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實錄] 홍진수 대산민약연구원장… 외길 40년 ‘민약 현대화’를 이끌다
[名士實錄] 홍진수 대산민약연구원장… 외길 40년 ‘민약 현대화’를 이끌다
  • 유 진 기자
  • 승인 2021.04.28 13:55
  • 수정 2021.04.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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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약 연구 공로 ‘2019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 수상
주 천종산삼으로 산삼환, 산삼탕 만드는 등 섭취법 혁신
홍진수 대산민약연구원장 (대산약촌 대표촌장)
홍진수 대산민약연구원장 (대산약촌 대표촌장) [유 진 기자]

[명사실록]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진통제로 탄생한 아스피린의 원료는 버드나무 껍질이었다. 혈행개선제(은행나무) 간기능 개선제(밀크시슬) 비만억제제(조팝나무) 폐질환 치료제(산꼬리풀) 관절염 치료제(하고초) 등 수백종의 신약들이 식물의 성분을 원료로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만종의 지구상 식물 중 의과학계가 성분을 확인해 치료제로 응용하고 있는 영역은 0.001%도 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만병통치의 효과를 낸다는 ‘산삼’의 경우 그 신비한 성분들이 아직까지도 생물의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땅속뿌리 식물이다.

수백년 된 산삼이나 목질 진흙(상황), 적하수오, 물찬 산더덕과 같은 약초들은 민약 분야에서 귀하게 사용돼 왔다.

홍진수 대산민약연구원장(63, 대산약촌 대표촌장)은 민약의 현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백년 전부터 심산유곡에서 사계절 혹독한 환경을 이기며 홀로 자란 ‘천종산삼’은 발견한 후 수일 내 섭취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한두 뿌리만 해도 워낙 고가(高價)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홍원장은 천종산삼과 진귀한 민약재들로 천종산삼환, 천종산삼탕으로 만들어 수요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강원 철원에서 천종 산삼이 발견된 모습. (2020년 5월경)
강원 철원에서 천종 산삼이 발견된 모습. (2020년 5월경)

1978년 서울 종로에 ‘약초연구소’ 사무실을 내고 민약을 보급하기 시작한 홍 원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비롯한 재계 총수들과 이진희 전 문화공보부장관, 건축가 김중업 박사 등 명사들을 비롯한 수백명에게 독창적 비법의 '민약'으로 건강관리를 지원해왔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1997년 12월 선거를 앞두고 약화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비서실을 통해 홍 원장에게 산삼을 섭취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홍원장은 전국의 심마니들에게 급전을 띄워 대선 3일 전 100년 이상 된 산삼 4뿌리를 구해 증정하기도 했다.

(사)대한무궁화중앙회는 약초 연구 및 민약 저변 확대, 사회 기여 공로로 제 90주년 3.1절 '장한 무궁화인상' 대상을 홍 원장에게 수여했다. 또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등 단체들은 그의 40여년 민약연구 개발 활동을 평가해 2019년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산삼과 산더덕, 산잔대, 목청, 산 버섯류, 산 뿌리류, 산 열매류, 산 꽃류 등 토종 약초만을 사용해 민약을 만들고 있다. 홍 원장이 주로 취급해온 약초는 100여종, 비법으로 빚는 민약의 수는 150여종에 달한다.

그는 부설연구소인 대산민약연구원, 한국민약연구회를 통해 약초 음료와 약선 음식, 약초 반찬, 약초 차 등의 다양한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홍진수 원장이 산삼을 비롯한 민약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 진 기자]
홍진수 원장이 산삼을 비롯한 민약의 약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 진 기자]

혈혈단신으로 상경, 민약 보급 활동에 투신하다

군방봉 자락인 포천 연곡리 심재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홍 원장은 혈혈단신으로 상경, 약관(弱冠)의 나이에 민약법을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던 8천여명의 전문 심마니와 전문 약초 채취자들로부터 민약재를 채집, 건강으로 고생하는 수백여명의 인사들에게 빛을 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의 민약을 복용해 온 인사 가운데는 저명한 의사와 한의사들도 적지 않다. 서양의학을 기반으로 하는 의사들과, 동양의학을 기초로 환자들을 돌보는 한의사들도 비방(秘方)으로서 민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저명 제약회사와 건강식품기업 임원들, 유명 연예인, 운동선수들도 그의 민약을 찾는다.

