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차기 한류의 주인공은 막걸리" CNN이 집중 조명한 한국의 막걸리
[포커스] "차기 한류의 주인공은 막걸리" CNN이 집중 조명한 한국의 막걸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5.24 08:36
  • 수정 2022.05.2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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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시음 중인 외국인들 [사진 = 연합뉴스]
막걸리를 시음 중인 외국인들 [사진 = 연합뉴스]

CNN은 23일(현지 시각) 한국의 막걸리가 한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이 보도의 전문이다.

김경섭 교수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막걸리를 진탕 마시던 대학생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 알지요? 우리가 그랬습니다.”

우유처럼 뽀얗고, 가끔씩은 달콤하기도 한 한국의 쌀로 빚은 전통주 막걸리는 맛보다는 가격 때문에 선택하던 주종이었다.

1989년 김경섭 교수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막걸리 반 갤런의 가격은 40센트에 불과했었다. 그와 친구들은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국의 전통 방식대로 양은 주전자에 든 막걸리를 각자의 양은 술잔에 따라 마시곤 했었다.

현재는 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겸임교수이기도 한 김경섭 교수는 10년 동안 학생들에게 막걸리 양조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막걸리와의 첫 대면은 시금털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학생과 술을 마실 때는 맥주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만 있을 때는 막걸리를 마셨지요.”

여성에게 잘 보여야하는 자리에는 막걸리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막걸리는 그만큼 격조 있는 술이 아니었다.

그러부터 20년 뒤 한국의 수도 서울의 술집들에서는 김 교수의 기억에서 윤기가 나지 않던 술 막걸리가 트렌디한 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유행을 이끈 이들은 주로 젊은 기업가들과 양조업자들이었다.

“막걸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이러한 변화를 이끈 또 다른 인물이 있다. 김민규 대표는 김경섭 교수와는 아는 사이가 아니다. 김민규 대표는 2009년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인 ‘복순도가(Boksoondoga)’를 창업했다.

김민규 대표가 처음 이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는 이 계획에 반대했다. 5년 동안의 유학 비용을 대가며 민규씨를 뉴욕의 예술 대학인 ‘쿠퍼 유니온(Cooper Union)’에 보내 건축학을 공부시킨 그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막걸리 양조 항아리를 부셔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굽히지 않았다. 그는 그의 할머니의 막걸리 제조 비법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김민규 대표가 어렸을 적 그는 한국 남동부 양산 지방에 있는 할머니 농장을 자주 찾았었다. 그의 할머니는 반쯤 찐 쌀에다가 집에서 만든 누룩(이스트)과 물을 섞었다. 그는 막걸리 재료들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나는 공기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직접 담은 막걸리를 이웃들과 나눠 마시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막걸리를 마신 후 노래 부르고 춤추곤 했다.

김민규 대표는 막걸리 제조는 자신에게는 건축의 연장선상과 같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건축학을 응용해서 브랜드와 마케팅 소재 및 양조장을 설계했다. 그의 어머니가 막걸리 양조를 맡아, 최초의 ‘복순도가’ 막걸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도가’는 양조(brewery)를 의미하고, ‘복순’은 그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복순도가는 시의적절할 때 빛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막걸리가 100년 동안 이어진 어둠을 뚫고 양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술의 역사와 문화

‘막걸리’라는 술 이름은 한국어에서 ‘대충’ 또는 ‘방금’을 의미하는 ‘막’과 ‘걸른다’는 뜻의 ‘걸리’가 합쳐진 합성어있다.

‘막걸리’라는 용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에 작성된 ‘광재일보’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통해서이지만 불투명한 액체로 빚어진 술 막걸리의 역사는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에 기록된 한 문헌에 의하면 이 술이 한국 전역에서 소비된 것으로 나타난다.

“막걸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된, 한국 사람들의 술입니다.”

김경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다. 막걸리는 증기로 찐 쌀에 효모(이스트)와 물을 배합한 후 몇 주일 정도 항아리 안에서 발효시켜 완성한다. 과거에는 한국 전국에서 많은 가정들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양조 비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점하는 동안 이러한 수많은 전통 주조법이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정부는 산업화하고 표준화한 양조업자들을 위해 민간에서 술을 담그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모든 주류 제조 업자는 허가를 받아야 했고, 주류 제조에는 세금이 매겨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가정 내 자체 소비를 위한 양조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결과 1934년이 되자 극소수 주류들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고, 가정에서 담근 술은 밀주로 불법화되었다.

그러다가 2차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이 발발해 한반도는 폐허로 변해버렸다. 남쪽에 새로 들어선 정부는 술 제조에 대한 강압적 통제 정책을 이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1960년대 식량 부족이 극심하자 막걸리의 원료인 쌀로 술을 빚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렇게 되자 양조업자들이 쌀 대신 밀가루와 보리로 술을 제조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막걸리의 인기는 사그라들게 되었다. 그러자 막걸리의 빈자리를 소주가 치고 들어왔다. 소주는 에탄올을 희석해서 만든 투명한 주류이다. 

