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의사의 건강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 김민정 칼럼
  • 승인 2021.11.10 15:50
  • 수정 2021.11.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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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지난 10월 26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으로 어머니와 딸을 잃은 유가족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중증정신질환을 방치해 왔던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이다. 2019년 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이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주민들을 칼로 공격해 5명을 죽이고 17명에게 상해를 입힌 이 사건은 범죄의 잔혹함도 충격적이었지만 사건에 앞서 이웃들의 수많은 신고와 경고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주민들의 신고에 따라 적절한 개입과 치료가 이루어졌다면, 피할 수 있었을 사고였기 때문이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은 이러한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치료하는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전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이다. 책의 저자 차승민은 국립법무병원에서 매일 170여명에 육박하는 범법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4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 책은 개원한 지 34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치료감호소 내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실제 이 책에는 안인득을 비롯해 강서 PC방 살인사건 등 언론에 보도된 강력사건 피의자를 저자가 직접 정신 감정한 뒷이야기와 그에 관한 생각, 느낀 감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다양한 형사정신감정 사례와 그동안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특히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정신감정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있는 설명과 자극적인 스토리로 피상적으로 다뤄져 왔던 변태성욕장애 환자와 사이코패스, 약물중독자들 사례에 대한 저자의 차분한 설명은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책을 쓰는 내내 고민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혹여 이 책이 범죄자를 감싸려는 그릇된 선의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지, 또는 피해자에게 상처를 들추어내는 글이 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 이유는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의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정신질환 범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는 무엇인지를 알리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이곳에 수용된 환자들은 너무도 분명한 범죄 가해자다. 그들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들은 대개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피해자를 위해서는 죗값을 치르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죗값’을 치르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의지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닌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 교도소에 가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다. 자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난 다음에야 참회와 반성, 처벌이 가능하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N번방 사건 등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도 넘은 내러티브를 부여한 언론 등으로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파렴치한 범죄자들에게 지나친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어떤 사람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자신이 벌인 일의 의미도 모르는 채 악인과 나쁜 놈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악순환이다. 저자는 정신질환자들이 사는 세계는 가짜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진짜라 말한다. 그래서 서사는 의미가 있다.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이들이 사는 가짜의 세계와 진짜의 고통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해가 반복되는 정신질환범죄의 악순환을 끊을 시작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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