홍 원장은 약초들이 자생하는 강원도 및 경상북도 일대의 깊은 산속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통신망 문제로 불과 몇해 전 까지만 해도 약초 채취꾼들을 만나러 산에 들어갔다가 2~3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가 흔했다.

민약에는 산삼, 산더덕, 상황버섯, 석청, 적하수오 등 고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은 물론 동물성, 광물성 약재가 포함된다.

전국 심산유곡 곳곳을 누비며 민약재를 확보해온 홍진수 원장.
전국 심산유곡 곳곳을 누비며 민약재를 연구 및 확보해온 홍진수 원장.

1970년대에는 삼성-금호그룹 창업주들 사이에 ‘백사 전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1975년경, 박인천 창업주(1901-1984) 측이 통해 전국의 약초꾼들에게 ‘백사를 구해달라’며 당시로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 조건으로 신문광고를 냈고, 이병철 창업주(1910-1987) 측이 이를 보고 비밀리에 ‘그보다 더 쳐줄 테니 먼저 알려달라’고 한 사건이다.

홍 원장은 “그 해에는 백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 따로 따로 구해 섭취하는 등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다”고 말했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회장은 산삼을 좋아했다. 하지만 정 회장과 산삼과의 운은 그리 좋지 않았다. 1980년대 정 회장 측이 ‘좋은 산삼을 구하는대로 연락달라’고 측근을 통해 수시로 주문했지만, 그 때마다 적절한 나이와 무게가 맞는 산삼이 발견되지 않아 두어 차례 밖에 제공하지 못했다는게 홍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19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천호동에 민약초로 만든 약차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티하우스(클럽)를 만든데 이어 2004년에는 민약초를 재료로 한 상황버섯 냉면, 헛개열매 막국수 등 건강면류와 건강과자류, 건강음료류 등 30여가지 건강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대산F&B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30여년간 전국을 대상으로 우리 민약초 알리기 행사와 강연도 펼쳐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제약사들과 대기업들로부터 사업제안 유혹도 받았다. 하지만 민약을 하나의 사업부서로 인식하는 큰 조직과 손을 잡을 경우 민약의 명맥은 완전히 끊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독립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천종산삼에 열매가 맺힌 모습. (강원 철원, 2018년 6월께 발견 )

민약 秘方 집대성 기록, 민약박물관 건립의 꿈

홍 원장은 “민약은 한약이나 양약과 달리, 효과가 천천히 나타날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절대 없고 몸을 서서히 원상태로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민약을 먹을 때는 체질과 체형, 식성, 성격 등 수많은 변수들을 잘 고려해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들어 암이나 당뇨에 효능이 좋은 상황버섯을 달일 때는 물과 버섯의 배합비율을 잘 맞춰야 하고, 흑염소를 달일 때도 다른 한약제를 첨가하지 않아야 제대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민약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소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심마니, 전문 약초 채취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공해와 산불로 자연산 약초가 급감하면서 수천명에 달했던 전문 약초 채취자는 700여명으로 줄어들어 자연산 약초는 채취가 더욱 희귀해진 상태다.

민약의 효과는 객관적, 과학적인 검증보다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민약 전문가들의 '기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과제는 그동안 스스로 터득해 쌓은 민약 제조비법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비방(秘方)들을 집대성해 ‘민약보감’을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내 최초의 민약박물관 건립도 꿈 꾸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모아온 수천 점의 민약초들을 전시해 일반인들에게 민약을 널리 홍보하고 보급하기 위한 것이다.

홍 원장은 “민약박물관 주변을 민약 테마파크로 조성, 방문객들이 민약초를 섭취하면서 건강관리도 하고 학생들에게 민약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5,000년 민약 역사를 널리 홍보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산민약연구원 탕전실에서 산삼을 감정하는 홍진수 원장.
대산민약연구원 탕전실에서 산삼을 감정하는 홍진수 원장.

기사회생의 명약 ‘천종산삼’

수백년 전부터 심산유곡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천종산삼은 기사회생의 명약, 영물(靈物)로 꼽혀왔다.

한 때 경상도에 나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던 아내가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와서 그 부인을 보고 “남편의 병을 거치려면 한 밤에 뒷산에 있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의 오른쪽 다리를 잘라 삶아서 그 물을 남편에게 먹여보라. 단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하고 떠났다.

