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정책과 북한 상황에 대한 한미 협의-대화는 없다. 김정일 여전히 권좌에
대북 정책과 북한 상황에 대한 한미 협의-대화는 없다. 김정일 여전히 권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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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생성일 분류 출처 태그
08SEOUL1946 2008-10-06 03:10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기 밀 SEOUL 001946
국방부망 배포1)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0/06/2018
태그: PGOV2), PREL3), KS4), KN5)
제 목: 대북 정책과 북한 상황에 대한 한미 협의- 대화는 없다. 김정일 여전히 권좌에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6). 근거 1.4(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4/10 14:41


요점




1. (기밀) 11월 24일 알렉스 아비주 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하는 미국대표단, 그리고 허철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국정부 대표단 사이의 세 차례 예정된 한미 협의 중 첫 일정에서 허철은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는 본질적으로 지난 10년간의 정책과 동일하다고 지적하였다: 평화 통일을 최종 목표로 대화와 교류를 통한 화해를 촉진한다. 그러나 비핵화, 상호 이익, 국민적 지지(“국가적 공감대”), 그리고 국제적인 협력 노력을 강조하는 등 그 방법론에선 변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복원하길 원한다고 수차례에 걸쳐 분명히 밝혔지만, 단답형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아무 일도 벌이고 있지 않다.”라고 허철은 말하였다. 이충면 청와대 안보전략보좌관실 행정관은 한국정부는 남북 관계의 틀을 재조정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 결국에 북한이 대화에 동의할 걸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 (기밀) 이종주 통일부 정책기획과 부과장은 북한은 “블랙박스”로 남아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정부는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해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당국은 김정일이 41일 동안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보도가 없는 점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김정일의 뇌졸중 보도 이후 인민의 통제를 옥죄는 조짐과 같은 정치적으로 특이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로선 이종주는 “북한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으며, 김정일이 평상시처럼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제적 측면과 관련해 이종주는 북한의 연간 국내총생산이 계속해서 줄고 있고, 2008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이 주장한 경제력 달성에 실패했다고 지적하였다. 요점 끝.


남북대화의 부재




3. (기밀) 알렉스 아비주 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하는 미국대표단과 허철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국정부 대표단은 (가) 북한의 상황과 남북관계; (나) 대북 원조와 탈북자; 그리고 (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9월 24~25일 서울에서 회합하였다. 이 전문은 2시간 회의 일정 중 첫 번째 보고이다.

4. (기밀) 허철 단장은 이명박 대통령 아래의 남북 정책은 평화 통일을 최종 목표로 삼아 대화와 교류를 통한 화해 도모하는 지난 10년간의 정책과 대체로 변동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비핵화, 상호 이익, 국민적 지지(“국가적 공감대”), 그리고 국제적인 협력 노력을 강조하는 등 그 방법론에선 변화가 있다. 한국정부는 확고한 원칙을 유지하겠지만, 그 접근 방식은 유연해 질 것이다. 국가적 공감대가 중요하며, 비핵화 및 여타 현안과 관련해 국제적인 노력의 바람직한 조율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남북관계는 따로 분리될 수 없다. 경제협력은 비핵화에 진척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실현 가능하고 그 비용이 감당할 만해야 한다. 목표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모든 한국민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5. (기밀) 허철은 이명박 초기 정책목표는 외부로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도록 계산된 북핵 벼랑끝 전술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작정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대신 남북관계가 “화해와 상호이익”에 기초해 “더욱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

