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탐구③ 민유숙]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법관 탐구③ 민유숙]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2.01.17 18:25
  • 수정 2022.01.17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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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4년 1월
-사법연수원 18기 수료
-김명수 現 대법원장 제청
-문재인 現 대통령 임명

지난해 12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0대3 의견으로 조부모가 미성년 손자녀를 입양할 수 없다는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다수의견은 외조부모인 입양허가 청구인들이 고등학생 시절 이혼과 동시에 집을 떠난 친생모인 자녀를 대신해 생후 7개월 외손자를 키운 이제껏 상황이 "아동의 복리에 적합"하다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조부모가 입양할 수 있는지 쟁점에서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조선시대부터 이뤄진 입양의 전통에는 "본래 혈족을 입양"하는 원칙과 "외손자를 입양하거나 손자 항렬의 혈족을 입양"하는 예외가 공존했다. 현대의 입양이 조선시대의 입양을 잇고 있다는 증거로 "존속을 제외하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는 민법 해석이 따라왔다. 입양에서 혈연관계는 오히려 중요 조건이라는 관점이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가부장제에 발을 딛고 있다. 여성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은 "친생부모가 결국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경우에는 (조부모가) 입양을 통해 자녀에게 안정된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동의 복리에 부합"한다며 현대 여성으로서의 가부장제 비판을 잠시 내려놨다. 하지만 민유숙(56·사진) 대법관만은 여성 대법관으로서 '가(家) 너머'를 바라봤다. 

◇ 아동을 위한 입양은 없다
민 대법관은 조재연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과 함께 집필한 반대의견에서 "과거의 가(家)를 위한 입양을 근거로 조부모의 입양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수의견처럼 "조부모의 입양을 넓게 허용하여야 한다는 의견은 '미혼부 또는 미혼모나 이혼 가정의 아이는 불행하므로 조부모가 친생부모를 대체하여 양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조부모 기타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은 당장의 양육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친생부모인 자녀로부터 손자녀의 친권을 넘겨받겠다는 의지는 '어른의 시각'에 그친다고 봤다. 다수의견이 '조부모의 입양 의지' 이전에 '친생부모의 입양 동의'를 말한다지만 "열악한 지위에 있는 친생부모는 조부모의 입양동의서 제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워 입양동의서를 작성해 줄 수밖에 없을 터"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아동이 아닌 가(家)를 위한 입양이다. 

민 대법관은 대안을 생각한다. 입양과 달리 후견은 "정신적·경제적으로 성장"에 따른 "양육의사를 회복할 유인"을 친생부모가 뒤늦게 주장하는 여지를 둔다. 한 번 사라진 친권을 가정법원이 회복시킬 수 있다. 민 대법관이 혼자 쓴 보충의견에서 "(입양될 자녀인) 사건본인과 친생부모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부모가 "친부모인 것처럼 외관을 형성"하는 '비밀 입양'에선 외손자녀의 성·본을 바꿔야 하는데 이 절차는 입양과 별개로 민법에 따른 성·본변경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조부모와 사건본인의 관계를 '친생자'로 가장하고 진실을 숨기는 상황"이 오면 적어도 겉으로 볼 때 미성년 아동과 친생부모의 관계는 끊어진다. 언젠가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아동이 "자아정체성의 혼란으로 진실을 숨겨온 가족에 대한 불신·배신감"을 가진다는 불안한 미래에 다수의견은 눈 감는다. 민 대법관에게 비밀 입양은 결코 아동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 대법관은 자신의 정의관념 '가부장제 철폐'를 지키고자 사법문언주의자임을 고백한다. 친생부모의 입양 동의가 자발적인지 실상 따지지 않는 다수의견은 "실질적으로 부모·자녀의 관계를 맺고 생활하려는 의사"를 입양허가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때 '입양의 의사'는 "'양부모로서의 양육하려는 의사'임이 그 문언상 명확하다" 애초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한 조부모의 '일반 입양 의사'는 '친양자 입양 의사'와 달리 민법에 적히지 않았다.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는데, 혼인·혈연·입양 각 개념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입양은 곧 혈연이 없는 사람 사이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게 자연스러운 법률문언 해석이다.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을 집필한 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법률문언에 반하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대표적인 사법적극주의자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민 대법관과 김 대법관의 팽팽한 대립은 조부모의 미성년자 입양허가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대개 법관이 사법문언주의를 손에 쥐고 있다면 다른 손에는 선례구속주의가 있다. 민 대법관은 배임죄의 판례변경 사건에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판단해야 함에도 같은 쟁점이었던 앞서의 대법원 전합 판례에 쉬이 따르지 못하는 김 대법관을 정면 비판한다. 민 대법관과 김 대법관은 배임죄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최근의 대법원 경향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통적으로 가졌는데 판례변경 이후 둘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김 대법관은 여전히 '김재형 배임죄론(論)'을 주장하는 반면 민 대법관은 '대법원 배임죄론'을 따른다. 

