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유시민 변호인의 숨은 전략 '개인 한동훈' 말고' 검사 한동훈'
[WIKI 프리즘] 유시민 변호인의 숨은 전략 '개인 한동훈' 말고' 검사 한동훈'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6.22 15:43
  • 수정 2021.06.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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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계좌 추적했다" 명예훼손 혐의 유시민 첫 재판

"피고인(유시민) 발언 취지는 국가기관인 검찰의 공무집행에 관한 것으로 피해자(한동훈) 개인을 비방한 것이 아니다"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405호. 형법 제309조 1항 '라디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시민(사진) 노무현재단 이사장 첫 공개재판이 열렸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4월과 7월 라디오방송에 출현해 '한동훈 검사가 노무현재단 계좌를 조회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급)의 명예를 공연히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형사7단독 지상목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준비기일 쟁점은 사실상 하나, '명예훼손 주체는 누구인가'였다. 변호인 기본 주장은 '유시민이 허위사실을 말했대도 상대방은 사람 한동훈이 아닌 검사 한동훈'이라는 것이다. 검사는 사람이 아닌 헌법에 근거를 둔 단독관청이다.

지난달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서 감사 인사를 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출처=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서 감사 인사를 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출처=연합뉴스]

물론 이날 변호인은 공판기일에서부터 심리할 본안 말고도 '소송 흠결'을 주장했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찰에게 일반 형사 범죄 수사 관할이 없는데 '검찰청 검사'가 법적 근거 없이 기소했다는 취지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 검찰청 검사는 이른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대형참사 사건) 사건만 수사개시할 수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2021년 1월 1일 이전에 검찰이 고소·고발장을 접수해 2021년 1월 1일 이전에 입건한 사건'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조율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초안을 잡은 대통령령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부칙 제2조는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는 까닭이다. 반면 변호인은 검찰로부터 1차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에게 적용되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부칙 제3조 "수사 중이거나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한다"를 근거로 수사 관할이 경찰에 있다고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 적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애초 검찰이 경찰을 지휘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검사의 사법경찰관 수사지휘'를 삭제하고 '검사의 사법경찰관 협력'을 규정한 해당 규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 변호인이 숨긴 진짜 변론전략
본안 심리 전 변호인이 소송 흠결을 말하며 명목상 '공소기각'을 주장한 배경엔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공소기각이란 형식적 소송조건에 흠결이 있을 때 법원이 실체적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재판을 말한다. 지 부장판사는 일단 출석한 검사에게 "한 번 (변호인 의견서에 반박하는) 자료를 내주면 좋겠다"며 변호인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나중에 판단하겠다"고 덧붙여 사실상 공소기각 없이 본안 심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변호인이 이같은 전략을 구사한 건 본안 심리의 쟁점을 보다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데 있다. 변호인이 공판준비 절차 단계에서 겉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핵심 법리는 명예훼손죄 최신 대법원 판결에 있다. 일반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1항(진실사실 명예훼손)과 2항(허위사실 명예훼손)은 명예훼손 여부에 앞서 '공연히 진실·허위사실 적시'가 입증돼야 한다. 반면 가중처벌 성격인 제309조는 '신문·잡지·라디오·기타 출판물'을 이용한 경우를 적용하려면 검사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까지 증명해야 한다. 이른바 '사이버 명예훼손죄'라 불리는 정보통신망법은 이같은 형법 제309조 구성요건을 그대로 따른다. 달리 말하면 '사이버 명예훼손죄' 법리가 변하면 '라디오 명예훼손죄' 법리도 변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사와 재판 실무에서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이 '거짓'이라면 '비방할 목적'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0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정통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적용된 사건에서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이 거짓인지 여부와 별개의 구성요건으로서, 드러낸 사실이 거짓이라고 해서 비방할 목적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나아가 "그리고 이 규정에서 정한 모든 구성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했다. 기존에는 '공익성 항변' 법리에 따라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공익 목적이었다"고 소명해야만 했다. 사실상 입증책임이 검사에서 피고인으로 전환돼 있던 것이다. 2011년 이래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는 판례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공익이면 비방 아님' 법리를 버리지 않고서도 '공익을 피고인이 증명'에서 '비방은 검사가 증명'으로 바꿔버렸다.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민사 전문가이면서도 언론 관련 소송이 형사에서 민사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 착안, 명예훼손죄 법리를 따로 연구해온 김재형 대법관의 작품이다. 이 대법원 판례를 유 이사장 재판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변호인의 진짜 변호 전략은 재판부를 설득해 본안에서 쟁점으로 부각하는 데 있다.

◇ 공소사실엔 미처 적지 못했지만... 직관검사의 순발력
변호인으로부터 미리 의견서를 받아 검토한 재판부는 재판 서두에서 공소사실에서 유 이사장에게 발언했다는 허위사실이 무엇인지 검사에게 확인한 뒤 이렇게 말했다. 

"형법 제309조 2항과 제307조 2항 요건을 (같이) 보면 (각각)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이라고 돼 있다. 그러면, 공소사실에 기재한 허위사실을 적시 부분에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부분은..."

검사로서는 아찔한 대목이다. 공소사실에 비방할 목적을 특정하지 않았다. 검사는 당황하지 않고 "결국에는 공소사실 피해자(한동훈)에게 '표적수사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가 (유시민에게 적용되는) 비방할 목적에 포함된다"고 즉각 답했다. 지 부장판사는 이같은 검사 답변에 추가로 질문을 달지 않았다. 대신 "피고인(유시민) 발언 취지는 국가기관인 검찰의 공무집행에 관한 것이지 피해자(한동훈) 개인 비방이 아니다"라는 변호인 발언에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 국기기관인 검찰에 대한 것이었다.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없기 때문에 무죄다, 이런 취지인가"라고 되물어 구체화했다. 

이날 법정에는 유 이사장을 직접 수사해 기소한 검사가 출석했다. 공판검사가 아닌 수사검사가 재판을 직관했다는 것은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준다. 검찰 측은 다음 재판부터는 공판검사가 출석한다고 밝혔다. 수사검사로서는 재판에서 손을 떼게 됐지만 공판검사에게 '비방할 목적'을 정리한 '수사검사 의견'을 건네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다음 달 22일에 한 번 더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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