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이탈리아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성직자들이 여전히 목회를 할 수 있는 이유
[월드 인사이드] 이탈리아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성직자들이 여전히 목회를 할 수 있는 이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20 08:12
  • 수정 2022.02.2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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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산피에트로 대성당 모습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산피에트로 대성당 모습 [EPA=연합뉴스]

BBC가 18일(현지 시각)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성폭력이 어떤 식으로 조직적으로 은폐되는지를 살펴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매체는 한 사례를 통해 성폭력 가해 성직자들이 어떤 식으로 정의의 심판을 피해가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그를 ‘마리오’라는 이름으로 부르겠다. 마리오는 기자와 악수를 하면서 아직도 육체적 접촉을 부담스러워하듯이 손을 가볍게 뒤로 뺐다. 그러면서 기자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하기 위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내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인터뷰를 하자니 지난 일이 모두 떠오릅니다.”

그는 눈물이 쏟아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마리오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린 시절 사제의 손에 농락당한 자신의 ‘성노예’ 생활에 대해 지금까지 언론에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마리오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성폭력과 관련된, 끊이지 않는 추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성직자 중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성직자의 숫자가 많고, 뒷마당에 세계 가톨릭교회의 본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공식 기록이 부재하고, 공적인 조사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바티칸의 그늘 아래, 이탈리아의 죄악이 어둠의 장막 뒤에 숨겨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도 절대 비밀이라고 들었습니다.”

마리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와 저, 그리고 예수님만이 아는 비밀이라는 말이었지요.”

마리오는 끔찍한 성폭행의 그 비밀이 8살 때부터 16년간 지속됐다고 말한다. 가해자는 지아니 베키아리스라는 신부이다.

너무나 생생해서 글로 옮기기가 민망할 정도인, 마리오의 변호사가 밝힌 사건의 개요는 1996년 최초로 발생한 ‘강간’을 계획된 범행으로 묘사하고 있다. 베키아리스가 침대 하나짜리 호텔 방을 미리 예약했던 것이다. 고소장에는 마리오가 “고통 속에 피를 흘리며 숨죽여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베키아리스는 나중에 마리오의 부모에게 호텔의 위치와 강간이 저질러진 장소가 적힌 포스터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포스터에 “차가운 산에서 우리가 보냈던 이틀을 기념하며”라는 글귀와 함께 그 일이 벌어졌던 날짜와 시간도 적어놓았다.

이는 그의 범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이 타락한 성직자는 마리오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점을 이용해 마음이 여린 아동을 감정적으로 착취했다.

사건 서류는 베키아리스가 “너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면서” 마리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는 내 부모에게 내가 그의 집에서 잠을 자도 되는지를 물었다.”

마리오는 이렇게 회상한다.

“내 부모는 나의 거부를 무시하고 그렇게 하도록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던 그의 부모는 순진하게도 성스러운 옷을 입은 훌륭한 인물이 자신들의 아들을 귀하게 여겨주는 것에 긍지를 느꼈다. 마리오는 이 일로 생긴 트라우마로 마약에 빠지고 심리적 붕괴와 몇 차례의 자살을 겪었다.

“그는 나의 가련한 영혼을 도둑질했습니다.”

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악몽, 나는 총칼이 난무하고 수류탄이 작열하는 꿈을 많이 꿉니다.”

마리오는 결국 상담사에 사실을 털어놓은 끝에 정의의 수단에 호소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먼저 베키아리스 신부의 상급자인 암브로조 스프레아피코 주교를 찾았다. 스프레아피코 주교는 ‘교회법(canon law)’에 따라 재판을 시작했다. 가톨릭교회의 법인 ‘교회법(canon law)’은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취재진이 입수한 ‘교회법’의 평결은 베키아리스가 쏟아진 비난에 대해 명백하게 유죄임을 밝히고 있으며, 그가 일부 세세한 사항에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죄를 범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9만4000유로를 마리오에게 주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내 심판관들은 마리오의 요청을 거부하고 베키아리스의 옷을 벗기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베키아리스가 평생 미성년자를 상대로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평결했다.

이 결과에 환멸을 느낀 마리오와 변호사는 이탈리아 경찰에 형사고소를 하기로 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두 번째 재판 결과 서류에서 판사들은 제기된 혐의에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피고는 처벌을 피해갈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번거로운 법체계 하에서 이번 사건은 공소시효를 놓쳐버렸는데, 이는 베키아리스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들의 해결을 가로막는 법률적 장벽이라는 험한 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생존자’에게서 ‘정의’를 빼앗는 이탈리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희생자’라는 용어보다 ‘생존자’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인다.

베키아리스 신부 [페이스북 캡처]
베키아리스 신부 [페이스북 캡처]

범죄가 알려졌을 때보다는 범죄가 저질러졌던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공소시효는 현재 개정을 준비 중이지만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

마리오의 변호사 칼라 코르세티는 BBC에 공소시효 문제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법률에 호소하기까지 정신적으로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 더 깊숙한 곳까지, 이탈리아의 헌법과 과거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사이에 맺어진 라테라노 협정(Lateran Pact)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그녀는 말했다. 라테라노 협정을 통해 바티칸은 이탈리아로부터 법률적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비리를 저지른 성직자들이 바티칸의 법률을 방패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테라노 협정이 유지되는 한 이탈리아의 주권은 반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코르세티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대가를 매일 치르고 있으며, 그 대가를 제일 먼저 치르고 있는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치하의 바티칸은 성직자들의 범죄를 처리하는 개혁 조치를 더디게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가해자가 ‘비밀 유지법(pontifical secrecy)’을 빌미로 침묵을 유지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 등이 있다. 최근 이탈리아 주교회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전국 기도의 날을 최초로 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러한 조치들은 잘 봐줘도 너무 늦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 나쁘게 말하면 최악의 대처에 해당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2019년 UN은 이탈리아 당국이 성직자들의 성폭력에 대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UN의 요청은 지금까지 대답 없는 외침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밖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은밀한 성의(聖衣)를 벗기는 데 진보를 이루고 있다. 작년 프랑스에서 나온 한 보고서는 1950년 이래 적어도 216,000명의 아동들이 3,200명의 성직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의 두 배는 되는 성직자들이 성폭력에 연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어떤 공식적인 집계도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바티칸 내에서조차 이탈리아 당국의 무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마 교황청대학(Pontifical University) 미성년자 보호위원회의 책임자이자 바티칸의 미성년자 보호위원회 회원이기도 한 한스 졸너 신부는 교회 내 성폭력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프랑스 등의 사례를 따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사회가 이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교회도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인식이나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졸너 신부는, 성직자의 성폭력이 문제가 되는 나라들에서는 평균 4~5%의 성직자들이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비추어보면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수치를 대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식 집계가 부재하고, 이탈리아 당국이 거의 개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집계하는 일은 한 인권운동 단체에만 맡겨진 상태이다.

자신 또한 피해자였던 프란체스코 차나르디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성폭력 피해자 네트워크(The Abuse Network)’라는 단체를 운영 중이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지원을 받고자 했을 때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믿을 만한 내부자 정보와 언론 보도를 연결하여 성범죄자로 의심받고, 조사받고, 처벌받은 성직자들의 지도를 제작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는 피해자들을 지원해줄 변호사 단체도 설립했다.

차나르디는 지난 15년 동안 163명의 성직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계산하고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수치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별도의 행성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아동들의 피해를 도외시한 채 교회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너무나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일부는 이탈리아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는 다른 서부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일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국민 80% 이상이 가톨릭 신도인 이탈리아에서 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만큼이나 중요하며, 도전할 수 없는 권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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