2020년 8월 27일 대법원 전합은 대법관 12대1 의견으로 은행대출 담보물인 공장기계를 제3자에게 처분한 공장주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선례구속주의자가 자기 소신에 반대하는 선례를 인용하는 법'을 보여준다. 민 대법관은 노태악 대법관과 함께 쓴 보충의견에서 유일한 반대의견에 선 김 대법관을 공격했다. 이미 전달인 그해 2월 20일 같은 쟁점에서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결론 냈는데 김 대법관 혼자 딴죽을 건다는 취지다. 반대의견은 공장주는 동산(動産)인 기계를 담보하기로 등기한 순간 담보물 관리자가 되고, 배임죄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 까닭에, 공장주의 공장기계 처분 행위는 배임이라는 삼단논법을 취했다. 반면 다수의견은 담보물 보관은 계속해서 공장주 '자신의 사무'여서 배임죄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했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먼저의 전합 판결 당시 민 대법관은 배임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유일한 반대의견이었다. 당시 김재형 대법관은 김선수 대법관과 함께 동산 양도담보를 약정하면 공장기계 소유권은 은행에 넘어가 공장주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돼 배임죄가 아닌 횡령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었다. 나중의 전합 판결에선 먼저의 전합 판결 입장을 철회한 민 대법관은 그렇게 하지 않은 김 대법관을 오로지 비판하고자 보충의견을 썼다. 민 대법관은 "(김재형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배치되어 보인다"고 적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은 최근의 대법 판결을 따랐을 뿐 소신은 여전히 같다는 고백이다. 이같은 에두른 지적에 김재형 대법관은 나중 전합 판결에선 먼저 전합 판결에서 없던 동산채권담보법상 등기제도 적용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은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일종의 담보로서 등기했기에 '약속을 어긴 죄'로서 배임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예외론을 핀 것이다. 

◇ '대법관 김신'이라는 그림자
선례구속을 지키되 소신 역시 지킨다는 민 대법관의 사법철학은 '1주일은 주 5일'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2018년 6월 21일 대법원 전합은 대법관 8대5 의견으로 성남시청 환경미화원들이 청구한 임금 사건에서 휴일근로에 따른 가산임금과 연장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을 중복해서 지급하라는 원심을 파기했다. 청구인들은 주말 근무 대가인 휴일근로수당에는 연장근로 대가인 연장근로수당도 포함된다며 1.5배가 아닌 2배의 가산수당 지급을 요구했었다.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 때는 통상임금에 각각 0.5배의 가산한 법정수당을 지급한다 정한 게 근거였다. 

