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은 어떻게 동계올림픽의 '꽃'이 되었을까
[베이징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은 어떻게 동계올림픽의 '꽃'이 되었을까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05 06:29
  • 수정 2022.02.0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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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전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 피겨스케이팅의 역사
2010년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식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가운데)선수와 은메달 아사다마오(왼쪽)선수, 동메달 조애니 로셰트(오른쪽) 선수 [사진=연합뉴스]
2010년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식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가운데)선수와 은메달 아사다마오(왼쪽)선수, 동메달 조애니 로셰트(오른쪽) 선수 [사진=연합뉴스]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할 피겨스케이팅은 과감한 점프와 아찔한 회전, 매혹적인 의상 등으로 청중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빙판 위에서 기하학적인 패턴과 자태를 뽐내며, 현대 스포츠 중 예술성과 운동성에 있어 백미에 속하는 피겨스케이팅의 기원은 오늘 날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수세기를 걸쳐 진화해온 아이스 스케이팅의 역사

아이스 스케이팅의 기원은,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 사람들이 겨울에 얼어붙은 호수나 물길을 건너기 위해 말이나 사슴, 양 같은 대형 동물의 정강이뼈를 활용했던, 대략 B.C.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원시 형태의 스케이트는 끝이 날카롭지 못했기 때문에 고대의 스케이터들은 앞으로 지쳐 나아가기 위해 장대나 막대기 같은 보조기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다가 14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인들이 강철을 날카롭게 갈아 스케이트 날을 만들면서부터 속도와 기교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 후 1660년 네덜란드에 망명 중이던 찰스2세가 영국 왕에 복위한 후 아이스 스케이팅의 인기는 바다를 건너 영국에 상륙하게 되었다.

피켜스케이팅의 기교는 18세기 영국에서 사람들의 여가활동이 늘어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1740년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최초로 생겨난 피겨스케이팅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각 발로 원을 그리며 3개의 모자 더미를 뛰어넘는 고난도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772년에는 영국인 로버트 존스가 『스케이팅 지침서(A Treatise on Skating)』라는 최초의 교습서를 펴내기도 했는데, 이 책은 얼음 위에서 원, 구불구불한 선, 나선 및 8자 형태 같은 모양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은 또 빙판에 아로새긴 형태의 정확성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영국식 피겨스케이팅’을 대중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1880년대 말이 되면서 피겨스케이팅 시합에서는 출전자들에게 스케이터가 창안한 특별한 자태뿐만 아니라 8자 형태에서 출발한 41가지의 기술을 의무적으로 시연하도록 자리 잡아갔다.

미국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피겨스케이팅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발발 이전부터 피겨스케이팅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케이트 날을 신발에 부착할 수 있도록 발전된 기술은 아이스 스케이팅을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858년 뉴욕 센트럴파크의 얼어붙은 연못이 개장되었을 때에는 하루에 3만 명이 몰려들 정도로 아이스 스케이팅은 인기 있는 여가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뉴욕에서 나고 자란 잭슨 헤인즈는 이른바 ‘영국식 피겨스케이팅’ 기법이 인기를 끌면서 이 운동에 예술성과 유연함이 부족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서커스 단장인 P.T. 바넘에게 발탁되어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뛰어난 춤 솜씨를 자랑하던 헤인즈는 음악을 배경으로 발레 동작, 도약 및 회전이 포함된 자유분방한 피겨스케이팅 스타일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대체로 그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자 헤인즈는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했는데, 유럽 사람들은 1868년 그가 대륙 순회공연을 시작하자 그의 혁신적 기술에 찬사를 보내주었다. 헤인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스케이팅에 왈츠를 가미하면서 청중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방가르드한 ‘국제 스타일’을 교습하기 시작했다.

1882년, 헤인즈의 ‘빈 스케이팅 클럽’에서 배운 제자들이 최초로 국제 피겨스케이팅 시합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노르웨이 출신의 악셀 폴센이 한바퀴 반을 회전하는 새로운 도약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 기술은 이후 ‘악셀 점프(Axel jump)’로 불리게 된다.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탄생한 피켜스케이팅의 스타는 스웨덴 출신의 울리크 살쇼브였다. 그는 1901년과 1911년 사이 10번이나 세계 최고의 영예에 올랐다. 그는 한쪽 발 안쪽 뒤축으로 차올라서 다른 쪽 발 바깥쪽 뒤로 착지하는, 현재는 그의 이름이 붙은 기술을 선보였다.

한편 피겨스케이팅은 1902년 세계 대회에서 영국 출신 매지 사이어스가 살쇼브의 뒤를 이어 2위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국제스케이팅연맹(ISU)이 여성의 출전을 규정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여성 스케이터라는 개념 자체가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시대였다.

국제스케이팅연맹은 곧바로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솜씨를 겨루지 못하도록 했지만, 1906년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 대회가 도입되었고, 1908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대회는 가장 대규모 피겨스케이팅 경기로 치러지게 되었다.

1994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미국 여자피겨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그러나 대회 도중 괴한이 낸시 캐리건의 무릎에 칼을 꽂았다. 뜻밖에 범인은 하딩의 보디가드이자 전 남편으로 밝혀졌다. 라이벌인 캐리건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딩이 폭력을 사주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미국 스포츠계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됐다. 낸시 캐리건(왼쪽)과 토냐 하딩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1994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미국 여자피겨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그러나 대회 도중 괴한이 낸시 캐리건의 무릎에 칼을 꽂았다. 뜻밖에 범인은 하딩의 보디가드이자 전 남편으로 밝혀졌다. 라이벌인 캐리건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딩이 폭력을 사주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미국 스포츠계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됐다. 낸시 캐리건(왼쪽)과 토냐 하딩.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동계올림픽의 첫 번째 종목으로 선정된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은 1908년 하계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데뷔했다. 이 올림픽에서는 살쇼브가 남자 금메달을, 사이예즈가 여자 금메달을 획득하고, 남편과 함께 출전한 혼성 부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피겨스케이팅은 1924년 동계올림픽 종목에 최초로 선정되기 전 1920년까지 하계올림픽을 통해 솜씨를 겨루었다.

피겨스케이팅은 1936년까지 여성이 출전할 수 있는 동계올림픽의 유일한 종목이었으며,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여성 스포츠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소냐 헤니 같은 걸출한 스타는 매우 드물었다.

1924년 동계올림픽에 11세의 나이로 출전해 꼴찌를 기록했던 노르웨이의 피겨 영웅 소냐 헤니는 이후 치러진 3번의 올림픽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를 돌며 경기를 펼쳐 매진사례를 기록했고, 1930년대 말에는 할리우드에 진출에 박스오피스를 이끌었다.

1968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피겨 스타 페기 플레밍의 경기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총천연색으로 생중계된 이후부터 텔레비전은 피겨스케이팅을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포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때문에 피겨스케이팅 기술의 근간이 되었지만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지루함을 가져다주었던 의무 자세는 결국 1990년 폐지되는 운명을 맞이하기도 했다.

동계올림픽에서의 피겨스케이팅은 텔레비전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지만 1994년 동계올림픽 최대의 스캔들의 터졌을 때 그 극에 달했다. 미국 선수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이 그녀의 경쟁자인 낸시 케리건의 무릎에 칼을 꽂는 엽기적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 텔레비전 방송 사상 6번째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단순히 원과 8자 기술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던 피겨스케이팅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 이기도 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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