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비밀문서] 광주항쟁의 살인 진압.. '중재해달라!' 시민들의 희망 매정하게 등 돌린 미국대사
[WIKI 비밀문서] 광주항쟁의 살인 진압.. '중재해달라!' 시민들의 희망 매정하게 등 돌린 미국대사
  • 유 진 기자
  • 승인 2022.07.17 06:32
  • 수정 2022.07.17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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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항쟁 진압. 연합뉴스
광주민주화항쟁 진압. 연합뉴스

광주민주화항쟁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의 미국의 조치에 일시적으로 환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환호는 머지않아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광주 시민들은 인권을 위해 미국이 대거 군사력을 동원해 신군부를 압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미국은 북한이 서툰짓을 하지 못하도록 ‘경찰’역할을 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1980년 5월 21일 특전사 부대가 광주시 외곽으로 일시 철수할 즈음, 미국정부는 사태가 극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에 대해 북한이 한국의 불안한 상황을 군사적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억지하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이상 활동 징후를 감시하기 위해 E-3A 조기경보기 2대를 극동지역으로 파견했다. 또 미국의 주요 해군부대도 한반도 근해에 배치했다.

▶미국, 신군부와 시민들 ‘쌍방’에 대화 촉구하다

5월 22일 미국은 글라이스틴 대사의 조언에 따라 북한에 경고하고 광주에서 대치하고 있는 쌍방에 대화를 촉구하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광주시의 시민 소요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최대한 자제하여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도록 촉구한다. 사회불안이 계속되고 폭력사태가 확산되면 외부세력이 이를 오판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조약상의 의무에 따라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악용하려는 외부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 성명과 이후의 성명들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통해 방송되었지만 한국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한국군 당국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에게 5월 22일자 성명을 방송하고 이를 주시에 공중 살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성명을 담은 전단은 작성됐으나 이것이 공중 살포되거나 배포되지 않았다는 것을 미국은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한-미간 약속과 달리 정부 통제를 받은 광주 라디오 방송이 미국이 특전사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해버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 오보에 대해 한국정부에 항의했고 공식적인 취소를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취소하지 않았다.

5월 22일 미국에서는 국무장관 주재 하에 한국에 관한 고위정책 검토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광주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한국정책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혼란이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화와 가능한 한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해 광주에 질서를 회복하도록 한국정부에 조언한다.
▷광주 문제를 해결한 다음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구조와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가진 문민정부'를 건설하도록 계속해서 압력을 가한다.
▷미국이 한국을 북한의 공격에서부터 방어할 것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5월 23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와 만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총리 서리에게 “5월 17일의 정책결정이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사는 “미국은 한국정부가 공공질서를 유지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데에는 동의하나 그에 따른 정치적 탄압은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행위이며, 광주에서 질서가 심각하게 파괴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은 “평온이 다시 찾아오면 정치발전이 재개돼야 하며,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면 안정적인 상황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같은 날 글라이스틴 대사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오찬을 같이 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논했다.

한국 신문들은 글라이스틴 대사가 5.17사건에 대해 '이해' 내지 '승인'을 표명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오찬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정치지도자들의 체포, 국회 폐쇄, 5월 17일에 시작된 전반적인 정치 탄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광주의 소강상태와 협상

광주문제에 관해 위컴 장군과 글라이스틴 대사는 대치상황을 비폭력적으로 종결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과 대화를 하도록 계엄당국에 촉구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에 평화를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던 시민대표와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비공식 특별 시민위원회와 대화를 갖도록 한국당국에 촉구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대화를 촉구하는 카톨릭교회의 노력을 돕기 위해 카톨릭 교회
측과 연락을 유지했다.

5월 24일. 데이비드 밀러 광주 미국문화원장은 광주의 윤공희 대주교가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내는 '광주시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특전사 부대의 행동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가지고 서울에 왔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에서 특전사 부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당국이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데에 찬성했다.

이날, 유병현 장군은 위컴 장군에게 계엄사가 광주시에 재진입, 탈환하기 위한 계획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위컴 장군은 자신이 계엄사에 명령할 수 없음을 인정했으나,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면 대개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점을 유장군에게 지적했다.

또한 군사력 사용은 정부에 대한 일반 국민의 지지를 더 떨어뜨릴 수 있고, 또 군 내부의 반란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자제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설사 군대가 광주시를 재점령하기 위해 파견된다 하더라고 무력사용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작전계획을 신중히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유장군은 자제를 약속했다.

위컴 장군은 자신과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시민위원회가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계엄군이 광주시에 재진입해야 할 가능성은 낮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그러나 5월 25일 미국정부는 불길한 신호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한국 외무부가 모든 외국인에게 광주를 떠나도록 요청했는데, 이는 향후 군사행동과 폭력사태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조치였다. 미국 대사관과 기타 외국 대사관들은 아직 광주를 떠나지 않은 자국민 명단을 작성했다.

광주시와 전화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광주 공군기지의 미 공군부대가 광주에 있는 외국인들과 연락을 시도했다.

미국인, 캐나다인, 이태리인, 영국인, 남아프리카인 등 91명의 외국인이 광주 공군기
지에 모였다. 이들 중 26명을 미 공군이 피신시켰으며 나머지는 기지에 머물렀다.

평화봉사단원과 선교사를 포함하여 미국인과 그 밖의 외국인 몇 명은 광주에 머물기로 자청했다.

한국군 당국은 미국에게 골수 과격파 학생들이 광주시를 장악했고, 이들의 요구는
지나치며, 성의를 가지고 협상에 응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광주 탈환 군사작전과 미국의 안일한 상황인식

5월 26일.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광주 현지 한국군 사령관에게 광주시 재진입을 결정할 재량권이 건네졌으며 작전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 정부가 사태의 종식을 희망한다는 것은 알지만 비군사적인 방법을 먼저 충분히 강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시 재점령에 특전사가 다시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광주탈환 작전이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때에 전남도청 건물 안에 있던 어떤 사람이 한 기자에게 글라이스틴 대사가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계엄사령부와의 사이에서 중재해달라는 전화요청을 거절했다.

미국대사가 그러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한국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5월 27일 이른 아침에 계엄군이 광주에 진입하고 나서 계엄사는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작전이 잘 수행됐으며 무기를 버리기를 거부한 30명이 사망한 것 외에는 사상자가 '경미'했다고 통보했다.

그 사건을 일으킨 군부대는 대부분 특전사가 아닌 20사단 소속이었다.

그러나 특전사는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정규군 복장을 한 채 전남도청과 그 외 장소에 대해 마지막 공격을 가했으며, 작전이 끝난 뒤에야 20사단에 임무를 인계했다.

워싱턴 당국을 위해 작성한 5월 28일자 평가서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일단의 육군 장교들이 단계적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며, 전국에 군사점령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은 지도자를 자임하고 나선 이들을 막거나, 적어도 늦추어 보려는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본질적으로 이들은(전두환 신군부) 워싱턴 당국이 자기들의 행동을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라고 대사는 결론지었다.

그는 전두환 씨와 그 일당이 현재의 방향으로 계속 나간다면 한국이 장기적인 불안정 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https://kr.usembassy.gov/wp-content/uploads/sites/75/2017/05/The-Kwangju-Incid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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