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인간 심리에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WIKI 인사이드] 인간 심리에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11.20 07:14
  • 수정 2021.11.20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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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도 주어진 여건에 따라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모든 것
석방 전 ‘가석방 청문회’를 위해 머리에 봉투를 쓰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죄수 역할 피실험자들 [사진=ATI]
석방 전 ‘가석방 청문회’를 위해 머리에 봉투를 쓰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죄수 역할 피실험자들 [사진=ATI]

2004년 10월, 미국 육군 하사 이반 프레데릭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해 3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자행된 악명높은 고문 스캔들로 기소된 여러 명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군사재판 과정에서 수감자 학대와 잠 안 재우기, 성적 모욕 등의 잔혹 행위가 방영되고 있었다.

당시 프레데릭 측은 자신을 옹호해줄 증인 중 한 명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를 신청했다. 짐바르도 교수는 프레데릭이 본래 잔혹한 성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로 조성된 환경에 대한 반응이었을 수도 있다고 증언함으로써 프레데릭이 8년 형만을 선고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짐바르도 교수는 인간은 적절한 여건만 주어지면, 누구나 거의 예외 없이, 프레데릭을 재판정에 서게 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나체 상태의 죄수들을 폭행하고, 종교 물품들을 모욕하며,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끔찍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프레데릭이 유별난 못된 미꾸라지가 아니라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 배속될 때부터 이미 예측된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의 잔혹 행위가 드러나자 미 군부는 그 책임을 우물물을 흐린 몇몇 못된 미꾸라지들에 전가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짐바르도 교수는 군사법정에 서서 죄수 학대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었다. 한때 자신이 그러한 잔혹 행위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971년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6일 동안 스탠퍼드 대학 지하의 요르단홀에 차려진 모의 교도소에서 교도소장 직을 맡았었다.

미국 육군과 해병대는 죄수와 간수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한 실험에 돈을 댔다. 이 실험을 위해 짐바르도는 한가지 심리 실험을 생각해내고, 지극히 평범한 청년 24명에게 2주 동안 무작위로 각각 죄수와 간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역할극을 시연했다.

그러자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짐바르도가 보는 앞에서, 고통받는 죄수들과 그 죄수들의 심리를 지배하고 가학을 즐기는 고문 가해자인 간수들 간의 투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 실험 결과가 보도되고, 빠르게 회자되면서 짐바르도 교수는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괴물로 변모시키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웃통을 벗은 참가자가 철창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웃통을 벗은 참가자가 철창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시작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시행되기 10년 전인 1961년, 예일 대학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한 인간이 낯선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실시했다.

‘밀그램 실험’이라고도 알려진 이 실험은, 다른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 죽이라고 일부 청년들을 사주하는 일이 충격적일 정도로 손쉽다는 괴로운 사실을 밝혀주었다.(이 실험에서 가해자들은, 피실험자들이 실제로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피해자들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였다.)

이 실험은, 상황에 따른 행동과 우리는 주변 환경이 허락하는 만큼만 좋거나 나쁠 수 있다는 전제를 향한 후속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필립 짐바르도는 이 실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1960년까지 예일 대학 심리학과의 학생이었으며, 1961년이 되자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밀그램의 업적을 더욱 발전시킬 구상을 했다. 미국 해군연구소가 간수와 죄수 간에 존재하는, 구금에 따른 권력 관계의 심리를 연구하도록 위탁했던 것이다. 짐바르도는 이 실험 비용을 기부받는 즉시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 장소로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 내 요르단홀 지하실이 선택되었다. 짐바르도는 이곳에 파티션으로 교도소장실뿐만 아니라 4개의 감방과 간수들이 휴식할 때 이용하는 공용 공간을 설치했다. 그리고 나중에 실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청소용품 보관실을 따로 마련했다.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데일리>지에 광고를 내 실험에 참가할 남학생들을 모집했다. ‘교도소 생활의 심리 연구에 참여할 학생 모집’ 광고를 보고 참여한 학생들은 하루 15달러의 참가비를 지급받도록 약속되었는데, 이 돈은 2017년의 가치로 따진다면 대략 90달러에 해당했다.

잠바르도는 먼저 지원자들 중에서 물을 흐릴 수 있는 미꾸라지들을 골라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정신적 문제나 행동 문제 전력이 있거나 범죄 기록이 있는 학생은 참가가 거부되었다.

최종적으로 폭력과 같은 부정적 행동 전력이 없는 남자 대학생 24명이 피실험자들로 추려져서 실험 시작 직전에 무작위로 각각 12명씩 간수 그룹과 죄수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실험 시작 전날 짐바르도는 간수 그룹과 오리엔테이션 미팅을 갖았다. 그는 간수들에게 역할에 따른 의무와 한계에 대해 엄격한 지침을 내렸으며, 간수들은 죄수들을 24시간 감시하기 위해 하루 8시간씩 3교대 근무조로 편성되었다.