그날 밤, 부인이 뒷산에 올라 무덤을 파헤치니 큰 장사의 사체가 나왔다. 부인이 준비한 칼로 시체의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 가져오려는데 시체가 큰소리로 ‘내다리’ ‘내다리’를 외쳤다. 그러나 부인은 스님의 말 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와 가마솥에 넣고 달여 그 물을 남편에게 먹였다. 날이 밝아 가마솥 안을 보니 커다란 산삼 뿌리 한 쪽이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부인이 무덤이 있던 곳에 다시 가보니 한쪽 다리가 끊긴 동자(童子)산삼이 있었다. 나머지 산삼도 캐와 남편에게 달여 먹이니 남편의 병이 완쾌됐다.

산삼은 군락 서식의 특징이 있어 한번 발견되면 인근에서 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9월 경북 청송 주왕산 8부 능선에서 천종산삼(사진 상). 250년생으로 평가됐던 이 산삼은 당시 1억7천만원에 거래됐다. 1개월 후 인근에서 또다른 250년생으로 추정되는 산삼이 나와 1억8천만원에 거래됐다. (사진 하)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산삼은 군락 서식의 특징이 있어 한번 발견되면 인근에서 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9월 경북 청송 주왕산 8부 능선에서 천종산삼(사진 상). 250년생으로 평가됐던 이 산삼은 당시 1억7천만원에 거래됐다. 1개월 후 인근에서 또다른 250년생으로 추정되는 산삼이 나와 1억8천만원에 거래됐다. (사진 하)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1970년대말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한 주민이 더덕인 줄 알고 수백년 된 산삼을 먹었는데 약효에 취해 5일간 일어나지 못했다. 죽을 줄 알았던 그는 회생해 기운이 전보다 훨씬 강한 장사가 되었고 잔병치레 없이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전국에는 산삼의 효능과 관련, 이같이 전래되는 이야기들이 수십종류에 달한다.

일제 강점기 때의 얘기도 있다. 1920년경 서울에 거부인 김 모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사랑방에서 산삼장사를 맞아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차를 들고간 그집 청지기가 주객이 산삼 거래하는 광경을 보았다.

거래 절차를 마친 주인이 거금으로 사들인 산삼을 다락방에 넣어두고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누워있었다.

눈을 떠보니 청지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있었다. 주인이 놀라서 본능적으로 다락방 문을 열어보았으나 산삼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주인이 잠든 사이에 청지기가 먹어버렸던 것이다.

화가 난 주인은 그를 사랑방 안에 가두고 문에 대못질을 한 다음 불을 때도록 했다.

하지만 철철 끓는 방에서 살아나온 청지기는 산삼을 먹은 후 힘이 장사처럼 세졌고, 그 주인집의 첫째 일꾼이 됐다.

산삼을 먹으면 사경을 헤맬 정도의 사람도 살아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왔다.

실제로 이런 일은 매우 흔하다고 민약 분야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홍진수 원장이 천종산삼 및 적하수오, 상황버섯, 산더덕, 석청 등을 특수비방비법으로 배합해 빚은 산삼보, 민약보, 산삼탕.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홍진수 원장이 천종산삼 및 적하수오, 상황버섯, 산더덕, 석청 등을 특수비방비법으로 배합해 빚은 산삼보, 민약보, 산삼탕.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한 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직업계를 이끌었던 강 모 회장이 중병에 걸려 오랜 투병을 하면서 사경을 헤매던 중 산삼 한뿌리를 구해 먹고 회생해 10여년을 더 살았다는 이야기는 전문 심마니들의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실화다.

홍진수 원장은 본인이 직접 담당했던 경우도 설명했다.

