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비번 모르쇠 검사와 영장 친다는 경찰
[WIKI 프리즘] 비번 모르쇠 검사와 영장 친다는 경찰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7.14 17:21
  • 수정 2021.07.14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훈 방지법' 추진하던 법무부, 장관 교체되자 조용
5년 전 대법원, '수사기관의 비밀번호 받아내기' 위헌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악재로 등장한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가 미궁에 갇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권에선 윤 전 검찰총장을 '국정농단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앉힌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대변인이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는 점에서 공세를 높이며 전선을 검찰로 옮겼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가 박 전 특검과 친분을 이용해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경찰이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사팀을 꾸린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20일 넘게 해당 부장검사의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다. 압수한 기종은 삼성전자 갤럭시S21이다. 이전 갤럭시 세대와 달리 S21은 아이폰에 버금가는 보안성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잠금 해제에 실패하면 시스템은 초기화된다. 청탁금지법 수사에서 뇌물 수수로 확대하려던 경찰 수사에 차질이 생긴 이유다. 부장검사는 수산물을 받았지만 금품은 받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는데 경찰은 뇌물죄 요건인 직무관련성 검토조차 못 하고 있다. 수사팀은 결국 2000년대 이전 수사 방식으로 돌아갔다.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신체의 자유와 영장주의를 선언한 우리 헌법에 어긋난다. 5년 전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강제로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받아내는 건 위헌이라고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 서울남부지검 청사. [출처=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서울남부지검 청사. [출처=연합뉴스]

◇ 검사, 경찰은 불가하지만 판사라면...
"압수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하는 것이므로 압수영장 집행기관의 협력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할 수 있다"

2016년 11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법사위 위원들 각 책상 위엔 21쪽짜리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가 올려져 있었다. 이날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회의 참석 전 대법원이 단 한 차례 입장을 낸 적이 없는 법적 쟁점을 정리해야 했다. 김도읍 당시 새누리당(옛 국민의힘) 의원은 '압수할 수 있는 물건'에 정보를 포함하는 형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나아가 정보의 소유·소지·관리자는 '정보가 실제 존재하는 곳'을 수사기관에 알리고 그곳에 접속하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개정안에 적었다. 다만 "피고인인 경우는 제외한다"는 예외를 뒀다. 이 법안을 검토한 법사위 전문위원은 행정처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압수당한 사람이 비빌번호도 알려줘야 하는지' 물었다. 곧 대법원 입장인 행정처 답변은 '검사나 경찰관이 비밀번호를 달라 하면 위헌'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이 정당해야 할 뿐 아니라 제한의 방법이나 정도 역시 적절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취지다. 개정안이 복호화(復號化·비밀번호나 암호를 해독) 요구 주체를 판사로 정하는 영장주의를 택했다면 행정처 입장이 달랐을지 모른다. 

◇ 한동훈의 아이폰 
법원 판사가 영장을 내주면 스마트폰 비밀번호도 알아낼 수 있음을 시사한 행정처 입장은 5년 만에 존재감을 보였다. 지난해 법무부는 '한동훈 방지법'을 추진했는데 법원 명령을 조건으로 붙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을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됐다며 고발했다. 4개월 만에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를 압박해 여권 인사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신라젠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취재한 이동채 전 채널A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수사팀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과 잦은 통화 내역을 찾아냈으면서도 통화 내용은 밝히지 못했다. 유력 검사를 뒤에 업고 강요에 가까운 취재를 했다는 이 전 기자 공소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당연히 공모관계를 드러나지 않은 한 검사장은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끝내 수사팀은 한 검사장을 '혐의없음'으로 수사보고했는데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지난달 중앙지검장 재직 때까지 결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압수당했으면서도 비빌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한 검사장의 행위를 수사방해로 봤기 때문이다. 한 검사장은 '공보폰'을 제공받은 2018년 중앙지검 3차장검사 시절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갤럭시 기종보다 보안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폰 기종을 사용한다.  

지난해 11월 12일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하여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 그(비밀번호 공개)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공개했다. 수사기관이 아닌 법원 명령으로 비밀번호를 받아내겠다는 얘기다. 법무부가 참고했다는 해외 입법사례는 복호화법으로 불리는 영국의 '수사권한규제법'(RIPA)이다. RIPA는 2000년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목적으로 입법화됐지만 2007년 내무부가 작성한 실무지침이 마련돼서야 효력이 발생한 역사가 짧은 법이다. RIPA가 말하는 복호화란 '암호문을 번역하는 것'과 '암호문에 접근하는 암호를 제출하는 것'으로 나뉜다. 

RIPA에 따른 복호화 대상은 '암호가 있어야만 접근할 수 있는 보호정보(PI·Protected Information)'다. 이때 암호는 코드, 비밀번호, 알고리즘 등 '전자정보에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를 말한다. 복호화를 위해선 복호화 통지가 필요한데 RIPA 부칙에는 원칙상 허가권자를 판사로 정했다. 감청영장이나 온라인 수색영장을 통해 PI를 획득한 경우에는 영장 '발부권자'가 허가권자가 된다. 정보기관과 지역경찰의 경우 각각 발부권자는 내무부 장관과 지역경찰청장인 까닭에 판사의 별도 영장이 필요하지 않다. 이때도 해당 영장을 발부하려면 '동의권자'인 전·현직 판사들로 구성된 '사법위원장'(JC) 동의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영장주의 원칙을 지켜진다. 다만 지정감시(DS)·침입감시(IS)·신분위장 감시(CHIS) 허가서가 있는 경우 인가권자인 경무관급 이상 경찰관이 복호화 통지 허가권을 갖는다. 그런데 허가 기간이 12개월 이상인 CHIS 인가에는 사전승인을 필요한데 승인권자가 JC다. 사법부 통제에 공백을 최소한으로 두겠다는 의지다. 반면 '영장 없이 적법하게 그리고 우연히 PI를 획득한 경우'와 '대테러방지법(TA)에 따른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통해 PI를 획득한 경우'에서 각각 복호화 통지 허가권자는 경정급과 경무관급이다. 

◇ 쏙 들어간 RIPA 논의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이 검언유착 수사와 감찰을 방해했다며 직무를 배제했지만 징계를 청구했지만 지난해 말 법원이 연거푸 집행정지를 인용하면서 '한동훈 방지법'은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후임인 박범계 법무장관은 지난 1월 취임 이래 법무부가 계속해서 해당 입법을 추진 중인지 밝히지 않는다. 때문에 피의자가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게 범죄인 증거인멸인지 권리인 진술거부인지, 증거인멸이라면 국내법이 처벌하는 타인의 증거인멸인지, 복호화 통지를 영장주의에 편입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영장주의를 취할지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학계 역시 RIPA를 국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전혀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6월 대검찰청이 출간한 '형사법의 신동향' 제71호에 수록된 논문 '디지털 디바이스 ʻ복호화 명령ʼ 제도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 영국의 수사권한규제법 및 테러방지법 중심으로'를 통해 RIPA가 정한 복호화 통지가 무엇인지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정도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aftershock@wikileaks-kr.org

기자가 쓴 기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