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징집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몰려드는 러시아 젊은이들
[우크라 전쟁] 징집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몰려드는 러시아 젊은이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11 05:52
  • 수정 2022.10.1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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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차림의 러시아군 예비역들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에 있는 소집센터 주변에서 인원 점검을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복 차림의 러시아군 예비역들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에 있는 소집센터 주변에서 인원 점검을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내린 징집령을 피해 러시아 젊은이들이 인접국인 카자흐스탄 등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10일(현지 시각) CNN방송이 보도했다. 

바딤(28)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보낼 새로운 병력 수십만 명을 모집하는 징집령을 발동한 뒤부터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고 말한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러시아에서 엔지니어 일을 했던 바딤은 업무 중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화가 나고 두려웠습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바딤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스크바 거리로 나섰지만 적어도 30만 명을 추가로 징집한다는 푸틴의 징집령을 듣고는 러시아가 이제는 정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은 했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변화를 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남은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푸틴의 징집령이 발동된 지 며칠 뒤 그는 할머니에게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고 고향인 모스크바를 뒤로 하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떠났다. 그는 어쩌면 러시아 땅을 영원히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딤과 그의 친구 알렉세이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이전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국가 카자흐스탄 국경을 향해 가능한 빨리 움직였다. 그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3일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알렉세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로 보내질까봐 두렵습니다.”

바딤과 알렉세이는 러시아에 남겨진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

그들은 지난주 카자흐스탄의 상업 수도인 알마티 입국 등록소에서 최근 도착한 150명이 넘는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들 중 일부는 징집을 피해온 러시아인 징집 엑소더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간접적 거부 의사표시

푸틴의 징집령이 발동된 뒤 20만 명이 넘는 러시아 사람들이 카자흐스탄으로 몰려들었다고 카자흐스탄 정부는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알마티 중앙역에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매시간 젊은 슬라브계 젊은이들이 백팩을 메고 기차에서 내려 다소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활용해 길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러시아 전역에서 오고 있다. 야로슬라블, 톨리아티,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출신의 젊은이들에게 왜 러시아를 떠났는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한결같이 동원령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가 참여하고 싶지 않은 전쟁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세르게이(30)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철도역 바깥 벤치에 아내 이리나와 함께 앉아있었다. 백팩과 슬리핑백을 어깨에 짊어진 이 부부는 튀르키예로 가서 가능하다면 범유럽 쉔겐비자(Schengen visa)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대부분의 러시아 망명객들은 익명을 요구했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살던 30대 후반의 작가인 기오르기는 군대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패닉에 사로잡힌 뒤 지난주 카자흐스탄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기지도 못할 전쟁에 무엇하러 참가합니까?”

그는 이렇게 물었다.

그는 현재 알마티에서 아파트를 구하는 중이며 겨울에는 아내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낯선 이국땅에서 먹고 살길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러시아 침공 후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수백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기오르기는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우크라이나인들과 달리 자신과 같은 러시아 징집 기피자들은 러시아 시민권으로 인해 ‘난민이면서 반역자’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전쟁을 단 한 번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권이 있는 한 고국 러시아와 뗄려야 뗄 수 없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중앙아시아 국가의 환대

새로 발생하고 있는 러시아 망명객들은 엄밀히 말하면 난민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러시아 정부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공식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렘린 당국은 여전히 러시아가 현재 이웃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특수 군사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을 수행 중이라고 말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현재 러시아 신분증으로 카자흐스탄에 단기간 체류할 수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은 자국 동포들에게 새로운 입국자들을 환영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돌봐야 하며 안전을 지켜줘야 합니다.”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이렇게 말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카자흐스탄 전역에서 러시아인들을 임시로 부양하려는 비공식적인 풀뿌리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탈출한 사람들이 떨고 있습니다.”

새로 도착한 러시아인에게 도움을 주었던 알마티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 에카테리나 코로트카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알마티에 거주하는 영양사인 알미라 올로바는 적어도 26명의 러시아인들이 주택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아파트나 친구들 아파트에 잠시 머물곤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몇 년 전 자신이 러시아인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주했을 때는 이같은 환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 집주인들은 그녀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아파트 임대를 여러 번 거부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제가 카자흐인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두 달 동안 아파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올로바는 이렇게 회상했다.

카디르 톡토굴로프 전 주미국 및 캐나다 키르기스스탄 대사는 “노동 이주 목적으로 러시아에 간 중앙아시아 인민들은 러시아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구소비에트 공화국 일원이었던 키르기스스탄 또한 징집을 피하려는 러시아인이 대규모로 몰려드는 ‘역이주’를 목격하는 중이다.

“징집을 피해 중앙아시아로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은 중앙아시아 공화국 인민들이 러시아에서 수년 동안 겪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차별에 직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톡토굴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최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아파트를 새로 도착한 러시아인에게 임대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 동원령에 거부하는 청년이 경찰에 제압당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 동원령에 거부하는 청년이 경찰에 제압당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두뇌 유출

부동산 전문가들은 러시아 망명자들의 홍수로 인해 이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등의 도시에서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재택근무를 원하기 때문에 상업용 부동산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

“러시아인 개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기업들도 카자흐스탄으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알마티에 본사를 둔 부동산 회사인 DM Associates의 관리 파트너인 마디나 아빌파노바는 이렇게 분석했다.

그녀는 러시아 기업들이 그녀에게 접근해 징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백 명의 직원을 재배치하려고 한다고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불하고라도 즉시 이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사무실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CNN은 알마티 중심부에 있는 공동 사무 공간 ‘시티 허브(City Hub)에서 아빌파노바와 인터뷰했는데 그곳은 조용히 노트북 작업을 하는 젊은 러시아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빌파노바는 이들이 지난 2주 이내에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사람들이라고 들려주었다. 그녀와 인터뷰 중 거대한 배낭을 멘 또 다른 러시아 청년이 문으로 들어왔다. 사무실 임대인은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재 매일 이렇게 쓰나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모스크바 출신의 엔지니어 바딤은 자신의 회사가 자신과 15명의 동료 직원이 알마티 지사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말했다.

“내 상사도 러시아 정부에 반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떠나온 다른 많은 러시아인들과 달리 바딤은 당분간 급여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모스크바에 남은 할머니를 언제 보게 될지 막막하다.

“할머니를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는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그녀를 땅에 묻기 위해 돌아갈 날이 오기를 빌 뿐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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