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원유 감산에 러시아와 보조를 맞춘 사우디...격분한 미국 정가 vs 사우디 "양국 견고하다"
[월드 프리즘] 원유 감산에 러시아와 보조를 맞춘 사우디...격분한 미국 정가 vs 사우디 "양국 견고하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14 05:39
  • 수정 2022.10.1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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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가 내달부터 하루 2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OPEC+가 내달부터 하루 2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보조를 맞춰 석유 감산에 합의하자 미국이 발끈하고 있다고 13일(현지 시각) CNN이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델 알-주베이르 외무장관은 원유 시장 안정을 위해 사우디가 러시아와 손잡고 원유 생산을 줄이기로 했으며, 이 같은 결정의 배후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은 사우디의 이 같은 행보에 격분하며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원유 시장의 기형적 가격 등락을 방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위 외교관 중 한 명인 알-주베이르 장관은 1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과거 행적을 살펴봐서도 알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원유 시장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선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원유 카르텔 OPEC+는 원유 생산을 하루 2백만 배럴씩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2배 이상 줄어든 수치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감산에 해당한다.

이번 합의는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결정으로, 미국은 그동안 아랍 동맹들에게 원유를 대량으로 감산하게 되면 유가 인상을 야기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재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계속되는 유가 인상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저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금년 들어 치솟고 있는 물가로 고통을 겪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후부 장관(climate ministe)을 겸임하고 있는 알-주베이르 외무장관은 이번 합의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숨어있지 않으며 원유 감산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유가 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지난주 감산 결정이 발표된 이후부터 유가가 하락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 편을 들지 않습니다.”

그는 CNN에 이렇게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세력의 편일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고, 석유를 무기로 생각하지 않으며, 석유는 상품일 뿐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원유 시장의 안정뿐입니다.”

알-주베이르 장관은 이렇게 강조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원유 감산으로 워싱턴은 리야드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감산 합의는 지난 여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던 바이든에게는 특히 모욕감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사우디 왕국의 가혹한 인권 탄압과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서 밝혀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지난 여름 사우디를 방문하기까지 했었다.

빈 살만은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암살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로 인해 이 사건은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었다.

“지금 사우디와 관계 설정을 재고하는 단계에 있으며, 미국 의회가 다시 열리게 되면 사우디는 러시아와 협력한 사실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묻게 될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15일 사우디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에 앞서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15일 사우디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에 앞서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요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무기 판매를 포함해 사우디와 관계의 모든 측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감산 결정 뒤 사우디 왕국에 부과할 보복 조치들에 대해 미 의회 의원들 및 의원 보좌관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모든 사항을 검토할 겁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궁극적인 관심은 미-사우디 관계의 성격이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지, 향후 어떤 변화가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더 잘 어울릴지에 있습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장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알사우드는 수요일 일찍 갖은 사우디 TV와의 인터뷰에서 OPEC+는 서방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하는 데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방이 금리를 올리면 글로벌 경기 침체가 깊어질 것이고 이는 다시 원유 수요 감소와 유가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원유 감산으로 석유 공급이 줄어들면 고유가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원유 감산과 유가 상승이 오일 머니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이어져 사우디 경제를 튼튼하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전 세계 소비자는 에너지 비용으로 돈을 더 지출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은 원유 감산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취해진 조치라고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원유 수익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원유 시장의 호황과 불황을 넘나든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원유 감산 결정은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미국의 유가는 이번 여름 최고가를 찍고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과 핵심 참모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미국의 원유 수요와 일부 정유소들의 유지보수를 포함한 여러 요소들이 뭉쳐 미국 내 유가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은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감산 결정이 지난주 발표된 이후부터 워싱턴 정가는 초당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워싱턴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 상황에서 사우디가 오일 머니로 크렘린의 금고를 채워주는 일에 협력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푸틴이 사악한 전쟁을 계속 치를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미국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코네티컷주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리처드 블루먼솔은 미국이 사우디와 무기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법안이 즉각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의 야만적이고 살인적인 침략 범죄 행위를 부추키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사우디와의 관계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사우디의 알-주베이르 외무장관은 그 같은 정서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의 내부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알-주베이르 장관은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여전히 “견고하다(robust)”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과 미국은 지금까지 80년 동안 견고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굳건한 관계가 향후 80년 동안도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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