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월드]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와 푸틴의 딜레마
[WIKI 월드]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와 푸틴의 딜레마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1.08 07:29
  • 수정 2022.01.08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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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알마티 시청사 : 5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사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알마티=타스연합뉴스]
불타는 알마티 시청사 : 5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사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알마티=타스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의 소요사태를 두고 러시아 지도자 푸틴이 딜레마에 봉착했다고, 8일(현지 시각) CNN이 보도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지난 1일 카자흐스탄의 석유 가격이 두 배로 치솟자 서부 지역의 운전자들은 불쾌한 심정으로 새해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자노아젠(Zhanaozen) 시에서 시위가 처음 벌어졌을 때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 촉발 3일 만에 정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는 중앙아시아의 자원 보유국 카자흐스탄 전체로 번져나갔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정부의 부패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이 시위에 호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위 발발 초기에는 영하의 날씨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보다 보안군들의 숫자가 많았다. 그러나 1월 4일이 되자 자발적으로 시위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구 소비에트 소속이었던 독재국가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알마티를 휩쓸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카자흐스탄 정부는 석유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다른 경제 지원책을 약속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진심을 담아 대화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강압적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급속히 확산하는 시위 사태에 허를 찔린 듯이 보인다.

지난 2일 그는 “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공적인 요구를 할 권리는 있지만 그 과정은 반드시 합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후 그는 “시위대는 책임 있게 행동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태의 안정화를 위해 상호 만족할 해법을 당국이 마련하겠다.”고 약속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반응은 뿌리깊은 대중적 분노에 가로막혔다.

시위 참여자 중 한 사람은 “물가가 매일 오르고 있다. 식료품 가격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모든 가격이 오르고 있다. 더 오를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터지기 일보직전의 분노

경제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만 하고 지켜지지 않는 정부의 반복되는 약속은 대중의 분노를 터지기 직전의 압력밥솥처럼 끌어 올려놓았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특히 서부 카자흐스탄 중공업 지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업과 저임금에 따른 누적된 불만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불평등과 맞물려 더욱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는 국민들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국민이 불만을 공적으로 표출할 기구가 없습니다. 유일한 창구는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겁니다.”

카네기 국제 평화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폴 스트론스키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스트론스키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부패 척결에 나서겠다며 여러 정책들을 약속했지만 어떤 것도 이행된 바가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만 국가의 부는 엉뚱한 데로 빨려나가는 실정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화의 실종과 정적 탄압으로 인해 정부는 국민과 괴리되고, 대중적 분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시위 사태는 낮선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잇단 시위들로 인해서도 변화된 것은 거의 없다.

잡지 ‘디플로맷(Diplomat)’의 케이티 푸츠는 “2016년과 2019년 카자흐스탄에서 있었던 시위들이 어떤 조짐을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기를 놓쳤다.”라고 트윗을 올렸다.

‘카네기 기금’의 스토론스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당국이 사태를 해결할 기회와 경고 신호를 모두 놓친 대신 진정한 변화를 분식(粉飾)으로 포장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된 원인에는 빵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다이애나 쿠데베르제노바 교수에 따르면 경제적 불만에 정치적 불만이 합세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역외 피난처에 수십억 달러를 꿍쳐둔 것으로 알려진 정부 관료들의 부패와 엘리트층을 향한 불만도 시위 사태의 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제 앰네스티의 마리 스투르서스는 서서히 쌓여가던 침묵의 분노가 그동안 배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수년 동안 정부는 반대파들의 평화적 활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 결과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절망에 휩싸인 채 불만이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분석했다.

4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알마티=AFP연합뉴스]
4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알마티=AFP연합뉴스]

분리해 정복하라

현재 남은 문제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정치 활동 자유의 폭을 넓혀주느냐, 아니면 반대자들을 탄압하느냐에 달려있다.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자카리 위틀린은 “이번 시위 사태의 주원인인 연료비 인하 요구에 굴복했던 정부가 이제는 무력에 의한 통제를 다시 고려 중이다. 시위대는 이제 더 이상 애초 요구사항이던 경제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시위가 공공연히 정치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요일 알마티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는 토카예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욱 강경 수단을 고려하도록 만들었다.

토카예프는 ‘강도들’이 경찰들에 폭력을 행사하고 상점들을 약탈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위 사태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는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쿠데베르제노바 교수는 카자흐스탄의 정치 운동가들과 수요일 거리로 쏟아져나온, 주로 알마티의 빈곤한 지역 출신 젊은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지목했다.

그녀는 “정치 활동가들은 폭도들이 자신들의 평화적인 정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단계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러시아가 이끄는 ‘집단안전보장 조약기구(CSTO)’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CSTO의 총재이자 아르메니아의 총리인 니콜 파시냔은 토카예프의 요청에 빠르게 화답했다. 파시냔 총리는 “카자흐스탄의 안전보장과 국가의 주권 수호를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CSTO 평화유지군의 역할에 따라 카자흐스탄의 긴장 상태는 더욱 악화할 수도 있다.

폴 스트론스키는 외세에 도움을 요청한 토카예프 대통령의 대처는 국내에서 신뢰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카자흐스탄의 민족주의는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10년 카자흐스탄 정부가 농토를 중국 투자자들에게 대여하려 하자 시위가 벌어졌고, 그 결과 이 시도가 철회된 적도 있었다.

러시아의 딜레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남부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소요사태는 골칫거리임에 분명하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내에 위치하는 바이코누르(Baikonur Cosmodrome) 우주 기지는 러시아 유인 우주선의 발사기지로도 쓰인다.

그런가 하면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 혈통 사람들이 소수민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 인구의 약 20%가 러시아 민족이다.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부터 권력을 잡고 독재를 휘두르던 전직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지난 수요일 카자흐스탄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해임될 때까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런 식의 정치 일정이 푸틴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크렘린 당국에게 카자흐스탄 사태는 잠재적으로 집중력을 흩뜨리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유라시아 그룹’의 자카리 위틀린은 “모스크바 당국은 시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의 경제, 안보 조직들을 통한 공식적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카자흐스탄 엘리트들과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활용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지난 며칠간 벌어진 카자흐스탄의 소요사태는 안전한 사업 장소로서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 접근이 차단되고 거리에 군인들이 등장함으로써 카자흐스탄에 절실한 에너지와 광업 분야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전망은?

토카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정치 개혁을 위한 새로운 제안들”을 약속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의 다이애나 쿠데베르제노바 교수는 해법은 있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 시민 사회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생력을 가지고 불평등과 공공 서비스 분야의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그녀는 시민 사회에는 존경받는 활동가들이 있고, 그 현상이 젊은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장 벌어지는 시위들에는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위대를 대표하는 협상단이 없는 상태에서는 빠른 해법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지도부가 없이는 시위도 활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유라시아 그룹’의 자카리 위틀린은 이같이 

현재로서는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 상당수가 해외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 비난하면서 소요사태를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돌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주장이 힘을 받을지, 대중적 분노가 그의 지배력에 실질적 위협이 될지는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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