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8) 김현희 자백과 漁父之利 작전... 노태우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98) 김현희 자백과 漁父之利 작전... 노태우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21.07.27 15:59
  • 수정 2021.07.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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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김현희의 서울 도착 뉴스는 세계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김현희의 자백을 받아낸 한국 정보당국은 북한의 행동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서울 소재 미대사관의 자문을 받아가며 유엔에서 이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기 위해 1988년 2월 안보리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표를 모으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적어도 기권할 것이 분명해 안보리 결의안까지 얻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공산권과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평양의 테러 행위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베이징과 모스크바에 전하기 위해 미국의 외교체널에 의존하고 있었다.

주한미대사관의 적극적인 노력에 중국과 소련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막지 않기로 하는데 동의했다.

알보리 토의 준비 과정에서 주한미대사관은 ‘김현희가 중국인으로 위장해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사실을 중국에게 알려주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줬다. 메시지는 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신화사통신사를 통해 중국 정부에 전달하는 경로를 활용했다. 이는 1970년대 미국이 활용했던 채널이었다.

▶ 미 대사관,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다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은 한-미 외교에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6월 항쟁 때 군 투입문제로 전두환 정권과 첨예한 갈등을 빚기도 했던 미국 정부는 이번 이슈가 대선을 앞둔 한국 정부의 자작극을 벌인 것인지, 북한을 은밀히 사주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987년 11월 30일부터 김현희를 특별사면한 90년 4월까지, 서울·도쿄·베이징의 미 대사관과 워싱턴 국무부 간에 주고받은 'KAL 858'이란 제목의 외교전문 57건이다. 문서의 분량은 200쪽에 달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김현희(당시 25세)가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미국은 사건 발생 25년 만인 지난달 200쪽에 이르는 외교전문 57건을 기밀 해제하고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MBC 캡쳐]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김현희(당시 25세)가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미국은 사건 발생 25년 만인 지난달 200쪽에 이르는 외교전문 57건을 기밀 해제하고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MBC 캡쳐]

미 정보당국자들은 KAL기 폭파사건 직후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 정보당국이 당시 확보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 26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김현희로 하여금 접촉한 인물을 고르게 했다.

김현희는 사건 직전 유고 베오그라드(2명)와 헝가리 부다페스트(1명)에서 접촉한 인물 3명을 정확히 지목했다.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이를 근거로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라고 적시했다.
또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외국방송정보분석기관(Foreign Broadcasting Information Service)이 88년 1월 15일 김현희의 발언을 분석, “억양 등을 감안할 때 김현희는 북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이 마인자 초나 주중 잠비아 대사를 통해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티비(TV)' '속죄' '약주병'이라는 용어를 김현희가 사용한 사실을 들어 “김현희는 가짜”라고 의혹을 제기하자 미측은 이처럼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를 제시해 반박했다.

임기 말인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이라 하더라도 북한에 보복하지 않겠다’고 미측에 약속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88년 1월 14일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88 올림픽을 앞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보복은 마지막 옵션(선택)”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도쿄·베이징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낸 외교전문들은 특히 KAL기 폭파 사건을 놓고 한국·미국은 물론 일본까지 3국간 공조가 긴밀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릴리 주한 미대사가 88년 1월과 2월 워싱턴에 보낸 외교전문에는 한국 외교부의 최광수 장관과 박수길 차관이 김현희 조사 상황을 수시로 릴리 대사를 통해 미측에 전달한 내용이 들어 있다.

도쿄 주재 미국대사관의 전문에는 일본 외교부의 다나카 북동아시아국장에게 미 정부의 조사 내용을 전달하고,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미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취임선서를 하는 노태우 대통령. 대한항공 폭파사건이라는 '북풍'과 전두환 정권의 분열작전에 힘입어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연합뉴스]
취임선서를 하는 노태우 대통령. 대한항공 폭파사건이라는 '북풍'과 전두환 정권의 분열작전에 힘입어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MBC 캡쳐]

▶ 대한항공 폭파사건- 어부지리 작전, 노태우를 당선시키다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김현희의 자백, 그리고 전두환의 어부지리(漁父之利) 작전은 40%도 안되는 지지율로 군사정권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7년 12월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830만표(36.6%)로 김영삼 640만표, 김대중 611만표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는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을 사면시키면서 정치자금을 지원해 3자구도로 몰아간데 따른 결과였다.

‘대통령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김영삼-김대중의 단일화 협상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한사람씩 순서대로 대통령을 맡은 것을 확약했으면 됐지만, ‘나중 일을 누가 보장하느냐’며 양보를 하지 않아 서로 끌어안고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선거 직전 대한항공 폭파사건이라는 ‘북풍’ 까지 불어주면서 노태우는 전두환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당시 김현희의 자백으로 노태우는 150만표 이상의 표를 더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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