6. (기밀) 한국정부의 바람직한 방향을 설명하면서, 허철은 남북 대화와 관련해 “아무 일도 벌이고 있지 않다.”라고 인정하였다. 7월 11일과 8월 15일 이 대통령이 대화를 요구하는 연설을 한 바 있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언사를 지속하는 식으로 응답하였다. 북한은 한국정부가 2007년 10월 노 대통령과 김정일의 정상회담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입장은 10.4 선언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대신 과거 모든 남북 합의의 이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2007년 10월 합의가―통일부는 그 이행 비용이 미화140억 달러가 소요되는 걸로 평가한다―예전의 모든 합의를 포괄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허울뿐이다.”라고 허철은 말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허철은 남북대화가 남겨진 모든 남북 현안을 해결하는 출발점이라고 주장하면서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7. (기밀) 아비주 차관보는 남북 대화와 궁극적인 통일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지를 재천명함으로써 답변을 대신하였다. 그는 1991~1992년 기본합의서 및 비핵화 합의서에 대한 한국정부의 다짐에 환영한다고 말하였다. 아비주는 북한이 7월 11일 충격적인 금강산 피격 사건을 해결하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북한 대화 상대역에게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아비주는 여러 어려움을 지적하며, 한국정부가 답보 상태를 타개할 여타 과감한 조처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물었다. 허철 단장은 “타개책”은 없다. 한국정부는 그냥 기다리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금강산 관광은 꼼짝마; 개성공단은 계속




8. (기밀) 이종주 통일부 정책기획과 부과장은 두 가지 주요 남북 경협 사업을 논의하였다: 금강산 관광, 그리고 개성공업지구. 7월 11일 금강산 피격 사건은 미제로 남아있다. 해결하려면 당국자 대화가 필요하며, 양대 사업을 운영하는 현대 아산 등 민간 부문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한국정부는 피격사건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금강산에는 200명의 남한 근로자가 시설 유지를 위해 남아있다.

9. (기밀) 금강산 사건 해결에 대한 북한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묻자, 이종주는 피격사건은 인민군의 체면 손상 가능성과 관련이 있다는 그녀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였다. 그러므로 경제적 근거로 해결될 수가 없다. 그러나 금강산 현지에 체류 중인 한국 기업인들의 발언에 근거해 보면, 북한이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다는 조짐이 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10. (기밀) 개성공업지구로 화재를 돌려, 정치적 상황에도 사업은 중단 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이종주는 말하였다. 3만 명의 북한 근로자와 1,200명의 한국 근로자를 고용한 79개 업체가 현재 개성공단에서 가동되고 있으며, 40개의 추가 업체가 시설물을 건설하고 있고, 올해 말 즈음에 가동을 시작할 걸로 예상한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이종주는 아비주 차관보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길, 2008년 3월 한국정부 당국자들을 개성공단에서 추방한 일은 북한의 상징적인 항의 표시로 여겨지지만, 공단 가동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일은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이종주는 말하였다.

11. (기밀) 남북 정부 간의 관계가 멈춰있지만, 민간 부문의 교류와 무역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8년 1월~6월 중에 255,000명의 남한 사람이 북한을 방문했다. (주석: 통일부 통계를 보면 2007년 12월에 시작한 개성 관광 이후 7,400명과 비교해 2008년 1월~6월 중에 개성을 방문한 남한 사람은 64,000명에 달해 방문객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통일부 수치를 보면 금강산 방문객도 2007년 수준과 비교해 10퍼센트 상승하였다. 그러나 2008년 전체 방문객 수치는 금강산 관광이 폐쇄된 7월 이후로는 2007년 수준에 한참 못 미칠 공산이 크다. 주석 끝.) 이종주는 남북 교역이 2008년 상반기 중에 미화 16억 달러에 도달했는데, 2007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퍼센트 상승한 수치라고 덧붙였다.


북한 상황: 김정일 여전히 권좌에




12. (기밀) 통일부 이종주는 북한의 정치 상황에 대한 한국정부의 진단을 역시 제공하였다. 김정일은 2008년 첫 8개월 중에 75차례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므로, (9월 23일 이후로) 41일 간 모습을 모이지 않은 점, 그리고 9월 9일 북한의 60주년 건국 기념일에 참석하지 않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확인된 보고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평양의 특이한 동향의 증거로 볼 분석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한국정부가 논평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적대적 행위로 간주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국회 발언을 언급하였다. 북한은 국제 영화제를 개최하고 한국 민간 단체 소속 129명 인사를 수용하는 등 “평상시 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다소 얼버무리는 진단을 제공하였다: 김정일은 현재 평소대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병세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최고 당국자들은 경제 발전과 같은 다른 현안을 빌미로 삼아 정권의 안정과 충성심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다.