“한 경찰공무원(54세)이 대학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찾아왔습니다. 병원에서 3개월을 못넘길 것이라고 했지만, 산삼을 먹고 2년 6개월을 더 살면서 주변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직접 산삼을 달여주고 몸이 회복된 환자들을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1983년 강원 태백 황지 500고지에서 발견된 천종산삼. 250년생으로 감정됐던 이 산삼은 1억원에 거래됐다.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1983년 강원 태백 황지 500고지에서 발견된 천종산삼. 250년생으로 감정됐던 이 산삼은 1억원에 거래됐다.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산삼과 인삼… 모양 비슷하지만 효과는 '비교 불가'

인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세계적으로 그 효능이 알려졌고, 특히 고려 때는 수출이 본격화되어 고려인삼으로 불리웠다. 물론 이 때의 인삼은 오늘날 흔히 보는 인삼이 아니라 산삼이었다. 인삼 재배는 허준이 살았던 16세기 중반 정도에 시작돼 영-정조대에 와서야 일반화됐다.  

산삼은 깊은 산 우거진 수목의 그늘 속에서 자라는 음지성 식물이다. 인삼은 이 산삼의 씨를 받아 가림막 등 인위적으로 산삼의 생육 환경에 가깝도록 조성해 재배한 것이다.

따라서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산삼과 밭에서 인공적으로 재배한 인삼은 약리효능면에서는 물론, 모양까지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산삼에는 순수한 자연산 산삼과 지종이 있고, 또 산삼의 씨를 전문 심마니들이 채취해 산삼이 자랄만한 곳에 뿌려두고 자연적으로 자라게 둔 다음 거둬들이는 산 장뇌가 있다.

산삼-인삼의 차이점 [출처= 산삼과 인삼]
산삼-인삼의 차이점 [출처= 산삼과 인삼]

산삼의 종자나 묘삼을 산에 이식하거나 파종해 키운 것을 사양장뇌삼이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순수한 의미에서 산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산삼의 잎 색깔은 엷은 녹색을 띠고 있으며, 마치 종이 같이 엷고 반투명색이다.

그만큼 재배삼에 비해 세포에 엽록소의 숫자가 적다. 그러므로 동화작용의 능력이 적고 강한 햇볕에 쪼이면 시들어진다. 잎의 뒷면에 있는 엽맥(葉脈)에 따라 흰털이 있어 은빛(銀色) 비슷한 빛깔을 보인다.

또 산삼은 재배인삼과 같이 연근에 따라 정확히 잎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육환경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산삼의 종자는 재배 인삼보다 넙적하고 크기가 작으며 색깔이 누렇다. 또 산삼의 꽃수는 재배삼보다 적고 개화결실의 비율 역시 적다.

산삼은 만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명약으로 꼽힌다.

산삼의 가장 큰 효능으로 꼽히는 것이 항암 작용이다. 산삼은 암세포가 성장하는 것을 억제시켜 준다. 또 혈당치를 낮춰 주는 인슐린과 아드레날린의 생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당뇨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탁월하다.

산삼은 간경변이나 간염, 간암 등을 치료하고 회복시켜주는데 도움을 준다. 콜레스테롤이 생성되는 것을 방지해 주고 심장의 기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고혈압 및 저혈압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1984년 강원 태백에서 발견된 300년 추정 천종산삼. 모양이 인체와 닮아 '가장 신비로운 산삼' 중 하나로 꼽혔던 이 산삼은 1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1984년 강원 태백에서 발견된 300년 추정 천종산삼. 모양이 인체와 닮아 '가장 신비로운 산삼' 중 하나로 꼽혔던 이 산삼은 1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특히 산삼에는 말톤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우리 몸에 노화물질이 축적되는 것을 막아 주고 피로를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포닌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산삼은 심장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심장을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정도의 효능을 가진 산삼이기에 전해 내려오는 진귀한 이야기들도 많다.

영물(靈物)이다 보니 선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얘기가 그 중 하나다.

1980년대초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머슴이 꼴을 베러 산에 갔다가 풀을 잔뜩 베어왔는데, 주인이 보니 산삼 잎이 섞여 있었다.

산삼 횡재를 하겠다는 욕심에 ‘어디서 잘라 왔느냐’ 물은 주인은 머슴과 함께 그 장소를 찾아가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산삼을 찾지 못했다. 며칠 후 그 곳에 사는 다른 가난한 주민이 그 곳에서 산삼 여러 뿌리를 캐는 행운을 얻었다.

산삼의 신비는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

1981년 10월 설악산 한계령에서 발견된 100년된 산삼. 4,300만원에 거래됐다.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1981년 10월께 설악산 한계령에서 발견된 나이 100년생 천종산삼. 45cm에 35g(약 1냥). [대산민약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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