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고대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투표했을까?... BC 139년 비밀투표 시작되자 귀족들 '광분'
[WIKI 히스토리] 고대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투표했을까?... BC 139년 비밀투표 시작되자 귀족들 '광분'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1.12 06:43
  • 수정 2022.11.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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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 사람들은 '도편추방' 방식으로 공동체에 해가 되는 인물을 배척했다. [사진 = ATI]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 사람들은 '도편추방' 방식으로 공동체에 해가 되는 인물을 배척했다. [사진 = ATI]

최근 예상을 뒤짚는 미국의 중간선거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때 맞춰 ‘히스토리 채널'이 고대인들의 투표 방식을 상세히 소개주는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투표일이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투표를 했을까?

이와 관련해 역사가들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되었던 직접 민주주의 사회 아테네와 근로 계층보다 지배층에 특권이 더 주어졌던 로마 공화정 시대의 의사(擬似) 민주주의에서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추곤 한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와 로마 공화정 시대에 민주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dēmos 뿐이었다. dēmos는 남성 자유민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과 노예 계층은 투표권이 없었다.

데모크라시(democracy)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인 dēmokratia는 ‘민중의 힘(people power)’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무작위 장치로 선발한 대표들

인디애나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 독해와 출처(Ancient Greek Democracies: Readings and Sources)』의 저자이기도 한 에릭 로빈슨은,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선거가 관리를 선발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가 거의 실시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부유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체 인민들이 모든 것을 운영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선발해야 했다.”

아테네의 통치는 주로 ‘500인 위원회(Council of 500)’에 의해 이뤄졌는데, 위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아테네 사람들은 ‘추첨(sortition)’이라고 알려진 제도를 활용했다. 당시 아테네는 10개 부족으로 구성되었었고, 각 부족은 ‘500인 위원회’에 파견되어 1년 동안 근무할 대표 50명을 선출해야 했다.

500인 위원 물망에 오른 후보들에게는 개인별로 특성화된 표식이 주어졌고, 아테네 부족들은 이 표식들을 kleroterion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치에 집어넣었다.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튜브와 공으로 이루어진 kleroterion이라는 장치는 각 부족이 ‘500인 위원회’에 보낼 대표를 선발하는 장비였던 것이다.

직접 참여하는 의회 구성 : 1인 1표 제도

고대 아테네의 모든 법률과 사법 절차는 ‘ekklēsia’라 불리던, 일종의 의회에서 이루어졌다. ‘ekklēsia’는 아테네의 모든 남성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대규모 직접 민주주의 기관이었다. 약 3만~6만으로 추정되는 아테네 시민들 중 대략 6000명 정도가 규칙적으로 이 의회에 참여했다.

아테네의 의회는 언덕 꼭대기에 마련된 Pnyx라는 원형경기장에서 열렸는데, ‘Pnyx’는 ‘꽉 들어찬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였다. Pnyx는 6000~13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선거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편으로 투표를 한다거나 학교나 교회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가 한 표를 행사하는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샌디에이고 정치학과 교수이자 『국민 정부 : 민주주의 소개(The People's Government : An Introduction to Democracy)』의 저자인 델 딕슨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직접 모습을 나타내야 했다. ‘공화제(republic)’라는 말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republic은 공공장소(a public place)를 의미하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유래되었다. 당신은 직접 의회에 가서 다른 시민들과 어울려 그날의 현안을 의결하는 데 참여해야 했다.”

그날 그날의 의제는 ‘500인 위원회’에서 결정되었지만 모든 입법·행정 정책은 투표로 결정되었다. 투표는 거수 방식으로 결정되었으며, 승자는 proedroi라 불리는 9명의 총재들에 의해 확정되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무척이나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사전 매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9명의 선거 관리원들은 의회가 열리는 날 아침에서야 무작위로 결정되었다.”

로빈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대 아테네 자유민 남성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의회에서는 일부 고위 관리들을 선출하기도 했는데, 군대의 장군들이 대표적 사례였다.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는 방식으로 해마다 10명의 장군들을 선출했다.

돌을 사용한 비밀투표

아테네 의회는 법률 통과 외에도 아테네의 모든 형사 및 민사 재판에서 평결을 내리는 일도 했다. 아테네의 배심원은 12명이 아니라 200~5,000명 정도였다고, 딕슨 교수는 말한다. 또한 배심원 중 한 명이 무작위로 선택되어, 최종 판결권은 없이, 규칙과 절차가 준수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른 투표들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아테네 배심원단은 돌을 사용한 특별한 종류의 비밀투표를 실시했다.