13. (기밀) 경제적 측면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이종주는 말하였다: 북한의 국내 총생산은 2006년 1.1퍼센트 정도 하락하였고, 2007년에는 2.3퍼센트 추가 하락이 예상되며, 올해는 또 한 번 줄어들 걸로 예상된다; 전기 공급은 수요의 단 60퍼센트만을 충당하고 있고; 2007년 무역 적자는 미화 11억 달러이다; 그리고 북한의 식량 부족은 백만 톤 정도로 평가되었다. 북한의 “자급자족” 방식은 언급한 경제 문제 해결에 통하지 않을 것이다.

14. (기밀) 이종주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적대적인 태도는 천천히 변화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8월 중 적대적인 발언의 수가 6월 중 발언의 절반 수준이다; 금강산의 북한 당국자들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길 바란다고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북한이 한국의 식량 원조를 수용할 조짐도 있다.


북한의 대외 관계: 중국에 집중




15. (기밀) 진기훈 외교통상부 대북정책협력 과장은 북한의 대외 관계 논의에서 중국이 북중 동맹이나 이념적 공유에 통제되는 게 아닌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대북 관계를 개발하는 걸로 판단한다고 지적하였다. 북한은 경제적 난국을 피하고자 중국에 의존해 왔기에, 중국의 영향력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문제는 중국이 그 영향력을 사용 할지에 달려 있다. 그는 중국의 태도는 북한을 완충 지대로 존치하길 원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는데, 현상 유지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16. (기밀) 진기훈은 일본 납북자 문제의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였다. 2002년 회동 중에 김정일이 당시 고이즈미 총리에게 사과했기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납북자 문제가 “종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후쿠다 총리가 사임할 당시 북한이 약속했던 조사를 중단한 일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7. (기밀) 북한은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원조를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허 단장은 유럽연합과의 관계가 북한에 유용한 이유는 북한이 유럽연합을 미국이나 한국보다도 한층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18. (민감하지만 미분류) 참가자:



대한민국:




허철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평화외교기획단장
진기훈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대북정책협력 과장
이원익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평화체제과장
이충면 청와대 안보전략보좌관실 행정관
이동철 외교통상부 북미1과 제1 서기관
이종주 통일부 정책기획과 부과장
유창호 주한미국대사관 제1 서기관
송용민 외교통상부 대북정책협력과 제2 서기관
임효선 외교통상부 대북정책협력과 제2 서기관
필기자들


미합중국:




아비주 국무부 일본 한국 담당 차관보
테리 러쉬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 과장7)
매리 컴포트 법무담당관실 법률고문관8)
메건 커티스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 근동아시아 프로그램 담당자9)
마이클 오로나 국무부 민주주의, 인권 노동국 아시아/서반구과10)
로라 로젠버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한국과 외교 담당관11)
에이미 파텔 국무부 동아사아태평양국 한국과 담당 장교12)
알리슨 후커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아시아 분석관13)
대사관 필기자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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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1946.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946
 
SIPDIS
 
E.O. 12958: DECL: 10/06/2018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SUBJECT: US-ROK CONSULTATIONS ON INTER-KOREAN POLICY AND
DPRK CONDITIONS: NO DIALOGUE; KJI STILL IN CHARGE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b/d)
 
-------
SUMMARY
-------
 
¶1. (C) At the first of three scheduled consultation sessions
between a U.S. delegation led by DAS Alex Arvizu and a ROKG
delegation led by MOFAT DG for Korean Peninsula Peace Regime
Huh Chul on September 24, Huh noted that the ROKG policy goal
toward North Korea remained essentially the same as that of
the last 10 years: promoting reconciliation through dialogue
and exchanges with the ultimate goal of peaceful
reunification. However, the method had changed, emphasizing
denuclearization, mutual benefit, ROK public support
("national consensus"), and coordination with international
efforts. President Lee Myung-bak had made clear on several
occasions that the ROK wanted to restore dialogue with the
North, Huh said, but the short answer remained that "nothing
is happening." Blue House Assistant Secretary for National
Security Lee Choong-myon added that the ROKG plans to
maintain its principled approach, taking a long-term view of
the need to reframe relations, and is expecting that the
North will eventually agree to talks.
 
