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덧내는 사람들 [정숭호 칼럼]
상처를 덧내는 사람들 [정숭호 칼럼]
  • 정숭호 칼럼
  • 승인 2022.12.30 10:35
  • 수정 2022.12.3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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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수시설 화재사건 현장. /연합뉴스
유치원 아이 열아홉 명이 희생딘 경기 화성군 수련원 화재 현장. 당시의 끔찍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연합뉴스

기자를 하면서 억울하고 불쌍한 죽음을 많이 다뤘다. 그렇게 죽은 사람 가운데 아직 기억에 남는 건,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려 어린 아들 데리고 동네 슈퍼에 갔다가 슈퍼 앞 탁자에 둘러앉아 담배 피우던 학생들에게 맞아 죽은 어떤 젊은 아버지다. 

아빠의 무참한 죽음을 지켜보며 울부짖었을 그 아들은 그 뒤 어떻게 자랐을까, 그의 삶에 펼쳐진 굴곡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견뎠을까. 혹시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혹시 제 삶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채 춥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지는 않을까.

여러 해 전의 그 사건에서 비롯된 비참하고 불쌍한 상상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보도를 볼 때마다 지금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나의 트라우마라고 해도 되겠다. 

20여 년 전 경기도 화성 바닷가의 한 조악한 연수시설에서 한밤중 화재로 유치원 아이 열아홉이 끔찍하게 숨진 사고는 어른들의 무신경과 부주의로 인한 어린 것들의 참사나 희생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재운 인솔자들이 바깥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 아이들 방에서 누전으로 시작된 불이 그 참사의 원인이었다. (사고 직후에는 아이들 방의 모기향이 화인으로 지목되었다.)

숨진 아이 중에는 여섯 살짜리 쌍둥이 자매도 있었다. 쌍둥이의 주검은 서로 가슴을 맞대고 꼭 껴안은 채 발견됐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숨질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후 나에게는 이 사고보다 더 어른 된 게 민망하고 미안한 게 없었고, 아이들 가족의 상처를 내가 헤집는 것 같아 글로도 써본 적 없고 입에 올린 적도 없다. 

10월 마지막 주말 서울 이태원에서 젊은 150여 명이 스러지는 끔찍한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때 그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그 이후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알아보도록 나를 떠밀었다. 

쌍둥이의 부모를 비롯한 아이들의 부모들은 서울과 경기도의 여러 행정관청을 찾아 사고원인을 밝혀내라고 집단행동을 시작하고 마침내는 국무총리실까지 찾아갔으나 타고 간 버스가 통째로 견인 당했다. 건물주 및 시공자의 과실과 관청의 관리/감독 부실이 드러났다. 여러 명이 처벌받았다.

과실의 원인과 책임이 분명히 밝혀진 만큼 아이들의 가족들에게는 화성시가 가족당 3억 원 가량의 보상과 위로금을 지급했다. 건물주 등 사고원인에 직간접 책임 있는 사람의  부담해야 했으나 그들의 재산은 보상 액수에 턱없이 부족했다. 화성군이 선지급했다.

상처를 뜯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 상처를 뜯는 사람도 많고, 남의 상처를 뜯어 헤집어 놓는 사람도 많다. 자기 상처건 남의 상처건 뜯어 놓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문지르는 사람도 많다. 남의 상처를 뜯는 자는 무슨 잇속을 노리고 그럴 것이나 자기 상처를 뜯어서 덧내고 그걸 또 뜯는 사람은 이유를 모르겠다. 

옛날 구도자 가운데 내리쬐는 햇볕 아래 뜨겁게 달궈진 뾰족하고 날카로운 돌길을 벌거벗은 몸으로 기어가는 자해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저들은 그것도 아니면서 자해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도 뭘 얻으려고 그러는 건가, 그렇다면 뭘 얻으려 그러는 건가.  

거의 60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지리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인데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일본 북해도 쪽에 눈이 많이 내리지. 거기는 곰도 많이 사는데, 어떤 사람이 새끼 곰이 귀여워 한 마리를 키웠대. 처음에는 집안에 두고 밥 주고 그랬는데, 좀 자라니까 발톱이 날카로워져서 마당에 묶어뒀지.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일이었는지 가슴에 상처가 났는데 곪은 상처가 아물만하면 그 발톱으로 상처를 뜯더라는 거야. 또 아물만하면 또 뜯고... 그러다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죽었지. 사람들이 곰이 영리하다고 하는데 이런 걸 보면 짐승은 짐승이지.”

곰은 미련해서 제 상처를 제 발톱으로 뜯었겠지만 사람도 미련해서 제 상처를 뜯었을까?

혹시 남의 상처 덧내는 데 재미들인 사람들이 “뜯어라. 뜯어라. 얼마나 재미있다고”라면서 부추기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쁜 자들이다.

화성 사고의 훗날을 다룬 기사 마지막에는 쌍둥이들의 아빠 이야기도 한 줄 있다.

“한편 이 참사로 인해 쌍둥이 딸을 잃은 유가족 대책회장 〇〇 씨는 2006년 ‘안전교육이 유아의 안전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뒤 안전 문화 유공자로 인정받아 2015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장, 전 한국일보 경제부국장, 전 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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