그후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쌀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자 1989년 정부는 쌀로 술을 빚지 못하도록 하던 정책을 철회했고, 1995년에는 가정에서 술을 빚는 행위도 합법화하였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전통 양조 비법들이 사장되어버린 상태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옛 양조 비법을 되살리기

잃어버린 막걸리 제조 비법을 되살린 공은 박록담씨와 같은 젊은 개척자들의 공이 크다. 박씨는 전통 주조 비법을 수집하고 옛 기술을 되살리기 위해 3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정부도 나서서 과거의 정책 방향을 전환해 전통주를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키우고, 나아가 수익이 되는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

2016년 한국 정부는 양조 탱크 크기 요건을 5,000리터에서 1,000리터로 낮추어 소규모 양조장이 알코올 음료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듬해에는 전통 주류 업체에게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하는 특권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술집이나 식당을 찾지 못하게 되자 막걸리의 온·오프라인 매출이 급증하였다. 농업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정부 투자기업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주류 시장은 1.6% 축소된 데에 비해 막걸리 시장은 52.1%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섭 교수의 막걸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 이상이 창업을 고려하는 사업가들이고, 30대 이하의 여성도 많다. 10년 전만 해도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거의 반이 50세 이상이었고, 은퇴 후 취미로 막걸리를 제조해보고자 하던 사람들이었다.

한국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막걸리 제조 기술 면허 소지자는 2009년 이후 4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경섭 교수는 막걸리 양조업은 다른 어떤 주료 사업보다 창업이 쉽다고 말한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만드는 장비의 가격이 2~3억 원 정도인 반면, 막걸리 양조 장비는 100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3시간짜리 수업을 4번만 들으면 시중에 파는 막걸리보다 더 좋은 것을 담글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글로벌 시장 진출

호주인 줄리아 멜러는 애초에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었다. 그러다가 2009년 그녀는 막걸리를 만나게 되었다.

현재 멜러가 차린 회사 ‘술컴퍼니(The Sool Company)’는 막걸리 양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자문과 제조법을 가르치고 있다. ‘술컴퍼니’의 고객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그녀는 팬데믹 기간 동안 사업이 4배나 성장했다고 들려주었다.

‘술컴퍼니’의 고객들은 미국, 싱가포르, 덴마크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들 중 상당수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다.

“그들은 막걸리를 즐기는 한국 사람들을 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창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멜러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막걸리 애호가들과 모임을 만들고, 막걸리 관련 자료들이 영어로 된 것들이 거의 없어서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멜러는 막걸리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을 확신한다.

“정말 집에서 만들기 쉬운 술입니다. 쌀과 누룩(이스트)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녀에게 막걸리 전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 어떤 것을 살려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멜러는 이렇게 말했다.

김민규 대표는 ‘복순도가’의 막걸리가 금년에 미국과 오스트리아에 진출할 것이며, 다른 서방 국가의 바이어들에게서도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복순도가’의 막걸리는 일본에서는 이미 2000년대 한류가 유행하면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K-드라마와 K-팝의 인기가 김치와 전통주 같은 상품 수출의 문호 개방에 한몫했던 것이다.

“외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전통의 발효 비법은 건강한 청정 유기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그들에게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주류에 속합니다.”

김민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지난 몇 년 사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김대표는 막걸리도 이 물결에 올라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막걸리를 빚는 외국인들 [사진 = 연합뉴스]
막걸리를 빚는 외국인들 [사진 = 연합뉴스]

세련된 술 막걸리로 이미지 변신

막걸리의 급속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류 시장 판매량은 아직도 소주와 맥주가 80% 이상을 쥐고 있다.

김민규 대표는 막걸리가 넘어야 할 최대의 걸림돌은 이 술이 노년층의 술이라는 인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광고와 마케팅 대부분을 이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쏟아붓고 있다. 어떤 광고에서는 삭발에 눈썹 피어싱을 한 날카로운 인상의 남성 모델이 기다란 샴페인 잔(champagne flute)에 막걸리를 세련되게 붓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 막걸리와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인식 전환도 또 다른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 문화에서 술은 항상 음식이나 안주류와 함께 소비된다. 막걸리의 경우에는 전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은 밀가루 반죽에 고기나 야채를 섞어 볶은 한국식 팬케이크이다.

김민규 대표는 “향긋한 파전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미각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막걸리와 전의 콤비네이션은 비오는 날 더욱 인기가 있다. 한국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비오는 날에는 전국에서 막걸리와 전 재료들의 수퍼 매출이 급증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다양한 맛과 탄산을 함유하고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는 어떤 종류의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김대표는 말한다.

“저는 짜장면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아이스크림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막걸리는 기본적으로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다른 발효 음식과 함께 마시면 더 좋습니다. 김치나 치즈하고도 정말 잘 어울립니다.” (김민규 대표)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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