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하나의 중국' vs '대만은 대만' 역사상 4번째 위기...과거와 비교한다면
[월드 프리즘] '하나의 중국' vs '대만은 대만' 역사상 4번째 위기...과거와 비교한다면
  • 최정미 기자
  • 승인 2022.08.04 05:54
  • 수정 2022.08.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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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현지시간)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 환영나온 인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강력 반발에도 이날 대만 땅을 밟았다. [출처=연합]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현지시간)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 환영나온 인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강력 반발에도 이날 대만 땅을 밟았다. [출처=연합]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중국은 군사 위협까지 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미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25년 전 뉴트 깅리치의 방문 이후 처음이었다.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고 있는 중국은 펠로시의 방문을 자주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외교장관 왕이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배신은 국가 신용을 파탄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둘 다 펠로시의 방문을 앞두고 군사 활동의 수위를 높여 왔다. 펠로시가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동부전선 사령부는 대만 주변에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지금의 대만해협의 상황은 1954년, 1958년, 1990년대 중반에 이어 4번째 큰 위기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NPR은 비슷한 듯 다른 과거와 지금의 위기 상황들에 대한 분석기사를 냈다. 

첫 번째 위기는 한국전쟁 직후에 찾아왔다.

중국은 당시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와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의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하고 1949년 대만으로 퇴각한 상태였다. 그리고 미국과 대만은 1954년에 방위조약을 맺었다.

미국은 대만령 진먼 섬과 마쭈 섬에서 공산당 세력을 물리치려고 했다. 중국은 두 섬에 폭격을 가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정치학 이안 총 교수는 “중국이 원한 것은 장제스가 본토를 탈환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1958년 두 번째 위기에서는 대만과 중국 간에 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미 국방부는 대만령의 진먼과 마쭈 섬을 중국이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까지 계획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를 반대했다.

중국과 대만은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향한 폭격을 이어갔고 자존심을 건 전쟁은 결국 20년 동안 이어졌다. 

당시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이 싸움이 심리적인 것이며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선전 전략적인 것이라고 특정지었다.

세 번째 위기는 1995년 당시 대만의 총통 리덩후이가 자신의 모교 코넬대학교를 방문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는 처음에 이 계획에 대해 반대했지만, 그의 방문을 지지하는 의회 결의안이 나오자 대세에 따랐다.

중국은 대만 인근 바다에 미사일을 쏘고, 해병대 침투 훈련을 하는 등 몇 달 간의 군사 훈련으로 이에 응답했다. 중국 정부는 리덩후이의 미국 방문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협약을 또 위반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번 펠로시의 방문은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대만의 군사 논평가이자 ‘대만 해협의 세 번째 위기’의 저자인 치레이는 “중국은 미국이 점진적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도려내려고 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을 막기 위해 한계를 정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이 1996년 당시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리덩후이에게 투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과시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은 두 척의 항공모함을 대만 인근에 보냈고,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에서 리덩후이는 5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총통이 됐다.

미 국무부 차관보였던 수잔 셔크는 위기가 끝나고, 양 측이 대규모 전투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깨닫고 긴장이 누그러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중국과 대만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결국 1997년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미국, 중국, 대만이 안정을 찾은 듯 보였으나, 여전히 충돌의 위험성은 크게 내재돼 있었다.

25년이 지난 현재 미국과 중국은 또 다시 대만을 사이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위태로운 대립을 보이고 있다. 

퀸시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 동아시아 프로그램 국장 마이클 스웨인은 “양 측이 서로 역동적으로 세력을 증강시키면서 최악을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고 있다. 쉽게 과도해질 수 있는 전략적 경쟁이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또 다른 측면은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의 야망이라고 NPR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만과의 통합이 포함되는 것이다. 

총 교수는, 시진핑이 과거 선임자들보다 개인적으로 대만 정책에 더 신경쓰고 있으며, 그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는 것은 모두 그의 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시진핑이 과거 위기 때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이미 미군이 포진한 대만 앞바다에 중국이 항공모함들을 배치할지는 알 수 없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중국이 군사적 위기가 고조로 치닫는 것을 피하면서 군사력을 보이려고 하고 있다고 보는 분석 시각도 있다.

호주국립대학교 정치과학 교수 원티 성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허용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중국은 약하게 보일 위험성이 있으나, 동시에 시진핑에게는 안정화도 필요하다. 그래서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은 안정화의 가장 큰 위험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진퇴양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 교수는 과거 대만해협의 위기들을 경험한 대만 사람들은 이 사태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위협에 점점 더 흔들리지 않는 곳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중국은 위협을 더욱 높여야 하고, 결국은 실제로 이 위협을 실행하거나 엄포를 놓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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