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산업] 누구도 말 못한 진실, 믿었던 듀폰의 '두 얼굴'
[영화로 읽는 산업] 누구도 말 못한 진실, 믿었던 듀폰의 '두 얼굴'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2.01.27 16:09
  • 수정 2022.01.27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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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폰 폐기물질 사태 다룬 '다크 워터스'
국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닮은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27일부터 시행됐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으로, 지난해 1월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을 두고 중대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과 법 규정에 모호한 부분과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시민재해 또한 처벌과 보상이 쉽지 않다는 주장 나오는 가운데 여러 방면에서 중대재해법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연합뉴스
ⓒ연합뉴스

노동자가 숨지거나 시민들에 중대피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법이 오늘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률은 '경영책임자'라는 개념을 도입,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재벌 총수 등에 대한 처벌이 가능케 한 것이 특징이다. 중대재해법은 38명이 숨진 2020년 4월 경기 이천 물류 창고 화재 등을 계기로 제정돼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내용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동반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감독의무를 위반한 법인 또는 기관에게 벌금형을 부과하며,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야기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징벌적 손해배상)이다.

언뜻 보면 중대재해는 건설․산업 분야에서 주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며, 소비자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중대재해법에 '중대시민재해' 사안에 따라서 소비자와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과 중대시민재해 나뉘는데,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 사망이나 복수의 중상, 직업성 질병이 발생한 건이고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나 제조물 등 설계·제조·설치·관리 결함으로 생긴 사고다.

국내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및 라돈침대 방사선 사건과 같은 소비자의 안전을 크게 위협한 사고 등이 시민재해에 포함된다. 글로벌 사례로 범위를 넓혀보면 듀폰사의 폐기물질 유출 사태로 인한 집단소송 사례가 있다. 

■ 프라이팬, 의류, 콘택트렌즈까지…듀폰 폐기물질 사태 다룬 '다크 워터스'

영화 '다크 워터스' 포스터 일부.
영화 '다크 워터스' 포스터 일부.

"듀폰은 화학 발전을 위해 화학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듭니다. 모두가 편안한 삶을 행복하고 길게 누리도록요.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이란 말은 단순히 듀폰의 슬로건이 아니라 우리의 DNA입니다."

국내에선 2020년 3월 개봉한 마크 러팔로 주연의 영화 '다크 워터스'는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이 폐기물질 유출로 전세계를 독성 물질 중독에 빠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듀폰은 테프론이라 불리는 PFOA(과불화옥탄산)을 이용해 들러붙지 않은 후라이팬을 제작해 연간 10억 달러(약 1조 2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 물질이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영화는 1975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파커즈버그의 호수에서 젊은 남녀들이 수영을 하는 시퀀스로 시작된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자 문제의 장소인 파커즈버그의 이 강에 정체 불명의 배가 들어와 폐기물질을 살포한다. 이후 1998년 농부 윌버 테넌트가 자신이 키우던 젖소 190마리가 죽었다며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롭 빌럿을 찾아오며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윌버는 듀폰이 자신의 농장 근처에 쓰레기 폐기장을 지은 이후 화학물질 때문에 물이 오염돼 가축들의 피부가 부풀고 눈이 먼 뒤 대량 폐사했다고 주장한다. 롭은 본래 듀폰 변호를 전담하는 대형로펌 '태프트'의 변호사다 보니 별 일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이후 듀폰이 보내온 자료를 조사하다가 당시 'PFOA'라는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단어가 반복되는 데 주목한다.

화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빌럿은 PFOA의 독성은 '마치 타이어를 삼키는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듀폰 대리인은 "고작 농부 때문에 경력을 망치고 싶냐"고 협박을 하지만, 수많은 자료를 분석한 끝에 테프론이라 불리는 코팅 프라이팬 원료에 PFOA가 함유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낸다.