그런데 '1주' 개념을 월~금요일 주 5일로 본다면 가산수당 지급이 필요 없어진다. 평일과 휴일 연장근로를 따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토~일요일 합계 16시간만을 근무했다면 '휴일 연장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성남시청 환경미화원의 사례가 그렇다. 이 사건 다수의견은 1주일은 통상 7일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을 넘어서 '1주일은 주 5일'이라 달리 해석했다. 근로기준법이 소정근로의 기준점 '1주'를 명시하면서도 그 정의를 따로 밝히지 않는 게 단서였다. 

이 사건 당시 주심 김신 대법관은 사법문언주의 기치에서 다수의견을 반대했다. 반대의견은 "법률을 해석할 때는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하고,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다른 해석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된다"고 판결문에 썼다. 다수의견을 따르면 소정근로시간은 평일 40시간(8x5)과 주말 16시간(8x2)으로 나뉜다. 1주 최대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치면 '주 68시간제'가 현실이 된다. 이같은 계산은 보통 사람들이 상식으로 이해하는 소정근로시간 40시간에 1주 최대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제'와 다르다. 반대의견에 이름을 같이 현직 대법관은 박정화 대법관과 민 대법관 둘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문언주의가 쇠퇴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다수의견을 집필한 박상옥 대법관은 이같은 반대의견 지적에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이라면서도 "법률의 입법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위와 같은 법해석의 요청에 부응하는 타당한 해석을 하여야 한다"는 2013년 대법원 전합 판례를 인용했다. 문언 해석이 우선이지만 문언이 분명하지 않다면 체계적·논리적 해석을 도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수의견은 구(舊)법과 신(新)법의 체계적 해석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명시적으로 도입한 2018년 개정 근로기준법의 부칙을 살폈다. 신법은 '1주일은 주 7일'이라면서도 부칙에 30인 미만 사업장은 한시적으로 2022년 12월 31일까지 주당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정했다. 신법에 따르면 소정근로시간 40시간, 연장근로시간 12시간, 특별연장근로시간 8시간 '주 60시간'이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반대의견을 따르면 1주 근로시간은 최대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어난 셈이 된다. 체계적 해석론에 따라 다수의견이 1주일을 주 5일로, 1주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으로 본 이유다. 

