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X파일(124) 본격 논의 시작된 4자회담 ‘동상이몽’… 재제 vs 식량원조 ‘딜레마’
청와대-백악관X파일(124) 본격 논의 시작된 4자회담 ‘동상이몽’… 재제 vs 식량원조 ‘딜레마’
  • 유 진 기자
  • 승인 2022.06.11 06:45
  • 수정 2022.06.1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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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1997년 1월. 클린턴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클린턴 행정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국무장관을, 사무엘 버거는 국가안보 보좌관을 맡았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2월 20일 해외 순방 중 한국을 찾았다. 청와대를 방문한 그녀는 미국은 남북 관계가 발전을 보이는 테두리 내에서만 북한과의 관계를 증진시킬 것이고, 북한이 서울과 워싱턴 사이를 이간질하게 두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과 한국이 제네바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4자회담을 실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닐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됐듯이 북한문제에 관한 한 사전 협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짚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북한의 고위관리였던 황장업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 필리핀에서 잠시 머물고 있던 상황이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서울 방문은 한-미 관계가 한결 호전된 가운데 이뤄졌다. KEDO 설립 의정서에 서명이 이뤄졌으며, 미국과 한국이 4자회담에서 합동설명회를 열자고 북한과 합의를 본 덕분이었다. 그는 예리한 외교적 통찰력으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7년 3월, 4자회담 합동설명회의 일정을 논하기 위한 미국과 북한의 사전회의가 뉴욕에서 시작됐다. 4자회담은 거의 1년 전 함니가 공동으로 제안한 사항이었다. 북한은 회담 이면에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또한 한중 관계와 북미 관계 사이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혹시 불균형이 없다 하더라도 북한이 동등한 대담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북한인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 종식, 북미간 평화협정, 경제적 제재 해제, 그러고 1997년에만 150만톤에 이르는 식량 원조를 요구했다. 이 모든 것은 4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이뤄져야 했다.

미국은 경제 제재가 적성국교역법에 따르는 것이었다고 대답했으며, 엄밀히 말해 한반도는 아직 전쟁 중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협상 과정이 우선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북한은 4자회담에 참여해야 했다. 식량 원조에 관해 미국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제재와 식량 원조라는 양대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분명 북한이 4자회담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한 후에야 준비할 것임을 밝혔다.

동시에 한국은 북한이 4자회담에 참여하는 원칙에 동의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쌍방이 철저히 교류하며 진행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했다.

1997년 6월.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회담을 가졌다.

악수하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연합뉴스]
악수하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연합뉴스]

김영삼 대통령이 유엔 정기총회의 환경에 관한 특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임스 레이니 대사와 샘 넌 전 상원의원이 곧 북한의 초청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또한 그들이 평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자세히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7월 20~22일 북한을 방문한 후 이틀 동안 서울에 머물며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4자회담을 위한 준비가 드디어 시작됐다. 6월 30일 한국, 북한, 미국 3개국의 차관보급 회의가 뉴욕에서 열렸다. 이어 8월 5일 제네바에서 4자회담의 사전 회의가 진행됐다. 9월에 이어진 회의에서 북한은 12월 9일 제네바에서 열릴 4자회담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했다. 클린튼 행정부는 12월 한국에서 치러질 대선 날짜 이전에 4자회담 출범식 일자를 확정짓고 싶다고 했다.

11월 1일,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미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고 칭했다. 이 긍정적인 표현일 빌리자면 두 나라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당시 4자회담의 중국측 수석대표인 천 젠 대사는 평양에 있었다. 중국의 고위급 관료들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후 12월 9일을 시작으로 진행된 남북미중 4자회담은 각자의 동상이몽만 확인해야 했다. 

북·미 직접 회담을 선호해 당초 회담에 소극적이었던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장은 마지못해 회담장에 나타나 주한미군 철수, 한·미 대규모 전쟁연습 중단 및 북·미 당사자 간 평화협정 체결 등 기존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중국은 전쟁 상태 종식 선언, 내정 불간섭 및 군축 조치 등을 강조했다. 4자회담은 참석자들이 파안대소하는 언론 홍보용 사진은 여러 차례 촬영했지만 특이할 만한 해법이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자회담도 결실을 맺기 어려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4자회담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유진, 최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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