¶2. (C) Ministry of Unification Deputy Director of Policy
Planning Lee Jong-joo said that the ROKG had no firm
information about Kim Jong-il's (KJI) health, noting that the
DPRK remained a "black box," but that officials thought it
significant that KJI had not been reported to be seen in
public for 41 days, after 75 reported public appearances
during January-August 2008. The ROKG had seen no unusual
political signs in the DPRK since KJI's reported stroke such
as signs of tightening control of the populace, leading Lee
to conclude that, for now, "North Korea is pretty stable and
Kim Jong-il is running things as usual." On the economic
side, Lee pointed to continuing declines in North Korea's
annual GDP and its failure to achieve the economic strength
called for in the 2008 New Year,s JointEditorial. END
SUMMARY.
 
----------------------------
LACK OF SOUTH-NORTH DIALOGUE
----------------------------
 
¶3. (C) A U.S. delegation led by DAS Alex Arvizu and a ROKG
delegation led by MOFAT DG for Korean Peninsula Peace Regime
Huh Chul met in Seoul on September 24-25 to discuss (a) the
Relationship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and DPRK
conditions; (b) Humanitarian Aid to North Korea and North
Korean Refugees; and (c) North Korean Human Rights Situation.
This message reports on the first of these two-hour sessions.
 
¶4. (C) DG Huh started the discussion of inter-Korean policy
by noting that the ROKG goal under President Lee Myung-bak
remained largely unchanged from that of the last 10 years:
promoting reconciliation through dialogue and exchanges with
the ultimate goal of peaceful reunification. However, the
method had changed, emphasizing denuclearization, mutual
benefit, ROK public support ("national consensus"), and
coordination with international efforts. The ROKG would
remain firm in its principles but flexible in its approach.
National consensus was important, as was good coordination
with international efforts on denuclearization and other
issues. Denuclearization and inter-Korean relations could
not be on separate tracks. Economic cooperation was possible
if there were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but would have to
be feasible and affordable. The goal should be creating an
inter-Korean economic community, in which all Koreans live in
peace and prosperity.
 
¶5. (C) Huh explained that the initial goal of Lee
Myung-bak,s policy was intended to break the "vicious cycle"
of North Korean nuclear brinksmanship calculated to lead to
concessions from the outside. Instead, the relationship
needed to be "more normal," based on "reciprocity and mutual
benefit."
 
¶6. (C) Having explained the ROKG's desired approach, Huh
admitted that "nothing is happening" on inter-Korean
dialogue. President Lee had made speeches on July 11 and
August 15 calling for dialogue, but North Korea had either
not responded or responded with continued negative rhetoric.
North Korea complained that the ROKG did not respect the
inter-Korean summit agreement reached by then-President Roh
 
Moo-hyun and Kim Jong-il in October 2007. However, the ROKG
position was not to reject that agreement, but to instead
focus on implementation of all past inter-Korean agreements.
Huh said the North Korean claim that the October 2007
agreement, which the MOU had recently estimated would cost
USD 14 billion to implement, encompassed all previous
agreements was "specious." Hence, the ROKG needed to remain
patient. Huh closed by asserting that dialogue was the
starting point for resolving all pending South-North issues.
 
