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英 '기업살인법' 본뜬 중대재해법…실효성은?
[중대재해법 시행] 英 '기업살인법' 본뜬 중대재해법…실효성은?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2.01.27 16:14
  • 수정 2022.01.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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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적용 대상 협소·5인 미만 사업장 제외…취지 어긋난단 지적 나와
"경영자 처벌 심하면 경영 위축 우려, 5배 손해배상도 과도" 우려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27일부터 시행됐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으로, 지난해 1월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을 두고 중대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과 법 규정에 모호한 부분과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시민재해 또한 처벌과 보상이 쉽지 않다는 주장 나오는 가운데 여러 방면에서 중대재해법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중대재해처벌법. [출처=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출처=연합뉴스]

가습기 사태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가습기 사태는 위험한 원료 및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 및 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 시민재해 성립 조건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가습기 사태는 유해성을 확인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에 다수의 사망자, 폐 섬유화, 폐 손상 등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다. 법안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으므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도 있다. 법인 또는 기관에게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던 이전과 달리 중대재해법 위반도 기소 이유에 포함시킬 수 있다.

■ "규제 적용 대상 협소,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본래 취지 어긋나"

그럼에도 시행되는 법안에는 본래 법령보다 규제 대상 범위와 보호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적용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법률에서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 원료·제조물의 범위에 빠진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서는 '별표'를 두어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종류(11가지)를 한정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별표의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생활화학제품법)'에서 관리하는 살생물 제품에 해당한다. 하지만 별표에서 정하지 않은 생활용품이나 공산품 등에서 시민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별표에 해당하지 않는 사각지대의 제품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라돈 침대, 생리대 사태 등 관리 사각지대의 원료물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중대재해법도 결국 거대한 구멍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원료 또는 제조물의 종류와 범위를 임의로 축소한 '별표 5'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단체들은 그 대안으로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 안전장치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준용해 국내에 등록된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적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화평법에 따라 위험을 확인하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은 용도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행위를 한 경우 사업주를 강력 처벌하는 방안이다. 

중대재해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권리찾기유니온은 26일 오전 11시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한국종합안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하태승 민주노총 법률원은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재해자의 33%, 사망자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라며 "중대산업재해로부터 시민과 종사자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법이 적용되어야 할 곳이 바로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법 시행에 있어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고 5~49인 사업장은 법 시행이 2024년 1월까지로 3년 유예됐다. 하태승 법률원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도저히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근로자들의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 헌법 위반"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제3조에 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심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목소리가 반영된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위험한 작업장에 근무자 2인 1조 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강 의원은 “현행법은 경영책임자 등 범위에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를 포함한다”며 “이와 관련해 사업주나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담당자를 지정해 법적 책임을 전가할 것이란 우려도 많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지난 25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5인 미만 사업장과 경영책임자 등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더욱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밖에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한 3년 유예기간 삭제, 경영책임자의 법정형 하한을 1년에서 3년으로 상향, 벌금 상한을 삭제하고 전년도 매출액 또는 수입액 기준으로 산정 등도 개정안에 담겼다.

■ "경영자 처벌 심하면 기업경영 위축 우려…5배 손해배상 과도"

[출처=각 사]
[출처=각 사]

경영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부여되는 안전보건확보 의무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 법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처벌 수위로 징역형의 하한을 둔 것은 지나치고, 오히려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해주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기업의 안전관리 등 담당자 78%가 중대재해처벌법 상 경영책임자 처벌이 과도하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 20일 '중대재해법 D-7 최종 체크포인트 설명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모호한 법조항 때문에 기업들의 대응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애로사항은 △모호한 법조항(해석 어려움) 43.2%,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 25.7%, △행정·경제적 부담(비용 등) 21.6%, △처벌 불안에 따른 사업위축 8.1% 순이었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77.5%였다. 

기타 의견으로는 △법 시행 후 충분한 계도기간을 둬야 한다, △책임자 귀책이나 인과관계가 모호하다, △전담조직 구성 등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정부의 세부 매뉴얼·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됐다. 이날 주제발표를 진행한 김성주 김앤장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에 대한 위험성 평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이 법의 목적은 처벌보다 재해 발생예방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건설현장의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중처법이 전격 시행된 이후에는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업장의 법 적용과 관련된 많은 다툼과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의 사망사고가 안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감소되기 위해서는 사업장의 노력이 필수적이겠지만, 이와 함께 개별 기업이 안전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법·제도가 명확하게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안전지원사업도 대폭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과 함께 '경제5단체'에 속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또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지난 19일 제2차 '중대재해 예방 산업안전 포럼'에서 인사말을 통해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건설현장의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시행된 이후에는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업장의 법 적용과 관련된 많은 다툼과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령이 가지고 있는 불명확성이 매우 커 의무주체 및 의무이행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횡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점에 유의하여 면밀하고 구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손해배상제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대재해법에는 중대재해로 발생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가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3배의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5배의 배상책임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특허침해와 영업비밀 누설과 같은 기업에 큰 피해를 끼치는 중대 범죄도 징벌적 손해배상 상한선은 3배인데,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은 경영에 있어 리스크가 크다"며 "징벌적 배상제가 완전한 해결책인 마냥 신봉해선 안되고, 기업에게만 처벌 강화와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정치권과 정부도 노력하고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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