합성 화학물질 PFOA는 2차 세계대전 중 비밀리에 개발됐는데 물에 반발성이 있어서 탱크를 방수 코팅하는 데 쓰였다. 몇몇 회사가 이를 전쟁터에서만 쓰는 것을 넘어 미국의 가정에서도 활용하게 되고 듀폰도 이에 동참한다. 듀폰은 PFOA에 C8이란 이름을 붙였고 프라이팬용으로 '테프론'이라는 이름을 고안한다. 테프론은 영화의 배경인 파커즈버그에서 탄생했는데, 이를 제조하는 노동자들이 메스꺼움과 고열에 시달렸고 듀폰은 원인 조사를 위해 노동자들의 담배에 테프론을 섞는다.

1962년 듀폰 노동자들은 전부 병원에 입원했고 일이었다. 듀폰 외에도 스카치가드에 쓰이는 화학물질을 개발한 3M은 원숭이한테 이를 실험했는데 원숭이들 대부분이 죽게 된다. 듀폰의 이어진 생쥐 실험에서도 생쥐의 장기가 부풀고 기형 새끼를 낳게 된다. 듀폰은 암을 비롯한 C8의 유해성을 알고 있음에도 먼지는 대기로 배출해버리고 폐기물은 던져버리거나 드럼통에 넣어 매립했다.

■ '유해물질' '가습기' 소송 나선 피해자들…소송기간 길고 피해 산정 힘들어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40년 간 PFOA가 독성 물질임에도 방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롭은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에 나서게 된다. "기업이 한 지역을 병들게 하는 뭔가에 노출시켰을 경우 기업은 반드시 그 지역 건강을 관찰해야 한다"는 논리로 듀폰을 고소한 것이다. PFOA는 언급된 대로 카페트, 유아용 매트, 종이컵, 콘택트렌즈 등에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었다.

소송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소송의 장기화였다. 롭은 PFOA의 심각성을 보고하기 위해 무려 6만9000명에 달하는 이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과학자들은 샘플 분석 외에도 지역민들의 기저 질환과 생활사 등 전반적인 것도 고려해야 했다. 듀폰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 과학적 검증을 하는 데걸린 시간은 무려 7년이었다. 혈액 샘플을 채취했던 한 남자는 고환암에 걸려 사망하기도 했다.

롭은 정부가 듀폰에 매수됐다며 소송 비용을 올라가게 해서 원고 피해자들을 손 떼게 하려 한다며 분노한다. 보상금 문제가 걸려 있었지만 기약 없는 결과에 원고 측은 지쳐간다. 7년이라는 시간은 기다리기에 너무나 길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전염병학 연구로 불린 조사를 통해 연구팀은 결국 C8 노출과 6가지 종류의 중증 질병과의 연관성을 밝혀내게 된다.

듀폰은 결국 책임을 인정하고 3535건에 대해 6억7070만 달러(약 8038억원)를 배상한다. 소송 이후 전세계적으로 PFOA가 금지됐고, 20년 이상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롭은 싸우고 있다. 

듀폰이 이처럼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하게 됐지만 이런 '시민재해'를 어떻게 검증하고 길어지는 소송 기간을 어떻게 조치할지는 큰 문제다. 국내에 비교할 만한 사례로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1년 전인 2011년 8월 31일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같은해 11월 동물 흡입 독성 실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을 확인해 시중 가습기 살균제 6종을 수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2012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 유가족 6명이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상대로 첫 손해배상을 소송 제기한 뒤 살균제 제조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유해성이 알려진 지 1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피해자들은 책임자 처벌과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0일 기준 피해인정 신청자는 7535명이고 이 중에 피해구제를 인정받은 피해자는 4120명(1018명 사망)에 달한다. 피해 규모는 무려 9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피해 경험자의 0.4%만이 정부의 피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는 수치다. 

듀폰의 사례처럼 소송 기간이 길고 피해 규모 산정이 힘든 점도 문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2020년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질환으로 인정한 비율은 8.2%로, 신청자 10명 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질환을 늘리고 인정률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 등이 지난 1월 무죄를 선고받으며 시민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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