¶7. (C) DAS Arvizu responded with a reiteration of USG support
for inter-Korean dialogue and eventual reunification. He
said he appreciated the ROKG's commitment to the 1991-1992
Basic and Denuclearization agreements. Arvizu added that the
USG had stressed to DPRK interlocutors that the DPRK needed
to cooperate in resolving the shocking July 11 Mt. Kumgang
shooting incident. Noting the difficulties, Arvizu asked
whether the ROKG had in mind any bold steps to break the
stalemate. DG Huh replied that there was no "ice-breaker;"
the ROKG was just waiting.
 
---------------------------------
MT. KUMGANG STUCK; KIC CONTINUING
---------------------------------
 
¶8. (C) MOU Deputy Director for Policy Planning Lee Jong-joo
discussed the two main South-North economic cooperation
projects: Mt. Kumgang tourism and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The July 11 Mt. Kumgang shooting incident
remained unresolved. Official dialogue would be needed to
resolve it, and private sector efforts (i.e., by Hyundai Asan
corporation, which operates both projects) would not be
sufficient. The ROKG was maintaining its firm position that
an investigation of the incident was needed. Meanwhile, 200
South Korean employees remained at Mt. Kumgang taking care of
the facilities.
 
¶9. (C) Asked by DAS Arvizu to speculate on North Korea's
reluctance to resolve the Mt. Kumgang incident, Lee said her
personal view was that the incident involved a potential loss
of face for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and hence could
not be solved on economic grounds. However, she added, there
were indications that the DPRK was interested in resolving
the issue, based on comments to ROK businesspeople still at
Mt. Kumgang.
 
¶10. (C) Turning to KIC, Lee said that despite the political
situation, business was proceeding well without
interruptions. She said that 79 companies employing over
30,000 North Korean workers and 1,200 ROK workers currently
operated at KIC, and 40 additional companies had facilities
under construction and most were expected to begin operating
by the end of the year. In response to DAS Arvizu's
question, she said that expulsion of ROKG officials from KIC
in March 2008 was seen as a symbolic act of protest by North
Korea but it had affected operations. North Korea, Lee said,
did not want to do anything that would negatively impact
business at KIC.
 
¶11. (C) Lee added that, even though inter-governmental
relations were on hold, private exchanges and trade had
continued increasing: 255,000 South Koreans had visited the
DPRK during January-June 2008, a 45 percent increase over the
same period in 2007. (Note: MOU statistics show that a
major factor in this increase is the 64,000 South Koreans who
visited Kaesong City during January-June 2008, compared to
the 7,400 who visited after the tours started in December
2007; MOU figures also show Mt. Kumgang visitors up 10
percent over 2007 levels. However, the overall 2008 visitor
figures will likely be well below 2007's since Mt. Kumgang
has been closed since July. End Note.) Lee added that
inter-Korean trade reached USD 1.6 billion during the first
half of 2008, a 60 percent increase over the same period in
2007.
 
-------------------------------------------
NORTH KOREAN SITUATION: KJI STILL IN CHARGE
-------------------------------------------
 
¶12. (C) MOU's Lee also provided the ROKG's assessment of the
political situation in North Korea. KJI had been seen 75
times in public during the first eight months of 2008; hence,
it was remarkable that he had not been seen for 41 days (as
of September 23) and that he did not attend the sixtieth
anniversary commemoration of the founding of the DPRK
 
September 9. However, the ROKG did not have confirmed
reports about KJI's condition nor had analysts seen evidence
of unusual conditions in Pyongyang. She cited MOU Minister
Kim Ha-joong's comment to the National Assembly that it was
inappropriate for the ROKG to comment on rumors about KJI's
condition because this could be seen as a hostile act.
Noting that the DPRK was behaving in a "business as usual"
fashion, hosting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s well as
receiving a 129-member civic group from the ROK, Lee offered
a hedged assessment: KJI appeared to be running things as
usual now, but his likely illness would lead top DPRK
officials to concentrate on stabilization and loyalty at the
expense of other issues, such as economic progress.
 
