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돌봄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의사의 건강 책] 돌봄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 김민정 칼럼
  • 승인 2021.12.15 21:07
  • 수정 2021.12.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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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현실에서 간병을 하는 절대 다수는 여성인데, 출간된 간병 수기의 저자는 다수가 남성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성에게는 일상인 돌봄이 남성에게는 특별한 일, 그래서 주목받고 인정받는 경험이라는 해석인데, 우리 책방에서 올해 소개했던 간병 에세이의 저자들을 떠올려보면 수긍할 만하다. 이 책 ‘케어’의 저자 역시 남자이며, 아내를 간병한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에만큼은 그러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다.

책의 저자는 아서 클라인먼. 하버드대학에서 4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의사로 정신의학, 의료인류학, 사회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아서의 아내 조앤 클라이먼은 그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학문적 파트너로서 그의 오늘은 함께 만든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60세도 되기 전, 갑자기 조발성 치매가 찾아온다. 진단을 받은 날 부부는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그는 아내가 그에게 헌신해왔던 세월을 알고 있기에 이제는 자신이 끝까지 집에서 아내를 돌볼 거라 담대한 약속을 한다.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견딜 것이다. 때론 견딜 수 없는 것도 같이 견딜 것이다”라고 말이다.

‘케어’는 그 10년의 돌봄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돌봄과 간병의 직접적인 체험기이자 돌봄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를 말하는 나의 증언이라 말하며, 의사로서의 경험과 가족 간병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돌봄이란 무엇인지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서는 치매 환자의 신경정신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의학 교수이며, 돌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강조해 온 의료사회학자이다. 하지만 그 에게도 돌봄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끝없는 내리막길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병에 처음 시력을 빼앗긴 아내는 서서히 기억을 잃고, 사랑하는 남편을 잊고, 우아하고 현명하고 사려 깊은 품위의 여신이었던 자신까지 잃어가게 된다. 오드리 햅번을 닮았던 기품 있는 그녀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흐트러지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에게 “이 사기꾼아 나가”라 소리치고, 자신이 정성껏 수집한 앤티크 접시를 던지며 바닥에서 발버둥치는 패배와 좌절의 매일이 그에게 이어졌다.

“조앤은 세 번 정도 대변을 참지 못해 바닥에 배변하기도 했다. 나는 그 난리 통에서 바닥을 닦으며 엉엉 울었다. 더 이상은 못한다는 걸 알아서였다. 조앤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응원했다. 당신 할 수 있어! 아서, 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했다.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저자는 돌봄의 미천한 순간 즉, 더러워진 시트를 갈고 계속되는 짜증을 묵묵히 받아내는 수행과 같은 날들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세계 공포와 두려움의 순간들을 목격하고 자기 의심과 무력감을 수 없이 마주하게 하지만 어쨌든 해야 하는 그날들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앤의 주 간병인으로 살았던 10년의 세월이 나라는 인간을 완전히 개조했다. 진한 고통과 실망, 아픈 패배와 계속된 피로를 경험했고 난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난국이 찾아왔다. 그사이 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 돌봄은 나를 더 강한 사람, 관계를 더 잘 맺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언제나 야망을 좇으며 오직 내 일에서만 보람을 찾으려 하던 이전의 나에서 벗어났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고 하루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배웠다.”
 
돌봄에 대한 저자의 성찰은 자연스레 그가 종사하는 의료계 그리고 우리 사회로까지 확장된다. 저자는 돌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서사로 가족과 지역사회를 끈끈히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접착제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돌봄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가치는 폄하되고 경제성 효율성 미명 아래 부차적 문제로 희생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의료에 있어서 돌봄의 실종문제를 진단하는 그의 정의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를 4가지의 모순으로 정의하는데 첫째는 전통적으로 의학은 돌봄을 진료행위의 핵심으로 정의해 왔음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돌봄은 의사들이 실제로 하는 일 중에 가장 지엽적인 일이 되어갔고, 둘째 의료계 전문가들은 (자신들보다 더) 돌봄에 기여하는 간호사와 보건 전문가, 가족과 같은 중요한 협력자를 일상적으로 무시하고 있으며, 셋째 의대 1학년 학생이 졸업생들보다 돌봄의 현실과 환자의 사회 심리적 맥락에 더 관심 있고 때로는 돌봄에 더 능할 정도로 의학 교육에서 돌봄의 원칙과 실천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료 시스템의 개혁이 역설적으로 돌봄을 약화했다는 것이다. 환자의 얼굴을 보고 이뤄지는 대면 진료는 축소되고 모니터 속 차트를 보고 이뤄지는 전자 진료가 늘어나면서 환자의 감정과 주변을 살피는 의사의 돌봄도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우리사회에 남긴 많은 의제 중 하나가 돌봄이 아닐까 싶다. 2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 지난한 감염병은 돌봄의 중요성과 돌봄의 부정의를 가시화했다. 이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과 개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 즈음하여 이 책을 다시 집어 들며 지금 우리는 돌봄을 문제로만 취급하고 돌봄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 의미에 대한 논의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우리에게 발생한 돌봄의 공백과 돌보는 이들의 처우의 문제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근간에는 돌봄의 가치에 대한 저평가 문제도 존재함에 말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숭고함이 아닌, 무릇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는 돌보고 돌봄을 받는 이 행위에 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제도의 보완은 자칫 돌봄의 책임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돌봄의 외주화’로 이어지는 우를 범할 수 밖에 없다.
  
“돌봄은 우리의 의심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절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불편하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절대 유쾌하지 않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숭고한 일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에 관한 일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살피면서 자신 또한 돌봄과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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