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미국인들이 미터법을 거부하는 이유... ‘예외주의’ 부정적 측면 vs 다양성을 흡수하려는 노력 담겨
[포커스] 미국인들이 미터법을 거부하는 이유... ‘예외주의’ 부정적 측면 vs 다양성을 흡수하려는 노력 담겨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6.19 05:53
  • 수정 2022.06.1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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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슈퍼마켓 [사진 = 연합뉴스]
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슈퍼마켓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은 왜 미터법 사용을 거부할까.

CNN방송은 17일(현지 시각) 미국이 미터법 사용이라는 국제 추세를 무시하고 홀로 관습적 단위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은 예외라는 ‘예외주의’의 부정적 측면과 다양성을 흡수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담겨있다고 분석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의 수퍼마켓에는 사이다 캔에는 용량이 12온스(ounce)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사이다 병에는 2리터(liter)라고 표기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상품의 계량 단위가 이처럼 다른 것이다. 캔에는 미국인들의 관습적인 단위를 사용하고 병은 미터법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를 사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단위를 선호한다. 2016년 조사된 여론조사에서는 단지 32%의 미국인들만이 미터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미터법을 거부하는 미국인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보다 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미국은 예외이다라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터법 거부에는 식민지 시대 이후부터 미국을 지배해오면서 커다란 정치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로 접어들 무렵으로 돌아가서, 미국인들이 사용하던 측정 단위는 미국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과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1790년대 프랑스와 영국이 싸울 때 미국은 어느 한쪽 편을 선택해야만 했다.

조지아 대학의 역사학과 스티븐 밈 교수에 따르면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프랑스를 싫어했고, 그 결과 프랑스의 측량 단위를 채택하는 것은 이단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미국에 프랑스 혁명의 씨앗을 전파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성격을 혐오했을 뿐 아니라 미터법이라는 측량 단위를 혁명적으로 전면 수용하는 것도 거부했다는 말이다.

설명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은 1975년 12월 나머지 세계의 방식에 합류할 것처럼 보였다. 당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미터법 전환법(Metric Conversion Act)’에 서명했었다. ‘미터법 전환법’은 미터법이 미국의 무역과 상업을 위해 선호되는 측량과 계량 단위라고 선언하고 있다.

포드 대통령의 미터법 수용 행위는 미터법을 받아들이려는 범국가적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사이다 병에 리터가 표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한 가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권고되었기 때문에 미터법으로 전환하는 책임을 맡고 있던 ‘미터법 위원회(Metric Board)’는 강제권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미국이 미터법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런데 상당수 미국인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1977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터법을 이해하고 있는 미국인들 중(어찌 된 일인지 미터법이 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도 많았다.) 60%가 미터법으로의 전환을 반대했다.

지금까지 질량의 기준으로 쓰인 킬로그램(㎏) 원기. 프랑스 파리 국제도량형국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금까지 질량의 기준으로 쓰인 킬로그램(㎏) 원기. 프랑스 파리 국제도량형국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면서 미터법 전환에 반대하는 단체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미터법 반대 단체 중 하나인 ‘관습적 측량과 계량을 사랑하는 미국인들(Americans for Customary Weight and Measure)’은 똘똘 뭉쳐 CNN방송에 출연하기까지 했었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여론을 읽을 줄 알았다. 그 결과 몇 년 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포드가 설립했던 ‘미터법 위원회’의 돈줄을 끊어버렸다.

미터법 사용을 놓고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폭스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은 미터법에 반대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폭정의 굴레에 신음하고 있다. 바로 미터법이라는 폭정이 그것이다. 베이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루사카(Lusaka)에서 런던까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강제로 미터법으로 측정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가 하면 저울의 반대편에는 로드아일랜드주의 전 주지사이자 상원의원인 링컨 체이피(Lincoln Chafee) 자리하고 있다. 그는 2016년 잠시 동안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과정에서 “국제주의를 과감하게 포용해야 합니다. 나머지 세계와 발을 맞춰 미터법을 사용합시다.”라고 역설한 바가 있다.

하지만 체이피는 자신의 입장 때문에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대선 행보는 아무 쓸모없이 끝나고 말았다.

소수의 강경론자들에게는 현재 전선이 어디에 형성되어있는지는 보다 명확하다. 미터법은 국제주의의 시스템이므로 이에 반대하는 것은 곧 미터법을 지향하는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스티븐 밈 교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현재 우리를 단단히 결속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변화를 싫어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경우에 미터법을 표기할까? 서두에 거론한 수퍼마켓으로 돌아가서 미터법을 표기한 사이다와 함께 포테이토칩 포장 용기를 살펴보자. 바로 영양과 관련된 정보에는 대부분 미터법이 사용된다. 예컨대 지방 몇 그램 같은 경우이다.

또 하나, 경제적인 측면을 살표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두 가지 시스템이 통용되어도 무방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측량 단위가 국가로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거론한 스티븐 밈 교수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미국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자면, 그것은 서툰 해결책일지라도 한 국가라는 틀 안에서, 생산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용인되고 잘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해결책은 사소한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러한 체계는 50개 주가 동시에 한 국가를 형성하면서 굴러가는 정치 시스템 내에 녹아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어설프면서도 그런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 우리의 측량 시스템이 이를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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