¶13. (C) On the economic side, Lee said, conditions remained
poor: North Korea,s GDP had declined by an estimated 1.1
percent in 2006 and a further 2.3 percent in 2007, and was
expected to decline again this year; electricity supply was
meeting only 60 percent of demand; the trade deficit was USD
1.1 billion in 2007; and the DPRK had a food shortage
estimated at 1 million metric tons. The DPRK's approach of
"self help8 to address these issues would not work.
 
¶14. (C) Lee said the DPRK's hostile attitude toward the ROK
was slowly changing: the number of hostile comments in the
media in August was half that in June; DPRK officials in Mt.
Kumgang were hinting that they wanted to resume tourism
there; and there were signs that the DPRK would accept ROK
food aid.
 
---------------------------------------
DPRK'S EXTERNAL RELATIONS: CHINA FOCUS
---------------------------------------
 
¶15. (C) MOFAT Director for Inter-Korean Relations Chin
Ki-hoon opened discussion of the DPRK's external relations by
noting that he saw China as developing a strategic and
practical relationship with the DPRK, rather than one
governed by the China-DPRK alliance or shared ideology. The
DPRK relied on China to avoid economic difficulty, so it was
clear that China had influence, but the question was whether
China would use it. He evaluated China's attitude as wanting
to preserve North Korea as a buffer zone, implying a status
quo approach.
 
¶16. (C) Chin said prospects were dim for progress on the
Japanese abduction issue. The DPRK still regarded the issue
as "over" because KJI had apologized to then-Prime Minister
Koizumi during their 2002 meeting, so it was no surprise that
the DPRK had postponed its promised investigation when Prime
Minister Fukuda resigned.
 
¶17. (C) Chin said the DPRK focuses on obtaining aid in its
relations with European Union countries. DG Huh noted the
DPRK's relationship with the EU is useful because the DPRK
regards the EU as more neutral and objective than either the
U.S. or ROK.
 
----------------------
¶18. (SBU) Participants
----------------------
 
ROKG:
Huh Chul, Director General for the Korean Peninsula Peace
Regime Bureau, MOFAT
Jin Gi-hoon, Director, Inter-Korean Policy Division, MOFAT
Lee Won-ik, Director, Korean Peninsula Peace Regime Division,
MOFAT
Lee Choong-myon, Assistant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National Security Strategy, Blue House
Lee Dong-yeol, First Secretary, North America Division 1,
MOFAT
Lee Jong-joo, Deputy Director, Policy Planning Division, MOU
Yoo Chang-ho, First Secretary, Korean Embassy to the U.S.
Song Yong-min, Second Secretary, Inter-Korean Policy
Division, MOFAT
Lim, Hyo-sun, Second Secretary, Inter-Korean Policy Division,
MOFAT
Notetakers
 
U.S.:
Alex Arvizu, Deputy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Japan
and Korea
Terry Rusch, Director of Admissions, 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
 
Mary Comfort, Attorney-Advisor, Office of the Legal Adviser
Meghann Curtis, Asia Near East Program Officer, 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
Michael Orona, Deputy Director, Office of Asia and the
Western Hemishpere, 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
Laura Rosenberger, Foreign Affairs Officer, Korea Office,
Bureau of East Asia and the Pacific
Amy Patel, Desk Officer, Korea Office, Bureau of East Asia
and the Pacific
Allison Hooker, East Asia Analyst, 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Embassy notetakers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Korea (South)]

5)
[Korea (North)]

6)
POL M/C Joseph Y. Yun.

7)
Terry Rusch, Director of Admissions, 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 Terry Rusch, Director of Admissions, 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

8)
Mary Comfort, Attorney-Advisor, Office of the Legal Adviser

9)
Meghann Curtis, Asia Near East Program Officer, 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

10)
Michael Orona, Deputy Director, Office of Asia and the Western Hemishpere, 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

11)
Laura Rosenberger, Foreign Affairs Officer, Korea Office, Bureau of East Asia and the Pacific

12)
Amy Patel, Desk Officer, Korea Office, Bureau of East Asia and the Pacific

13)
Allison Hooker, East Asia Analyst, 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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