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137년 上] 세브란스 르네상스 변화..“서양의학 도입 상징적”
[제중원 137년 上] 세브란스 르네상스 변화..“서양의학 도입 상징적”
  • 김 선 기자
  • 승인 2022.04.14 09:53
  • 수정 2022.04.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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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자객의 습격으로 자상을 입은 민영익이 미 공사관 소속 알렌의 외과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를 계기로 고종과 조선 정부는 서양의학은 물론 미국인 알렌 의사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그가 제안한 ‘병원건설안’을 중심으로 1885년 조선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이라는 제중원이 개원하게 된다. 제중원은 단순히 근대병원의 시작을 넘어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언어, 교육,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방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제중원은 연희와 세브란스, 연세대학교의 전신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했던 제중원에 대해 살펴본다.

1885년 4월 10일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 제중원 개원 모습.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1885년 4월 10일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 제중원 개원 모습.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세브란스 씨 기부금으로 설립된 ‘세브란스병원’

제중원 개원은 1884년 12월 4일 발생한 갑신정변이라는 정치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갑신정변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개화당)가 청(淸)에 기대어 온건 개혁을 추진하던 한규직, 윤태준, 이조연, 조영하 등과 민영익을 비롯한 민영목, 민태호 등 민씨 일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변이었다.

갑신정변의 발발로 심각한 자상을 입은 민영익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알렌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을 건설하기 위한 병원 개원 제안서인 조선정부경중건설병원절론을 조선 정부에 제안했다.

당시 민영익은 심각한 자상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나 알렌의 외과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를 계기로 고종과 조선 정부는 서양의학과 미국인 의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게 된다. 또한 1882년 혜민서의 혁파 등으로 새로운 대민의료기관을 필요로 했던 조선정부도 알렌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렇게 해서 알렌의 제안과 조선 정부의 지원을 통해 1885년 4월 10일 재동(잿골)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이 개원했다.

처음엔 병원의 이름이 없었지만, 병원 이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던 중 '은혜를 널리 베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광혜원이라고 했고, 고종이 ‘사람을 구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제중원이라 했다. 1886년 초에는 제중원 북쪽을 확장해 제중원의학당이 설립됐고, 병원부지가 더 많이 필요해짐에 따라 1887년 초에는 제중원을 재동에서 동현(구리개)으로 이전했다.

제중원은 의료선교사들의 진료 활동과 조선인 주사들의 지원 활동이 결합된 일종의 합작병원 형태로 시작됐으나, 제4대 제중원 원장으로 재임하던 에비슨 박사가 1894년 제중원 운영권의 이양을 요구했고, 이에 조선 정부는 그 운영권을 미 북장로회 선교부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제중원은 선교병원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전환됐고, 1904년에는 남대문밖 도동(복사골)에 최신식 근대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해 이전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은 알렌 등 의료선교사들과 조선 정부의 지원이 결합된 합작병원에서 독자적인 선교병원으로 전환했다. 세브란스 씨의 기부금으로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1908년 당시 지하 1층·지상 2층, 난방·온수 최신설비 갖춰

제중원이 갑신정변을 통해 탄생한 것처럼, 그 탄생과 성장 과정에는 한국 근대사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종교,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서양의학 지식이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도입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제중원이라는 공간에서 서양의학이 전면적으로 시술되고 교육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04년 세브란스병원 모습.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상하수도, 전기, 통풍, 난방과 온수, 증기탕, 목욕시설, 방사선 기계설비 등 당시 최신설비를 갖췄다.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1904년 세브란스병원 모습.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상하수도, 전기, 통풍, 난방과 온수, 증기탕, 목욕시설, 방사선 기계설비 등 당시 최신설비를 갖췄다.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나아가 세브란스병원 시기에는 제중원 보다 세균설이 입각한 접근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제중원이 설립되던 시기는 서양 의학계에서 미아즈마설을 거쳐 세균설이 확립되던 시기이지만 재동 제중원이 세균설에 기초해 공간이 구성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1886)는 18종의 대분류와 350여 종의 소분류를 사용해 질병을 분류하고 있지만, 여전히 증상에 따른 분류였으며 세균학적인 검사에 바탕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질병을 확진할 수 있는 현미경이나 실험기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1886년 제중원에 의학당이 설립되고, 점차 진료공간이 부족해지자 제중원은 1887년 구리개 지역으로 이전했다. 세균설에 기초한 공간구성은 새로 이전한 구리개 제중원에서 시작됐다. 1890년대 구리개 제중원은 현미경과 실험시설을 갖췄다.

재동 제중원에서 구리개 제중원으로 물리적·의학적 공간변화와 질병분류의 변화는 에비슨의 1901년도 제중원 연례보고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에비슨의 보고서는 현미경에 의한 검진과 침대의 도입을 언급하고 있는데, 세균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새로 설립된 병원은 단순한 구료의 단계를 넘어서 진료 시설과 입원 시설을 구분하고, 예방접종과 수술, 입원 병동과 격리병동 등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는 이전과는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세브란스병원은 세균설에 입각한 실험의학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병원건축과 전염병관리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0세기 초 설립된 세브란스병원은 위생설비와 실험의학의 최신성과가 반영된 최첨단 병원이었고, 병원 본관은 진료와 수술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본관 주위로 정신질환과 전염병 관리를 위한 별채의 건물과 의사, 간호사, 잡역부 등을 위한 사택과 기숙사 등이 건립됐고, 그 비용은 모두 세브란스 씨와 그의 자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됐다.

또한 세브란스병원에 파스퇴르 연구소가 설치되어 실험용 토끼를 사용한 광견병 바이러스를 연구했는데, 1908년 파스퇴르 연구소는 7명의 광견병 환자를 치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세균설 연구의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건물도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세브란스병원은 상하수도, 전기, 통풍, 난방과 온수, 증기탕, 목욕시설, 방사선 기계설비 등 최신설비를 갖췄고, 진료실과 입원실 이외에도 각종 특수치료실, 검사실, 수술실, 격리병동, 광견병 연구소 등 최신 실험의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기능을 갖춘 병원이었다.

1962년 6월 5일 연세메디컬 센터 모습.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1962년 6월 5일 연세메디컬 센터 모습. [제공=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전통 한옥→르네상스풍의 서양식 건축 도입

재동 제중원에서 구리개 제중원으로 다시 세브란스병원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병원 건축상 전통 한옥에서 르네상스풍의 서양식 병원 건축이라는 표면적 변화 외에도 한국에서 서양의학의 성과가 고스란히 내면화되고 체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재동과 구리개의 제중원이 기존의 전통 가옥을 새롭게 수리하거나 배치하는 방식으로 근대적 병원 공간을 창안했다면, 도동 세브란스병원은 서양식 설계도면에 기초해 르네상스 양식의 벽돌조 조적식(造積式) 병원 건물로 그야말로 최신식 근대병원이었다.

이처럼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의 변모 양상은 전통 한옥에서 르네상스풍의 서양식 건축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통해 한국에서 서양의학의 도입과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 기사는 신규환, '근대 병원건축의 공간변화와 성격·제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의 변화를 중심으로’를 참고해 작성했다.>

[위키리크스한국=김 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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