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노정희는 왜 '위법수집증거' 아닌 '실체적 진실' 택했을까
[WIKI 프리즘] 노정희는 왜 '위법수집증거' 아닌 '실체적 진실' 택했을까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8.06 10:57
  • 수정 2021.08.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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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거래' 증거로 '마약 투약' 기소할 수 있을까

마약 거래 혐의를 적시한 압수수색 영장으로 확보한 모발에서 채취한 증거로 마약 투약 혐의를 기소해도 문제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급심은 법원 발부 영장에 마약 투약 혐의가 적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약 투약 혐의 증거인 모발은 위법수집증거라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마약 거래와 투약은 연관 있는 범죄라며 실체적 진실을 우선했다.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후보자 자격으로 참석한 노정희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후보자 자격으로 참석한 노정희 대법관. 8월 현재 노 대법관은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 중이다. [출처=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대법원 3부(대법관 김재형 안철상 노정희 이흥구)는 흔히 '필로폰'이라 불리는 메트암페타민을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법)로 기소됐지만 원심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파기하고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 쟁점은 제1혐의사실 '마약 거래'를 입증하고자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으로 확보한 모발을 제2혐의사실 '마약 투약'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였다. 원심은 제1혐의사실를 적시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확보한 모발은 제2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는 별개의 증거"라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결론 냈다. 제1혐의사실은 지난해 7월 11~12일과 이달 16일에 있었고 제2혐의사실은 같은 해 9월 11일에 있던 만큼 "이 부분 공소사실(제2혐의사실)은 이 사건 압수영장을 발부받을 당시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범행"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약 투약 혐의 증거인 모발은 영장 없이 수집한 증거이고, 모발을 통해 확보한 마약감정서와 피고인 자백 진술은 "위법수집증거에 기초한 2차적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그 근거를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찾았다. 영장청구서에는 '압수수색검증을 필요로 하는 사유'가 적혔는데, 여기엔 "필로폰 사범의 특성상 피고인이 이전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을 투약하였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어 필로폰 투약 여부를 확인 가능한 소변과 모발을 확보하고자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영장판사가 '마약 거래' 영장을 내주며 영장이 필요한 이유에 적힌 '마약 투약' 문구를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다. 대법원은 "압수한 소변 및 모발 등으로 밝혀진 이 부분 공소사실(제2혐의사실)은 이 사건 압수영장의 혐의사실(제1혐의사실)과 단순히 동종 또는 유사의 범행인 것을 넘어서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는 경우"라고 달리 판단했다. 2017년 대법원 판례 "혐의사실과 단순히 동종 또는 유사 범행이라는 사유만으로 객관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를 피해간 것이다. 

문제는 대법원이 이 사건 압수수색 영장청구서의 형사소송법 위반 여부를 살피지 않았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 제215조 제1항은 "검사는 범죄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발부받은 영장에 의하여 압수, 수색 또는 검증을 할 수 있다"라고 정한다. 영장판사는 이 사건 영장 혐의가 '마약 거래'인데도 영장 필요 사유에 '마약 투약'이 적힌 게 타당한지 검토하지 않았다. 검사는 혐의사실과 연관 있는 증거만 압수, 수색, 검증하겠다고 영장에 적을 수 있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필로폰 투약 혐의가 필로폰 거래 혐의와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되려면 두 시기가 같거나 인접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재판에 넘긴 공소사실에서 투약 시점은 거래 시점보다 2개월이나 늦은 것이었다. 

결국 별개 혐의가 영장에 적혔는데도 걸러내지 못한 영장판사의 실수는 '심리미진'으로 지적받지 않고 오히려 '별개 혐의의 관련성을 인정한 근거'로 사용되는 모순이 발생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압수한 물건으로 피고인의 소변뿐만 아니라 모발을 함께 기재하여 이 사건 압수영장을 발부한 것은 영장 집행일 무렵의 필로폰 투약 범행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투약 여부까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영장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적법하지 않다면 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은 언제든지 해당 영장을 취소할 수 있다. 대법원은 '그 이전의 투약 여부'까지 모조리 연관성이 있는 범죄라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까지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한 번만 걸려라'는 별건 수사 관행을 하급심은 제동을 걸었는데도 대법원은 달리 용인한 것이다. 이 사건 상고심 주심은 진보 성향인 노정희 대법관이다. 실체적 진실규명이 중요해도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을 쉬이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게 그간 진보 대법관들의 의지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학계의 비판적 진단과 토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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