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기독교와 고대 로마제국...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로마제국의 5가지 요인들
[성탄절] 기독교와 고대 로마제국...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로마제국의 5가지 요인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2.25 06:48
  • 수정 2022.12.2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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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크리스마스 행사. /AP 연합뉴스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크리스마스 행사. /AP 연합뉴스

25일은 카톨릭과 기독교 국가와 신자들의 최대 명절로 꼽히는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고대 로마 제국으로 건너간 기독교가 어떤 요인 때문에 전 세계인의 종교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서기 1세기에는 로마 제국 변방의 종교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어떤 경로를 거치면서 4세기 초에는 제국의 황제가 그 종교로 개종하기까지 할 정도로 세력을 떨치게 되었을까?

기독교의 전파는, 기존 지역적·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아무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라는 당시 분위기와 로마 제국의 정치적 통일 및 도로 시스템의 확충에 힘입은 바가 크다.

1. 보통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일상에서 전파된 말씀

신약성경의 가장 핵심 인물인 사도 바울과 같은 전도자들이 당시 기독교 전파를 위해 제국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기독교 전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웃이나 친지, 가족 등에 말씀을 전파한 보통 신자들이었다고,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역사학과의 교수이자  『최후의 이교도 세대 : 로마 제국의 예기치 못한 기독교 전파(The Final Pagan Generation : Rome's Unexpected Path to Christianity.)』의 저자인 에드워드 와츠는 말한다.

“전도 사역자들의 이야기는 기독교 전파의 핵심을 차지하지만 기독교 확산의 진정한 공로는 일상에서 말씀을 전파한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와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주요 종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같은 사역자들의 역할은 이름 없는 전도자들의 그것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정교회의 키릴(왼쪽) 총대주교와 로마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 아바나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정교회의 키릴(왼쪽) 총대주교와 로마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 아바나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 이방 종교와 공존했던 초기 기독교

서기 2세기 로마 제국이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할 때 그 세력은 유럽,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까지 뻗쳤다. 기독교가 이렇게 광활한 영역 전반에 두루 퍼질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신흥 종교를 기존의 문화 및 종교적 관습과 마찰 없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서기 1~2세기 로마 제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다신교를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신흥 종교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주피터나 아폴로, 비너스 같은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기존에 믿고 있던 다른 신들에 합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와츠 교수는 말한다.

현재 우리가 이방 종교라고 부르는 신앙과 기독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은 로마 제국에서의 기독교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

일부 기독교도들이 유일신 사상을 부르짖으며 기독교도는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로마 제국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그런 식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 배타적 공동체로 존재하지 않았던 기독교

초기 기독교가 힘을 얻은 데는, 특정한 종교적 배경을 지닌 특정 지역 사람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종교라는 사상도 한몫했다.

일부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은 기독교를 믿는 데 할례나 유대교 전통 음식(kosher) 관습 준수 같은 유대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역설했다.

“이런 사상이 핵심적 변화를 주도했지요. 기독교로 입문하는 문턱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와츠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당신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은 남성인데 유대교 관습을 먼저 준수해야 한다면 그거야 말로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여기에다 아람어로 기록된 기독교 복음서들이 희랍어로 번역되자 제국 내의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다. 유대 지방에서 통용되던 아람어와는 다르게 희랍어는 로마 제국 전체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던 언어였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십자가 환상’을 나타낸 그림 [사진=ATI]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십자가 환상’을 나타낸 그림 [사진=ATI]

4. 전승만큼 광범위하지 않았던 기독교 박해의 역사

서기 1~2세기 동안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제국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행해졌다기보다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2세기에 사망한 안디옥의 성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와 같은 순교자들에 대한 박해는 당시 대부분 기독교도들의 경험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용적 분위기는 데시우스 황제(통치 기간 : 249~251)와 발레리아누스 황제(통치 기간 : 253~260)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두 황제들은 이방 신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로마 제국 전통적 가치와 관습에 열을 올렸다. 제국의 관리들은 동물을 바치는 제사 의식을 치렀다는 징표를 파피루스 영수증으로 요구했는데 이런 영수증이 없고, 이방신에 제사드리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감옥에 가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데시우스 황제의 종교 정책은 특별히 기독교 박해를 노린 것은 아니고 이방 제사 의식을 거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핍박을 받아야 했다. 반면에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경우에는 기독교도들을 직접 노렸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기독교도들에게 대박해(Great Persecution)가 찾아들었다. 서기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시작된 대박해 기간 동안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죽고 기독교 재산이 몰수되었다.

부활절을 앞두고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거리극에서 예수로 분장한 배우가 십자가 고난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부활절을 앞두고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거리극에서 예수로 분장한 배우가 십자가 고난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5. 황제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 공인

기독교 대박해는 로마 제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혹한 박해이자 마지막 박해이기도 했다.

대박해 이후인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로마 황제 중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1년 뒤 기독교도에 대한 국가의 박해를 종식시키고, 기독교를 제국 내에서 공인된 합법 종교로 만든 밀라노 칙령을 제정하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그 즉시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전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4세기 말까지 이교도 관습을 분명히 제한하고, 제국 정부가 기독교 관습을 명시적으로 채택하는 과정을 밟았다.”라고 와츠 교수는 말한다.

기독교는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도 제국 서부 영토를 통해 계속 퍼져나갔다. 그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로마 제국은 물론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유럽 지역에서도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아 나갔다. 

한때 검투사들의 잔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로마의 콜로세움은 17세기에 한 예술가가 고대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벽화로 그렸을 정도로 기독교 성지가 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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