사법문언주의에 따라 1주일 사건에서 반대의견에 선 민 대법관은 이후 사건에서 오히려 다수의견을 적극 인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다수의견 역시 반대의견이 지적한 '문언적 해석론'을 우선 적용한다는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 원칙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민 대법관이 주심인 대법원 3부는 2020년 12월 10일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사업장이면서도 직장보육시설을 갖추지 않은 사업주가 소속 노동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2011년 개정 전 영유아보육법은 "사업장의 사업주가 직장보육시설을 단독으로 설치할 수 없을 때" ①공동 설치 운영 ②위탁 계약 ③보육수당 지급을 의무로 정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직접 보육수당을 청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민 대법관은 이같은 원심 판결은 문언의 통상적인 해석에 어긋난다고 했다. 영유아보육법은 분명 사업장 규모와 보육 시설 운영 여부에 따라 보육수당 지급을 사업주의 의무로 정했기 때문이다. 민 대법관이 이때 인용한 판례가 1주일 사건 다수의견이 사실상 당시 반대의견에서 부분 취사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 원칙이다. 민 대법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법령 규정이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일 경우"에는 "명문의 규정이 있다면 그에 따라야 할 것"이라는 2010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한 뒤 해당 법리를 "사인 간에 특정행위의 이행을 명하는 경우"에도 확대 적용했다. 대신 "이행규정의 경우 당사자가 직접 의무규정대로의 이행을 구하고 법원이 이를 명하는 방법"을 단서로 붙였다. 보육수당 지급 의무 이행을 구한 노동자의 청구에 딱 맞았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민유숙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2020년 5월 14일 대법원 3부는 민 대법관이 역시 주심인 국유림 반출의무 사건에서 1주일 사건 다수의견을 인용한다. 당시 쟁점은 국유림에서 목재를 반출하겠다고 계약한 민간사업자가 사정으로 반출하지 않은 경우 국유림법에 따라 해당 목재가 국고에 귀속되는지였다. 민 대법관은 ①계약 위반→국고 귀속 ②반출의무 위반→계약 위반 ③미반출→국고 귀속, 이라는 삼단논법으로 간결하게 판결했다. 국유림법 시행규칙상 미반출 예외 '목재가 손상 또는 부패할 경우'를 이 사건에서 인정한 원심 판결이 틀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률의 위임이 없어 시행규칙 조항이 무효인지, 시행규칙 조항은 유효한데 미반출 예외 규정이 반출의무 위반과 인과관계가 없는 것인지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사법문언주의가 법률문언에 따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판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건 당사자로선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 취하고, 또 취하라
1주일 사건 대법원 선고 이후 이때 다수의견이 밝힌 문언적 해석론을 인용한 건 딱 2건이다. 모두 주심 대법관은 민 대법관이다. 배임죄 두 사건에서처럼 민 대법관은 선례를 따르면서도 소수의견에 불과한 자신의 소신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선례구속주의자로서, 그리고 사법문언주의자서 민 대법관은 김신 대법관을 닮았다. 2020년 8월 배임죄 사건에서 민 대법관 문장 전반에 깔린 아리스토텔레스 법언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는 사실 김신 대법관의 것이다. 지난 2018년 5월 대법원 전합은 대법관 8대5 의견으로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 판례를 유지했다. 이때 김신 대법관은 '동산 이중매매는 배임 아님' 2011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도 같게 다루는 것이 옳다"고 유독 부동산 사건에서만 배임죄를 인정한 다수의견의 일관성 없음을 비판했다. 김신 대법관은 "(배임죄) 문언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하여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도외시한 해석"이라며 그 근거로 사법문언주의를 들었다. 반면 다수의견은 부동산이 동산과 다르게 자산으로서 가지는 가치가 월등한 국내 현실에서 이중매매 피해자를 국가형벌로 구제해야 한다는 사법적극주의에 자리잡는다. 김재형 대법관과 박상옥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보충하며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한 다음 잔금 지급일까지 사이에 부동산의 가액이 올라간 경우에는 매도인이 언제든지 아무런 제약 없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사례가 빈번함을 든다. 보충의견은 "형벌법규의 해석에서도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입법연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2002년 대법 전합 판례를 인용했다. 문언적 해석론이 언급됐지만 방점은 그 뒤에 나오는 목적론적 해석론에 찍혔다. 

김재형 대법관은 부동산 이중매매 배임 사건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을 훗날 동산 양도담보 배임 아님 사건 반대의견에서 인용한다. 바로 민 대법관이 다수의견 보충의견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민 대법관은 배임죄에 한정해선 김신 대법관보다는 김재형 대법관과 가깝다. 그런데도 앞서 형성된 선례를 지키고 법률문언 해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쟁점이 형성될 때는 김재형 대법관보다는 김신 대법관에 가깝다. 2018년 8월 퇴임한 김신 대법관을 같은 해 1월 취임한 민 대법관이 이어 김재형 대법관을 견제한다. 민 대법관과 김재형 대법관 모두 보수와 진보에 구애받지 않는 중간 어디에서 각각 사법문언주의와 사법적극주의를 때로는 목적으로, 때로는 수단으로서 고유의 정의관념을 고수한다. 그 결과 이들이 관여한 대법 전합 판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있다. 

