰을 압도한 첫 공판의 풍경이었다. 

22일 오후 6시쯤 재판에 끝난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복귀하는 검사들. [사진=윤여진 기자]
22일 오후 6시쯤 재판에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청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복귀하는 검사들. [사진=윤여진 기자]

대법 판례로 무장한 변호인 PT에 검사들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공판에 출석한 검사들은 이날 오후 5시 40분쯤 재판이 끝나고 승강기에 탑승하자마자 "지금에 와서 밝혀지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밝혀지니까 핑계는 만들기 나름이지" "개인계좌로 받은 게 횡령인데 회계처리를 안 한 거 자체가" "저렇게 뻔뻔하게 얘기하니까..."라며 법정에서 드러내지 못한 답답함을 얘기했다. 율촌 변호사들은 검사들을 피해 계단으로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통신 중계기 회사인 SK텔레시스는 최 회장 시절 'W폰' 사업을 2011년 철수하면서 자금난에 처했고 모회사 SKC는 유상증자 참여를 결정했는데, 유증에 동참하기로 한 최 회장은 SKC 유증 대금을 빼내 자신 몫 유증 대금으로 사용했다. 이때 SK텔레시스 법인계좌에 들어온 SKC 유증 대금은 최 회장 개인계좌에 이체됐다. 최 회장은 3개월 만에 SKC 지분을 모두 팔아 대금 전부를 갚아 횡령이 아닌 '차입과 상환'이란 입장이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SK텔레시스 자금팀 직원에 따르면 당시 자금 거래는 회사 '윗선'의 지시에 따라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 승강기 안 검사들의 대화는 '장부에 없는 개인계좌 회삿돈 이체는 변제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횡령'이란 검찰의 관점을 보여준다. 

최 회장을 구속기소한 중앙지검 반부패수사(옛 특별수사)1부장 전준철 부장검사는 2018년 7월 대검 인권부 검찰연구관으로 파견돼 새로 생긴 인권수사자문관으로 일한 적 있다. 정예 특수통 출신으로 구성된 자문관들은 일종의 '레드팀'(조직의 전략상 취약점을 제시하는 가상의 공격 역할)으로 피의자 변호인 입장에서 대법 판례를 검토해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식으로 일선 특수부 수사와 직관(직접 공판관여)을 탄탄히 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문 변호사는 대검 내 기획부서인 기획조정부 부장으로 자문관 제도 출범과 인선에 관여했다. 문 변호사는 기조부장 재직 뒤 증권범죄합수단이 있는 남부지검 지검장 보임이 유력했으나 검경수사권 조정 정부안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2019년 7월 광주지검장으로 밀려났고, 지난해 2월 전국 지검장회의 발언으로 초임 검사장 자리인 법무연수원 기획부정으로 재차 좌천됐다. 회의 당시 이 지검장은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업무방해)를 받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기소하라는 윤석열 총장 지휘에 불응했었고 문 변호사는 이 문제를 지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비판했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 사건 수사는 지난해 8월 반부패수사2부에서 반부패수사1부로 재배당됐고 답보 상태에 빠졌었는데 올해 2월 전 부장검사가 반부패수사2부장에서 반부패수사1부장으로 이동하면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윤 전 총장을 따르는 특수통 검사들과 각을 세운 '이성윤 중앙지검'이 처음 선보인 특별수사라는 점에서, 최 회장이 윤 전 총장을 지원했던 문 변호사를 선임한 건 의미심장하다. 향후 문 변호사 역할을 검찰의 관점을 사전에 파악해 판사 출신으로 이뤄진 율촌 변호인단에 선(先)제시하는 레드팀으로 보는 이유다. 문 변호사는 사임계를 내지 않고 율촌 변호사들에게 "협의하자" 말한 이유를 묻자 "조언만 하는 거예요"라고 에둘렀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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