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의사의 건강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 김민정 칼럼
  • 승인 2022.08.19 21:07
  • 수정 2022.08.19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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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건강책방 일일호일]
[출처=건강책방 일일호일]

올 여름은 정말 극과 극의 날씨가 이어졌다. 타는 듯한 더위와 어마어마하게 쏟아 붓는 폭우, 그 요란한 여름을 마당이 있는 작은 한옥 책방속에서 보냈다. 날씨 덕분에 책방을 찾는 손님은 줄었지만, 물이 차오르는 마당을 정비하고 비가 스며든 곳을 살피고 보수하느라 바쁜 하루가 갔다.

직접 경험하고 마주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이 책방을 꾸려간다는 것이 그렇다. 책과 커피가 있는 공간에서 책방지기로 일하는 것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는 일이고, SNS 사진 속의 우리 책방은 참 단정하고 아늑하지만, 그 아늑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땀 그리고 종종거림이 함께 해야 하는지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어디 공간 뿐일까. 사람도 그러하다. 책방에서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관심사의 사람을 만나며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을 여럿 경험했다. 개구진 어린이들은 책을 읽는 순간만은 가장 점잖은 책방의 손님이었으며, 무뚝뚝하고도 고집스러운 표정의 할아버지는 가장 공손한 태도를 보인 책방의 손님이었다. 모두 직접 만나고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가 쓴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 취향, 층위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간, 뉴욕의 정신의학과 진료실에서 만나고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조현병 환자, 약물 중독자, 트렌스젠더 등 우리가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때론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책의 시작을 여는 화두이자, 제목에도 영감을 준 덴마크의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프로젝트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책이 아닌 사람을 대여해주는 도서관인 이곳에서는 소수 인종부터, 정신질환자 노숙자, 트랜스젠더, 실직자 등의 다양한 사람들과 30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타인을 향한 낙인과 편견, 혐오를 완화하고 이해와 존중, 공존의 의미를 던지고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지금은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저자는 ‘마치 사람 도서관처럼 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광기와 폭력, 실패자로 낙인 되어 왔던 정신 질환 환자들이 등장함에도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책을 통해 편견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배려와 책임감, 진실함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그들을 경청하고 공감한 저자의 태도 덕분일 것이다.

“동정심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체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타자화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연민하지만, 그 아픔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동정심은 나와 고통을 느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반면,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느낌으로써 비로소 그 고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덜어낼 수 있다. 진심 어린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준다. 심리 치료에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요인이 바로 치료자의 공감 능력이다.”

심리학자였던 저자는 자살 예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질환과 환자를 대하는 그의 진실한 마음은 정신 질환을 향한 사회의 낙인과 혐오에 대한 완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은 정신질환자나 가족들이 상황을 포기하고 치료를 미루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편견 어린 시선과 사회적 낙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는 때로 그 낙인을 체화하는데 이를 내재화한 낙인(internalized stigma) 혹은 자기 낙인(selfstigma)이라 부른다. 정신 질환자를 향한 대중의 편견(가령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다’)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살을 선택으로 오독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는 절실함이 배가 된다. 저자는 자살의 또 다른 이름과 같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해도 삶이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자살이 ‘선택지’가 아닌 현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없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할까. 저자는 자살을 ‘선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살자를 이기적이라 여기는 편견을 강화하고, 유가족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유발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질환 중에서도 가장 비난받는 질환인 중독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뇌의 생물학적 기전’이 정신 질환의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낙인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중독에 관해서만은 여전히 ‘의지’의 문제라 여기는 사회를 안타까워하며 “중독만큼 뇌의 기전이 잘 밝혀진 정신 질환은 드물다”고 말한다.

중독환자는 뇌를 하이재킹 당한 것과 같아, 이를 의지의 문제로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이미지로만 인식되었던 대상들이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올 여름 유난히 인적이 드물었던 고요한 책방에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과 같다. 서사와 맥락이 제거된 화려한 볼거리, 손가락 하나로 찾고 넘길 수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부러 단정히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집중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것은 경청의 힘, 타인에게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인다는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삶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믿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서울대 의대 권준수 교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말하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로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라 했다. 마땅한 말이다.

대립과 불신의 시대, 혐오와 편견으로 반목했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 도서관들이 좀 더 많아 지길 바라본다.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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