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32)  '이명박 지지한데 대해 후회' YS가 생전에 버시바우 대사에게 털어놓은 MB 인물평 보니..
청와대-백악관 X파일(132)  '이명박 지지한데 대해 후회' YS가 생전에 버시바우 대사에게 털어놓은 MB 인물평 보니..
  • 유 진 기자
  • 승인 2022.11.01 05:55
  • 수정 2022.11.0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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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제14대 대통령(1993~1998년)을 역임한 김영삼은 대통령에서 퇴임한 이후 종종 주한미국대사와 미 정부 관료들을 만나면서 한국 정치와 북한문제 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김영삼은 2015년 87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2008년 8월 27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국무부 비밀전문]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전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연차 뇌물사건 수사를 몰아부쳤다. ‘논두렁 시계’ 흘리기 등 언론에 망신 주기는 물론이었다. (뇌물은 영부인과 관련이 있었지만, 명예를 중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죽음을 택했다.)

정권을 거머 쥔 것 자체로 전 정권에 대한 심판은 끝난 것으로 보고, 미래를 향해 덮어줄 것은 덮어줄 줄 아는 아량을 베풀었던 김대중과 이명박(MB)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그릇’으로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정권 때부터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훗날 대통령을 역임했던 김영삼은 MB에 대해 어떤 인물평을 내렸을까?

2008년 8월,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3년간의 주한미국대사를 마치고 이임 인사를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예방하러 갔었다.

대사와 함께한 고별회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 정부의 고민과 개선된 한일 관계의 전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출범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정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YS는 이명박의 국정운영 역량에 대해 의문시하는 모습이었다.

YS는 “현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는 그의 정치경험 부족과 형편없는 인선이 그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정치 라이벌인 박근혜와 화해할 필요가 있다”며 그가 박근혜 대신 이명박을 지지한 것에 다소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는 “이명박은 벌써 국민적 신망을 잃었으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만한 특단의 처방이 없다”고 지적했다.

봉하마을 주민으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같은 보수정권 내 정치인(박근혜)조차 품을 줄 모를 정도의 얕은 그릇인데다 국민들이 바라는 바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인물로 평가한 것이다.

김영삼 “이명박, 정치경험 부족과 형편없는 인선”

대사와 함께한 고별회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 정부의 고민과 개선된 한일 관계의 전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했다. 그는 둘 다 비관적이었다. 

김영삼은 현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는 그의 정치경험 부족과 형편없는 인선이 그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정치 라이벌인 박근혜와 화해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언급했다. 
김영삼은 그가 박근혜 대신 이명박을 지지한 것에 다소 후회하는 눈치였으며, 이명박의 국정운영 역량에 대해 의문시하는 모습이었다. 아직까지 집권당의 원로 인사인 김영삼은 다수의 당 지도자와 청와대 관료들과 회동했다고 말했는데, 그가 박근혜와 곧 회동할 예정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과거 대통령 시절 세계 지도자들과 함께한 회동 모습을 담은 기념품으로 가득한 자택에서, 정정한 모습의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매우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명박의 지지율이 임기 초반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저치다. 

이명박의 문제는 모든 게 경험 부족에서 기인하며, 정치는 경험이 말해준다는 설명이었다. 김영삼은 최근에 이 대통령과 회동하였고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올바른 사람을 뽑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이명박에게 말했다”고 했다. 

김영삼은 새 각료와 청와대 인선은 실망스럽고, 국민의 우려를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인선은 국민을 신이 나게 해야지 실망시키면 안 된다. 이명박은 국민적 신망을 잃었으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만한 ‘특단의 처방’이 없다. 이명박이 경기 부양책과 일단의 정책구상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지지율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영삼은 “이명박은 박근혜를 신뢰하지 않으며, 그녀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일종의 합의를 도출해야만 한다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에게 말한 바 있다. 

둘 사이 관계가 형편없기는 하지만, 계파 싸움은 국회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는 이유는 박근혜가 기본적 사항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버시바우 논평] 김영삼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8선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경험의 혜택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한미동맹을 지지하고 일본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는 그와 동시대 사람들의 견해를 재창하고 있다.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은 원로 정치가인 그를 찾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위한 자리다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김영삼은 정계에서 은퇴하였지만, 그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영남에서 일부 정치적인 중량감을 지니고 있다. 김영삼은 분명히 이 대통령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일을 즐기고 있지만, 이명박이 경청하는 데 흥미가 있을 지는 분명치 않다.  

보복인가 비리척결인가…역대 정권의 정치보복사 

5공 비리 수사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막역한 친구였던 육사 동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적으로 돌렸다.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과 함께 5공 비리에 대한 특별 수사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고, 정치자금과 측근 비리가 대두되자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들어가 2년간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격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노태우가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며 친구의 배신에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역사의 심판대에선 2인. 1996년 12월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와 5·18 사건 항소심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 노태우(왼쪽) 두 전직 대통령. [연합뉴스]
역사의 심판대에선 2인. 1996년 12월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와 5·18 사건 항소심 법정에 선 전두환(오른쪽), 노태우(왼쪽) 두 전직 대통령. [연합뉴스]

1992년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3년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과거사 바로세우기에 착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법정에 세우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구속 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을 했다. 자신이 살던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구속돼 안양교도소로 이송됐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돼 박정희 정권 당시 옥고를 치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부 때인 1980년엔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 등 ‘정치 보복’의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당선자 신분일 때 김영삼 대통령에게 두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며 통합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9년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에서 드러난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도 이때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 흠집을 위해 국정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포착은 또 한 번 ‘정치보복’의 불씨를 당긴 계기가 됐다.

이 수사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며 검찰의 강압수사와 정치보복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사자방’ 비리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수십조 원의 혈세 유출에 따른 국정조사에 시동을 걸었으나, 끝내 불발되며 우회적인 압박에 그쳐야 했다.

대신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반부패 사정 드라이브에 나서며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캐비닛 문건을 공개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의 사자방 비리를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표명하며 본격적인 사정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유 진, 최정미, 한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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