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로 대 웨이드’ 판결 50주년...여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낙태 논란
[월드 프리즘] ‘로 대 웨이드’ 판결 50주년...여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낙태 논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2.01 05:44
  • 수정 2023.02.01 0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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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확보를 위해 우회로를 모색하는 진보진영과 케케묵은 ‘콤스톡법’까지 끄집어낸 보수진영
미 대법원 앞의 낙태 찬반 시위대 [사진 = 연합뉴스]
미 대법원 앞의 낙태 찬반 시위대 [사진 = 연합뉴스]

'낙태 금지냐, 낙태 허가냐'

2023년은 미국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내려진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최근 미국에서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뜻을 이어받아 낙태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시위대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미 연방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해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이 판결을 폐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 시절 연방 대법원이 보수 우위로 재편된 영향이었다. 이에 따라 즉각적으로 미국 14개 주에서 낙태가 금지되거나 심각하게 제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낙태 금지(생명권)와 낙태 허가(선택권)를 놓고 뜨거운 논란과 갈등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CNN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법률 역사가이며 캘리포니아 대학 법학과 교수인 메리 지글러의 칼럼을 게재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미국 대법원이 지난해 6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은 이후 개별 주에서 낙태권 수호를 위한 유력한 전략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는 주의 헌법적 권리를 보존하거나 창출하기 위해 국민발안(ballot initiatives) 제도를 꺼내 들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낙태 시행 의사와 낙태권 수호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입법부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권 옹호론자들의 이러한 고육책들은 언제나 들어맞는 묘책은 아니다. 모든 주들이 국민발안 제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며, 유권자의 대다수는 낙태권을 지지하는데도 입법권을 가진 세력들이 이를 원치 않는 주들도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의사와 입법권자들의 이러한 불일치는 주로 당파적 신념 차이와 게리맨더링의 폐해, 그리고 투표권 제한 때문에 발생한다.

이에 대해 낙태 권리 옹호론자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합법적인 낙태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은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실에 힘입어 가능한 최선의 전략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낙태 반대 단체들이 낙태권을 차단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새로운 전략 개발에 나선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낙태 반대 세력들이 노리고 있는 뚜렷한 목표는 현재 미국에서 임신중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낙태 약물의 보급 저지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낙태 반대 세력들은 최근 케케묵은 법안 하나를 새롭게 찾아냈다. 바로 1873년에 통과된 ‘콤스톡법(Comstock Act)’이다. 이 법은 매춘 반대의 십자군 전사 앤서니 콤스톡(Anthony Comstock) 이 외설(猥褻)로 여겼던 인쇄물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미국 체신부에서 특수임무에 종사하던 콤스톡은 섹스에 빠져있는 미국의 타락한 윤리에 너무나 실망했다.

콤스톡이 고안한 ‘콤스톡법’은 음란 서적의 우송뿐만 아니라 피임 및 낙태 약물과 낙태 도구의 배송도 금지했다. 이 법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월트 휘트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전문학 작품들을 외설이라는 이유로 우편 발송 금지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콤스톡 자신은 자랑스럽게 총을 들고 다니며 낙태나 피임에 관한 정보가 포함된 소포들을 찾기 위해 우편물을 샅샅이 뒤졌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콤스톡법’은 대성공을 거둔 법이었다. 그는 15톤 분량의 책을 압수하고, 4,000명 이상을 체포했으며, 최소 15명을 자살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15년 콤스톡이 사망할 무렵이 되어서 미국인들은 그의 십자군 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법원은 ‘콤스톡법’의 적용을 엄격히 제한하기 시작했다.

판사들은 피임약 같은 일부 약물의 합법적인 사용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콤스톡법’은 이 법을 위반하려는 의사가 명백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특정 약물을 적법하게 처방하는 의사와 의사의 조언에 따라 낙태를 실시하는 환자들은 ‘콤스톡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낙태 반대 운동의 일부 세력들은 ‘콤스톡법’을 포함해 연방법 준수 의무를 규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내세우며 ‘콤스톡법’의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한 예로 보수 단체 ‘자유수호연맹(ADF : Alliance Defending Freedom)’은 ‘콤스톡법’에 따라 텍사스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단체는 ‘콤스톡법’이 훨씬 더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낙태 약물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1910년대 이후 적용되고 있는 법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해석은 낙태 약물이 아닌 피임에만 적용되었다고 강조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법무부는 이 주장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낙태 반대 단체들이 단념할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의 희망은 ‘콤스톡법’에 대한 자진들의 주장을 보수적인 판사들 앞에,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과반이 넘는 대법원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관 9인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관 9인 [사진 = 연합뉴스]

미국 낙태 반대 운동 지도자들의 목표는 낙태를 국가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태아의 인격을 인정하고 낙태 자체가 위헌임이 확정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태아의 인격 논쟁은 결국 대법관들의 지지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낙태 판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지난 여름 헌법은 “생명권을 찬성하거나 (낙태의) 선택권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기록했으며, 그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자신의 신념을 뒤집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대법원이 ‘콤스톡법’에 의존해 심리한다면, 낙태 반대 운동은 캐버노 대법관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아도 모든 낙태 약물에 대한 금지와 동등한 수준의 성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콤스톡법’ 관련 심리에서 대법원의 고민은 헌법과는 관련이 없는 듯하다. 대신, 판사는 법의 상충되는 해석을 고려해야 한다.

즉, 법을 명백히 위반할 의도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약의 우송을 불법으로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낙태 약물 우송관 관련된 모든 행위를 금지해야 하는가? 

만일 법원이 ‘콤스톡법’은 모든 낙태 약물의 우송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결하면 미국에서 낙태 약물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낙태 클리닉도 원격 의료에 의존하는 환자나 약국과 마찬가지로 제약 회사로부터 약물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뉴멕시코주 법무장관은 주 대법원에 낙태를 금지하는 지방 조례 대신 ‘콤스톡법’을 발동하도록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이 받아들여질 경우 보수적인 판사들에게 ‘콤스톡법’이 블루스테이트(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주)를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집행 가능하다고 주장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기회가 연방 대법원이 ‘콤스톡법’에 대한 전면적인 해석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주장이 보수세가 강한 대법원까지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중요한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한편, 대법원이 ‘콤스톡법’을 낙태 약물의 우편 발송 금지로 해석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 법무부는 이 법의 집행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벌써부터 이해 관계의 대립이 첨예화하고 있는 2024년 대통령 선거는 더욱 분열될 것이다. 만일 공화당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콤스톡법’ 시행에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여 엄청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콤스톡법’에 대한 이러한 관심 증가는 블루스테이트(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이제 이 법의 폐지를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사실, ‘콤스톡법’의 일부는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반할 수 있으며, 피임에 관한 법률 조항은 산아제한을 보호하는 대법원 판결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나 낙태에 관한 ‘콤스톡법’ 조항에는 장애물이 없다. (그리고 법원이 지난 여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결정에서 제시한 테스트를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산아제한을 보호하려는 대법원의 의지가 확고한지도 의문이 든다).

현재 상태로는 낙태 지지자들은 ‘콤스톡법’에 근거한 보수층의 전략이 보수적인 판사들에게조차 지나친 조치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보층은 설마 대법원이 낙태권을 폐지하겠느냐고 낙관적이었다가 뒤통수를 맞았었다. 우리는 대법원의 낙태 판결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향후 몇 년 동안 낙태에 대한 접근은 그것을 금지하기로 선택한 남부 및 중서부 주들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앤서니 콤스톡이 자신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법안을 놓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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