간수들에게는 권위의 상징으로 카키색 군복과 선글라스, 간수봉이 지급되었으며, 죄수들에게 폭력이나 물리적 학대를 가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감시 하에 놓여있는 12명의 죄수들을 다루는 데에는 폭넓은 재량권이 주어졌다.

다음날 미리 약속된 지침에 따라 팔로알토 경찰관들이 죄수로 지정된 피실험자들의 집을 찾아 구금 절차를 진행했다. 피실험자 죄수 12명은 몸수색, 지문 채취를 마치고 머그샷까지 찍었다.

죄수 12명은 마침내 간수들이 기다리는 스탠퍼드 캠퍼스 지하실로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죄수들에게는 맞지도 않는 작업복이 지급되었고, 커다란 털모자(stocking cap)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죄수들은 또한 그들이 죄수 신분임을 각인받기 위해 발목을 감싸는 짧은 체인을 둘러야 했다. 죄수들은 한 방에 3명씩 배당되었고, 감옥 생활 규칙을 하달받았다.

이름을 부르는 데에 따른 상호 존중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위해 죄수들의 털모자에는 죄수 번호가 큰 글씨로 새겨졌고, 간수들에게는 오직 그 번호를 이용해서만 죄수를 부르도록 명령이 하달됐으며, 감방 배치의 각도는 죄수들이 간수들에 예속되어있음을 각인시키도록 꾸며졌다.

첫날의 실험을 끝마칠 무렵이 되자 간수와 죄수 양측은 모든 규칙을 완벽하게 내면화하면서 마치 이러한 권력 관계가 늘 존재했던 것처럼 행동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스탠퍼드 경찰이 8612번 죄수를 감옥으로 이송하기 전 수갑 채우는 장면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스탠퍼드 경찰이 8612번 죄수를 감옥으로 이송하기 전 수갑 채우는 장면 [사진=ATI]

반란과 소동

양측이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내면화하고 일부 죄수들이 자신들의 역할과 간수 명령의 독단성에 불만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실험 첫날은 별다는 일 없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죄수들은 실험 시작부터 금지 물품을 소지할 수 없도록 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감방 밖으로 끌려나와 몸수색을 받았다. 간수들은 일반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했고, 죄수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듯한 태도를 비쳤다. 그들은 자주 죄수들에게 비천한 신분을 각인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죄수 번호를 복창하도록 시켰다. 죄수들에게는 노예나 할 듯한 노동이 주어졌고, 한동안 힘든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벌칙도 부과되었다.

첫째 날 밤이 되자 간수들은 복종심이 떨어지는 죄수들의 매트리스를 치워버려 차가운 맨바닥에서 자도록 하는 벌칙을 부과했다. 그들은 나아가 감방 옆에 있는 자신들의 휴게 공간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서 죄수들의 잠을 방해했다.

둘째 날 정오가 되자 8612번 죄수가 폭발의 징후를 보였다. 그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짐바르도가 직접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 그래도 8612번이 진정하지 않자 안전을 위해 그를 실험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8612번 죄수는 석방 전에 청소용품 보관실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는, ‘가석방 청문회’ 과정을 거치기로 결정이 났다. 이 청소용품 보관실은 나홀로 독방으로 징벌방 역할을 했다. 석방은, 죄수들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절대 권력 하에 놓여있음을 더욱 각인시키기 위해 길고 힘든 과정을 거치도록 마련되었다.

이 모든 실험이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사실을 잊지 마시라. 적어도 참여자 모두는 자신들이 원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실험에서 빠질 수 있었다.

8612번 죄수의 석방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11명의 수감자들이 소동을 피웠다. 간수들의 독단적이고 잔인한 처사는 명령에 거부하도록 이미 죄수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들은 번호가 불리울 때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방의 수감자들은 저항의 표시로 매트리스로 감방 문을 막기도 했다. 그날 밤이 되자 상황은, 자신의 근무 시간이 끝난 간수들이 소동을 진압하기 위해 집에 돌아가지 않고 초과근무를 자원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실험을 감시하던 의료진이 퇴근하자 근무 중인 간수들은 소화기 폭발을 이용해 해당 감방의 죄수들을 공격했고, 그 죄수들을 다른 방으로 옮겨 비좁은 데서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그리고 빈 감방은 소동에 참여하지 않은 온순한 수감자들에게 할당되었다. 반면에 주모자로 지목된 죄수들은 징벌방에 몇 시간씩 갇혀있어야 했다.

다른 감방의 죄수들은 화장실 사용을 금지 당한 대신 양동이를 이용해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양동이들은 비워지지 않은 채 밤새 방치되었다. 다음날 간수들은 죄수들의 옷을 벗긴 채 벌 받는 자세로 몇 시간씩 세워두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한 죄수가 벌칙으로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모습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한 죄수가 벌칙으로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모습 [사진=ATI]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자 실험 중단 결정

스탠퍼드 감옥 실험 셋째 날이 되자 상황은 통제 불능 상태로 급격히 빠져들었다. 짐바르도에 따르면 간수들의 약 1/3이 자발적 가학 증세를 보였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벌칙을 고안해낸 다음 다른 간수들을 부추겨 저항 불가인 죄수들에게 이런 벌칙들을 가하도록 만들었다.