로빈슨 교수에 따르면, 각 배심원에게는 작은 돌 두 개가 주어졌는데, 하나는 그냥 단단한 돌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돌이었다. 투표할 때가 되면 배심원들은 두 개의 항아리에 다가가서 실제 평결 의사는 첫 번째 항아리에 집어넣고 남은 돌을 두 번째 항아리에 던져넣었다. 어떤 돌이 어느 항아리에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었다.

작은 돌이나 조약돌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psephos’는 오늘날까지 ‘psephology(선거학)’라는 영어에 살아남아 있다.

미국 중간선거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도편 추방(Ostracism and Exile)’이라는 특별한 투표 제도

고대 아테네에서는 공적인 인물이 불명예에 휘말리거나 과도하게 인기를 얻게 될 경우 ‘도편 추방(ostracism)’이라는 투표를 통해 해당자를 10년 동안 추방시킬 수 있었다. ostracism의 어원은 도자기 파편 등의 사금파리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ostraka이다.

도편 추방 선거에서 의회의 각 구성원은 작은 도자기 조각을 받은 뒤 추방할 사람의 이름을 긁어서 표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딕슨은 “최소 6000명으로부터 지목을 받은 사람은 10년 동안 아테네에서 쫓겨나야 했다”고 말한다.

도편 추방의 대표적 사례는 기원전 472년에 추방당한 뒤 타지에서 사망한,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전투에서 활약한 아테네의 군사 영웅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를 들 수 있다. 이 전승(傳承)에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정적들이 수백 또는 수천 개의 도자기 파편에 그의 이름을 미리 새겨 놓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의원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내려온다.

스파르타의 함성 투표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가장 크고 가장 강력했지만, 각 도시국가들은 나름대로 고유한 형태의 투표와 선거를 시행했다고, 『아테네 너머의 민주주의(Democracy Beyond Athens)』를 저술한 로빈슨 교수는 말한다 .

예를 들면, 스파르타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민주적 요소를 실시했다. 스파르타의 최고 통치기구 중 하나는 2명의 왕과 28명의 선출직 관리로 구성된 ‘장로 위원회(gerousia)’였으며, 이들은 모두 60세 이상이었고, 평생 직책을 맡았다.

“관리를 선출하기 위해 스파르타인들은 환호 투표(acclamation)라고도 하는 독특한 방식의 함성 선거(shouting election)를 도입했다.”

로빈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후보자들이 돌아가면서 큰 집회장으로 걸어가면 사람들이 박수로 찬반 의사를 표시했다. 이때 보이지 않는 다른 방에 있던 심사위원들이 소리의 양을 비교하여 승자를 선택했다.”

부자에게 ‘특권’을 부여한 로마 공화정 선거

로마 공화정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일부 원칙을 계승했지만 유권자를 계급별로 차별하고 부유층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었다.

아테네처럼 하나의 거대한 의회에서 투표하는 대신 로마인들은 세 개의 의회를 도입했다. 첫 번째로 ‘백부장 의회(Centuriate Assembly)’라 불린 기구는 집정관, 치안관, 검열관 등 로마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선출했으며 전쟁을 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백부장 의회’에서의 투표는 가장 부유한 계층부터 시작되어 193명 전체 구성원의 과반수에 도달하자마자 투표가 중단되었다. 따라서 모든 부자들이 특정 법안이 통과되기를 원하거나 특정 집정관이 선출되기를 원하면 집단으로 단결하는 방식으로 하층 계급을 배제할 수 있었다.

라틴어로 먼저 투표할 수 있는 특권을 praerogativa(다른 사람보다 먼저 의견을 묻는다는 의미)라고 했는데 현재 영어 단어 prerogative(특권)의 어원이기도 하다.

로마 공화정의 다른 두 의회인 ‘부족 의회’와 ‘평의회’에서의 투표는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아테네와 로마의 부족은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지리적 연고를 기반으로 했다. 이때의 부족 의회도 각 주가 평등한 대표성을 갖는 미국 상원 선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비밀 투표와 선거 유세

로마 공화정 선거의 일부 특색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의회에서의 투표는 아테네 모델처럼 작동되었으며, 의회의 각 구성원이 손을 들고 공개적으로 투표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배층이 투표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아지자 비밀투표가 도입되게 되었다.

기원전 139년에 로마는 새로운 유형의 비밀 투표를 도입했다.

로빈슨 교수는 “왁스가 칠해진 나무판자를 사용했다”라고 말한다.

“투표자는 의사 표시를 한 나무판자를 투표함에 밀어 넣었다. 귀족들은 이러한 비밀투표에 대해 광분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먹혀드는 투표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거 홍보로 점철된 광고에 진절머리가 나는가?

그렇다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폼페이 벽에 낙서된 수백 가지의 고대 선거 유세 광고와 정치적 낙서들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공식 선거운동과 관련, 딕슨 교수는 "로마 공직자들의 선거운동 기간은 1~2주로 제한되었고 대부분이 광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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