맨 왼쪽의 민유숙 대법관. 그 뒤로 박정화 대법관이 보인다. [출처]
맨 왼쪽이 민유숙 대법관. 그 뒤로 박정화 대법관, 가장 오른쪽 노정희 대법관이 보인다. [출처]

◇ '여성 대법관들'과 다른 여성 대법관
민 대법관 앞에서 사법문언주의를 내세운 김신 대법관에게도 고유의 정의관념이 있었다. 이때 사법문언주의는 살짝 목적에서 수단으로 자리를 지킨다. 김신 대법관은 퇴임 후 법무법인 지평 소속 변호사들과 공동 저술한 「청년이 묻고 대법관 김신이 답하다」(뿌리와이파리, 2021)에서 1주일 사건을 두고 "근로자의 시각에서 보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근로를 하고 지급받는 임금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어서 가산임금이라도 받기 위해 연장근로를 수용하였던 것"이라고 해설했다. 판결문에는 굳이 드러내지 않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그가 소수의견으로 지키고자 한 정의관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민 대법관의 정의관념은 뭘까. 그는 어떤 여성 대법관보다 '반(反)가부장 타파'를 시대정신으로서 추동한다. 민 대법관은 2020년 8월 27일 대법원 전합이 대법관 11대2 의견으로 기아자동차 산업재해 유족이 청구한 특별채용을 기각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을 때 반대의견에 섰다. 민 대법관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이 가부장제 산물이라는, 다른 대법관들이 감히 발견하지 못한 관점의 높이를 판결문에 진열한다. 조부모의 손자녀 사건 때처럼 다른 여성 대법관들은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쪽에 판결의 기준선을 긋지 않았기에 민 대법관의 정의관념은 더욱이 고유했다. 

이 사건 쟁점은 사적자치 결과물인 노사 단체협약이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에 위배돼 무효인지였다. 반대의견에 가담한 이기택 대법관이 본 선량한 풍속은 '채용 기회의 공정성'으로 다수의견은 특별채용이 "일자리 대물림"이 아니라는데 집중했다. 역시 반대의견에 선 민 대법관은 이같은 주류 시각에서 벗어나 "가족 형태의 다변화"가 현대의 선한 풍속이라 주장했다. 반대의견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이 대법관의 '공정'과 민 대법관의 '반가부장'이 다소 병렬적으로 기술된 배경이다. 

민 대법관은 "과거 우리나라의 가족 형태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어 남성 배우자가 가족의 생계와 부양의 책임을 지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면서도 "(현대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한 후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른바 비혼 1인 가구와, 혼인을 통해 부부관계를 형성한 경우에도 자녀를 갖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는 풍속을 독해했다. 가장이 산재로 사망한 이후 유족인 직계비속이 특별채용되면 자녀가 없는 비혼·1인 가구는 차별을 받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민 대법관은 기아차의 이같은 노사협약이 "1인의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전제로 하는 방식의 보상"이라고 규정했다. 

다수의견으로서 제2보충의견을 작성한 김재형 대법관은 선량한 풍속으로부터 보호받는 대상을 "구직희망자 등 제3자"로 포괄적으로 정의하면서 여기에 비혼·1인 가구가 포함되는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조항은 성별, 인종, 종교, 출신 등을 이유로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을 채용에서 배제하는 합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며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다양성을 배제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고 추상적으로 민 대법관 의견에 반박했다. 이 사건 주심 김상환 대법관과 노동주의자 김선수 대법관이 집필한 제1보충의견은 이 부분을 아예 검토하지 않았다. 다만 단체협약이 보장하는 노동3권에 반대의견이 견주는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이 "개념 자체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 "사회적 경험과 관점 혹은 이해관계 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매우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가치 개념"이라 평가절하했다. 다양성을 말하는 시선의 각도가 민 대법관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민 대법관이 자신의 정의관념을 밀어붙일 때에는 굳이 사법문언주의라는 각주를 달지 않는다. 실제 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사건 판결문엔 '문언'이란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면모는 때로 민 대법관이 사법적극주의자를 표방하는 김재형 대법관과 같은 위상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 착시의 빈도나 크기만큼이나 민 대법관이 자신의 정의관념을 현실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김 대법관이 '문언해석이 정의관념에 반할 때' 사법적극주의를 부각하면, 민 대법관은 '문언해석이 정의관념과 합할 때' 사법문언주의를 상기한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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