피실험자 모두는 실험 참가 불과 며칠 전에 역할을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간수들이나 죄수들은 각각 같은 편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집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난 뒤 죄수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합심해서 단식투쟁을 벌였고, 이에 대항에 간수들은 무급 연장 근무를 자원하면서까지 점점 편집증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다가 8612번 죄수였던 피실험자가 지지자들을 규합해 탈옥을 감행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짐바르도 자신이 지하 감옥을 폐쇄하고 위층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후, 지하실에서 홀로 남아 공격자들을 기다렸다. 그는 이후 8612번이 정말로 공격해온다면 자신의 계획은 실험이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이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때쯤 되자 누구보다 짐바르도 자신이 실험에 몰입되게 되었다. 그가 나중에 인정했듯이, 그는 교도소 행정 책임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고,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창조했던 환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실험이 어떤 방향으로 진척될지 그리고 매일매일의 상황 전개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4일째 되는 날 일부 수감자들이 자살을 하려는 징후를 보이고, 분명히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자 짐바르도는 이 상황을 여자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여자친구도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다. 

그런데 당시 26세였던, 짐바르도의 여자친구 크리스티나 마슬락은 벌어진 상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편 8612번 수감자를 대신해 416번 수감자가 새로 입소해서 교정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416번 수감자가 처우에 불만을 품고 저항하자 간수들은 그를 징벌방에 가둬놓고 손으로 방문을 교대로 두드리며 고통을 가했다. 416번은 징벌방에서 나오면서부터는 감옥 생활 규칙을 온순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다.

하지만 마슬락은 짐바르도처럼 실험에 넋을 빼앗기지 않고, 남자친구를 각성시켜 그녀의 눈으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남자친구를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실험 6일째 되는 날 짐바르도는 실험 종료를 선언했다. 그가 실험을 그만 진행하겠다고 하자 일주일 내내 휘두르던 권력에 취해있던 간수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남아있던 죄수들을 가석방하는 데 실험 종료를 선언하고도 하루가 더 걸릴 정도로 모두 역할에 취해있었다. 간수들은 참가비를 추가로 지급받지 않고도 자원해서 하루를 더 보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지급된 유니폼을 입고 간수봉을 소지한 간수의 모습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지급된 유니폼을 입고 간수봉을 소지한 간수의 모습 [사진=ATI]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유산

스탠퍼드 감옥 실험 결과는 그 즉시 인간 심리와 권력 관계 연구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실험에 의해 드러난 가장 놀라운 점은 피실험자들이 거의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완벽하게 내면화해서 자신들의 감옥 밖의 생활은 잊어버린 듯이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간수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게 잔인한 행동을 보였고, 죄수들은 무엇보다 풀어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은 채 오싹한 학대 행위를 참아냈다.

어쩌면 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점은, 많은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이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구금 상황을 관찰할 목적으로 요르단홀 지하실을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짐바르도는 약 50명 정도가 자신이 만든 지하 감옥을 관찰했는데,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종료되고 불과 2주 후에 악명높은 샌 퀜틴 주립 교도소와 아티카 교도소에서 이 실험 이틀째의 반응과 비슷한 소동이 벌어졌을 때 그 즉시 스탠포드 실험과의 연관성이 거론되었다.

짐바르도는 하원 법사위원회에 소환되어 교도소 여건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증언했다. 짐바르도의 논점은 스트레스 하의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는 인자는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언제나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있다.

미국은, 짐바르도의 실험 결과에서 일부 영향을 받아, 수감 조건에 항의하는 소송을 제기한 수감자들을 더 엄격히 보호하고 통제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 수감자와 성인 수감자를 분리 수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앞서의 밀그램 실험처럼, 교도소 관리에 적용되는 함의를 훨씬 뛰어넘는 무엇을 지니고 있다.

두 실험 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건전한 인간이, 특별한 강요 없이 약간의 자극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선동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두 실험 다 인간이 내리는 결정은 스스로 판단에 근거한다면 생각할 수 없는 것들로서, 인간의 반응은 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주어진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인류에 대한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들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준법자를 구분하는 사회의 기준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예를 들어, 나치 죽음의 분대원들이 자신들은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 유명한 일화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수천 명의 민간인들을 사살하라는 명령 말고 다른 명령을 받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전후에 치러진 전범재판에서는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짐바르도 실험의 결과는 도망가기 좋은 구실을 제공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어떤 독재자가,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카키색 군복과 눈가리개와 몽둥이를 주고 죄수들을 통제하라고 사주했을 때 가해자들의 면피 주장에 근거를 제공할 때이다. 뉴스는 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은 또 다른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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