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건희의 시간, 이재용의 시간
[취재파일] 이건희의 시간, 이재용의 시간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2.11.07 09:40
  • 수정 2022.11.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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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말했다. [출처=삼성전자]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말했다. [출처=삼성전자]

"이제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삼성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불거진 1998년 1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은 "대담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합칠 것은 합쳐 나가자"며 이같이 말했다. IMF 위기 선제적 대응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는데, 당시 삼성그룹의 재계서열은 현대그룹 다음인 2위였다. 현대그룹을 추월할 수 있는 형국에 이 전 회장은 되려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했다. 

삼성그룹의 중심이었던 삼성물산의 유통사업은 테스코에, 방산사업은 프랑스 톰슨사에 매각했다.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 사업은 볼보에, 지게차 부문도 클라크사에 매각했다. 삼성 입장에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만은 1995년 설립한 삼성자동차를 5년 만인 2000년에 매각한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이루지 못한 차별화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매각된 이후 지난해 8월 삼성카드가 가진 르노삼성차 지분 19.9%도 모두 처분하기로 하면서 삼성자동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볼보는 삼성중공업 건설기계 인수를 자사 최고의 M&A(인수·합병) 사례로 거론할 정도로 알짜 사업이 됐다. 어떻게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출처=삼성]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출처=삼성]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은 오히려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성별·학력 제한을 없앤 '열린 채용'이 본격화되면서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고,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급제도가 도입됐다. 이 전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으며,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IMF 위기가 마무리되는 2001년엔 현대그룹을 제치고 재계서열 1위로 올라선다. 삼성전자는 또 2005년에 소니를 제쳤고, 2007년엔 모토로라를 제치고 노키아에 이어 세계 2위 휴대폰 제조사가 됐다. 2012년엔 갤럭시S 시리즈 판매량이 애플의 아이폰을 넘어서 세계 1위가 됐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뇌기능이 망가져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었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생을 이어갔지만 2020년 10월 만 7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8년 동양매스컴에 입사한 지 52년, 1987년 회장이 된 지 33년만의 일이었다. 

이 전 회장이 입사한 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태어났다. 그리고 2014년 이 전 회장이 입원한 이후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됐다. 갑작스러운 총수 등극에도 지난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책임을 지고 등기이사 자리에 올라 총수로서 경영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회장 승진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디케이'를 방문하며 상생협력 행보를 밟았다. [출처=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회장 승진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디케이'를 방문하며 상생협력 행보를 밟았다. [출처=삼성전자]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공식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이재용의 시간은 다가왔지만 별도의 행사는 치뤄지지 않았다. 같은날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요 감소 여파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2% 하락하며 세계 1위를 수성하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여건 악화 상황에서 이 회장은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이 취임하던 1987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고 삼성이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을 것이란 생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마치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가 1위 TSMC를 따라잡을 것이란 생각처럼 말이다. TSMC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한 3103억 대만달러(13조6873억원)으로 삼성전자 3분기 전체 영업이익(10.85조원)을 넘어섰다.

반도체 기술이 나노 단위로 초미세화되며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자 발전 속도는 더뎌지고, 경쟁사의 추격은 턱밑까지 따라왔다. 이 전 회장의 말처럼 반도체 신화를 쓴 삼성전자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회장의 말처럼 위기 극복에 더해 투명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경영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사랑받는 삼성전자가 됐으면 한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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