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 분열 노리는 푸틴의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월드 프리즘]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 분열 노리는 푸틴의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 유 진 기자
  • 승인 2022.05.29 06:49
  • 수정 2022.05.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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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유럽 가스공급 시설(왼쪽)과 독일 BMW 공장. /연합뉴스
러시아의 유럽 가스공급 시설(왼쪽)과 독일 BMW 공장. /연합뉴스

“러시아가 유럽 각국에 보내는 가스관의 밸브를 잠근다면 지구촌에 에너지 대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세계은행 관계자)

유럽이 쓰는 천연가스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최근 폴란드와 불가리아로 흐르는 가스관을 지난달 잠근데 이어 이번엔 약 50년간 공급해 온 핀란드의 가스관을 잠갔다.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대금 결제를 루블화로 지불하라고 요구했는데, 핀란드가 이를 거부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유럽 언론들은 “핀란드가 지난 18일 스웨덴과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신청한 것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서방세계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보복이 본격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폴란드와 불가리아의 천연가스 수입업체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폴란드는 가스 소비량의 40%, 불가리아는 77%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두 나라에 대한 이번 조치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의 제재에 반격을 가한 첫 사례다.

푸틴 대통령은 대러 제재를 단행한 비우호국은 가스 대금을 유로나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지불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7개국(G7)과 EU가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 요구를 거부하기로 한 만큼 푸틴의 가스 보복 대상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의 단일대오에 균열을 내기 적합한 수단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전체적으로는 가스의 40%를 러시아산에 의존하지만 나라마다 의존도가 천차만별이다. 몰도바(100%)와 핀란드(94%)는 가스의 대부분을, 독일(49%)과 이탈리아(46%)는 절반 가량을 수입한다. 프랑스(24%)와 네덜란드(11%)는 상대적으로 적다.

푸틴 대통령이 공급 중단 대상을 확대한다면 유럽은 경제적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발표 이후 유럽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20% 가까이 급증했다. 가스값이 오르면 유가도 덩달아 치솟고 최악의 경우가 도래하면 민간에 가스 공급을 제한하는 배급제를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전 유럽이 똘똘 뭉쳐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균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고 불 수 있다. 친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러시아 요청대로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내겠다고 밝힌 상태다.

독일 에너지기업인 ‘이온’의 레온하르트 비른바움 CEO는 "우리는 러시아가 언제든 가스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가스공급을 중단해야 하는 것을 상상하면 악몽과 같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가스소비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 55%에서 최근 3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러시아산 가스로부터 완전자립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독일 내 가스 소비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는 배경은 겨울이 따뜻했고, 가스 가격이 고공행진 하면서 소비가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확충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수소경제 육성 등을 통한 에너지 공급 네트워크 확장 등 가능한 빠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아직 우리가 가야 하는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여정이라는 지적이다.

비른바움 CEO는 "러시아산 가스 없이는 앞으로 두 차례의 겨울을 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산업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더이상 철강이나 화학산업이 가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결과는 극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초비상 상황이다.

러시아의 유럽 공급 가스관.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유럽 공급 가스관. /AP=연합뉴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러시아의 조치가 각국의 에너지 대안을 총력적으로 준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의 가스중단 조치 이후 폴란드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저장 수준이 높고 수요가 감소하는 등 러시아 가스 없이도 '관리'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가리아는 가스프롬이 심각한 계약 위반을 저질렀다고 비난했으며 EU 동맹국들과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점차적으로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갑작스런 중단으로 경제가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불가리아는 폴란드, 독일, 유럽연합과 함께 노르웨이, 중동, 북아프리카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불가리아가 다뉴브 강의 남쪽 벨레네에 방치된 두 번째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 장기적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막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이 두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1939년 소련과 나치 독일 간의 조약은 폴란드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폴란드 영토의 공유를 목표로 했다. 비슷하게, 100년 이상 동안 불가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정책은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지배에 맞춰져 왔다.

가스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경제적 타격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국제적인 지지가 있다면, 그것은 참을 수 있는 충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역으로 러시아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밖에 없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접경에 있는 벤더검문소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하는 차량이 줄지어 서있다. 벤더=로이터연합뉴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접경에 있는 벤더검문소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하는 차량이 줄지어 서있다. 벤더=로이터연합뉴스

진화경제 학자들은 나라들이 진화하는 상황에 긍정적으로 적응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가스 밸브를 나토 분열책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지만, 이는 유럽연합 모두를 적대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결국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전환을 하는 데 적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실행 가능하고 유익하다는 진단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불합리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공갈의 도구"라고 설명한 대로 러시아가 가스를 사용함으로써 야기되는 에너지 부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있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것은 새로운 공급자와 대체 공급원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실제 유럽연합은 서아프리카 3개국과의 협력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올해 안에 3분의 2까지 줄인다는 전략이다. 유럽연합은 새 공급자를 찾아 액화 천연가스(LNG) 수입을 500억㎥ 늘리고 러시아 외 국가로부터 가스관을 통한 가스 수입을 100억㎥ 늘린다는 방안이다. 유럽연합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지난해 기준 약 40%이고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대부분 가스관을 통해 들어온다. 유럽연합은 올여름까지 이집트, 이스라엘과 유럽에 대한 액화 천연가스 수출을 보장하는 3자 양해각서(MOU)를 맺을 예정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안을 이달 중 채택할 예정이다.

알렉산드르 미하일로프 교수(리딩대학교 경제학과)는 “자유가 보호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인간의 가치인 유럽연합과 나토의 민주주의 사회는 단합된 상태를 유지하고 서로가 러시아의 강탈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다행히도 인간과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유를 높은 경제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주목해야 할 것은 에너지 보복으로 역피해를 입을 러시아 경제의 침몰이다.

러시아 올 들어 매일 최대 8억 유로(약 1조740억원) 어치의 가스를 유럽에 공급해 왔다. 가스관 밸브 차단은 외화벌이에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고, 결국 서서히 러시아 경제를 ‘최악의 늪’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위키리크스한국=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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