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중국 풍선 사태로 돌아본 공중 정찰의 역사... 남북전쟁에 등장한 열기구부터 무인드론까지
[월드 인사이드] 중국 풍선 사태로 돌아본 공중 정찰의 역사... 남북전쟁에 등장한 열기구부터 무인드론까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2.19 05:52
  • 수정 2023.02.19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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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이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이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중국의 정찰풍선이 국제정치의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히스토리 채널’ 웹사이트는 최근 불거진 중국 정찰 풍선 사태를 계기로 공중 정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전투 현장에 등장한 풍선(열기구)에서 최근의 제트 추진 무인 드론에 이르기까지 공중 정찰은 적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이다. 다음은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 스파이 박물관(International Spy Museum)’의 역사가이자 큐레이터인 앤드류 하몬드가 들려주는, 지난 200년간의 공중 정찰 발달사이다.

남북전쟁에 등장한 정찰 풍선

1790년대 초, 프랑스인들은 사상 최초로 적진의 정찰을 위해 수소 풍선(열기구)을 띄우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땅에 고정된 케이블에 매달려있던 이 풍선은 실제로 적 상공 위로 날아가지는 못했다. 이 풍선 아래 바구니에는 두 명의 군인이 타도록 되어있었다. 한 명은 망원경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깃발로 지상에 관측 신호를 보냈다. 프랑스의 수소 열기구 풍선 부대는 1794년 ‘항공부대(Compagnie d'Aéronautiers)’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족했고, 이는 세계 최초의 공군에 해당했다.

“그 전에는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병 정찰대를 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50마일까지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 높이에서 적을 정찰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발명가이자 서커스 흥행사였던 세디우스 로웨는 워싱턴 중심지인 ‘내셔널몰(National Mall)에서 풍선을 시연해 보였고, 이른 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북부군에 이 풍선을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이 풍선도 지상의 줄로 묶여있었다. 당시 북군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이 정찰 풍선 ’인트레피드(Intrepid)‘는 남부군의 위치를 파악해 정보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전신 교환원을 포함해 5명을 태울 수 있었다.

중국 정찰풍선. 연합뉴스
중국 정찰풍선. 연합뉴스

연에서 촬영한 공중 정찰 사진

1880년대에 더글라스 아치볼드라는 영국 기상학자는 풍속을 연구하기 위해 대형 캔버스로 만든 연을 실험했다. 그는 나아가 이 연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연줄에 연결된 긴 케이블을 통해 셔터를 작동시켰다. 사상 최초로 공중에서 지상을 촬영한 아치볼드의 항공 사진들은 윌리엄 에디라는 미군 상병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전한 에디 상병은 아치볼드의, 연에 장착된 카메라를 자신만의 모델로 개조해 사진을 찍고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활용했다. 사진 기술은 남북전쟁 당시에도 존재하기는 했었지만 이를 이용해 군용 항공 정찰 사진을 찍은 것은 에디의 연이 처음이었다.

카메라를 장착한 비둘기

우편 비둘기나 집 비둘기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수단으로 큰 역할을 했다. 이 비둘기들은 고립된 선원들로부터 구조신호를 가지고 날아다녔고, 포병 장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기도 했고, 스파이들 사이의 은밀한 암호 전달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 비둘기들은 실제로 항공 사진을 촬영하거나, 촬영하려는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07년 줄리어스 누브로너라는 독일 약사가 비둘기에 카메라를 장착해 특허를 받았고, 이를 사용해 ‘날개 위에서’ 찍은 사진을 담은 기발한 엽서를 제작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군이 정찰기보다 더 은밀한 비둘기 사진작가를 정찰에 활용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정말로 비둘기에 카메라를 장착해 프랑스군의 참호 위로 날려보냈습니다.”

하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화면이 흐릿하고 판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보와 감시 활동의 역사는 성공보다 실패한 시도가 더 많았습니다.”

CIA 또한 적을 대상으로 근거리 정찰 사진을 찍기 위해 비둘기에 경량 카메라를 장착하는 실험을 실시했지만 새는 통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을 날고 있는 이란제 자폭 드론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을 날고 있는 이란제 자폭 드론 [사진 = 연합뉴스]

최초로 정찰기용 카메라를 고안한 코닥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초기의 항공기는 전투기와 폭격기로 무장하기보다는 정찰용으로 먼저 활용되었다. 2인승 비행기에 탄 조종사와 정찰병은 쌍안경으로 적군의 배치를 정찰했다.

그런 다음 카메라가 동원되었다.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 컴퍼니는 영국산 드 해빌랜드 드래곤(de Havilland DH-4) 항공기 측면에 장착할 최초의 공중 정찰 카메라를 고안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 활용되었던 다른 카메라들은 조종석 바닥의 구멍을 통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코닥은 로체스터 본사에서, 정찰 사진 현상 임무를 맡은 미군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US 항공 사진 학교(U.S. Aerial Photography School,)’를 운용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정찰기는 항공 사진을 거의 실시간으로 현상·분석하기 위해 정찰기 내에 간이 암실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은 KGB의 감시 때문에 소련의 지상에서 정보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하늘로 눈을 돌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입니다.”

하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상업용 제트기 순항 고도 두 배 이상의 높이인 7만피트 상공에서 비행할 수 있는 U2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U2기에는 아찔한 고도에서 촬영해 2.5피트 너비 물체를 식별하는 해상도를 지닌 ‘Hycon 73B’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1962년 U2기는 쿠바의 소련 핵무기를 포착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최초의 정찰 위성

과거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누가 달에 먼저 도달하느냐의 문제 이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양국 정보기관들도 스파이 위성을 서로 먼저 궤도에 올리기 위해 경쟁했던 것이다

“위성은 현재 상업용으로 널리 쓰이지만, 당시에는 주로 안보 및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하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1950년대 후반, 미 공군은 과학 데이터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는 ‘디스커버러(Discoverer)’라는 인공위성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목표였을 뿐이다. ‘디스커버러’의 실제 목적은 ‘프로젝트 코로나(Project Corona)’라는 비밀 스파이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의 첩보 위성 ‘디스커버러’는 1960년 소련의 항공 이미지를 최초로 송출하는 데 성공했다.

후기 냉전 시대의 가장 강력한 산물인, 미국의 정찰 위성 ‘헥사곤 KH-9(HEXAGON KH-9)’은  지표 100마일 상공에서 2피트보다 작은 물체를 촬영할 수 있었다. 디지털 이미지가 개발되기 전, ‘헥사곤 KH-9’이 촬영된 필름 꾸러미를 낙하산에 실어 내려보내면 미 공군이 하와이 상공에서 이를 받아냈다.

잠자리 드론을 개발한 CIA

CIA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치 중 하나는 ‘인섹토소프터(insectothopter)’라 불리는, 정말 잠자리처럼 보이는 은밀한 도청 장치이다.

CIA는 1970년대에 호박벌 모양의 장치를 만들려는 초기 노력을 포기한 후 이 장치를 개발했다. ‘인섹토소프터’의 반투명 날개는 작은 휘발유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60초 안에 두 개의 축구장을 정찰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날았다. 이 잠자리 도청 장치는 레이저 빔을 이용해 통제되었으며, 부착된 작은 마이크로 잡아낸 정보들을 전송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섹토소프터’ 프로그램은 시속 5마일 이상의 돌풍에 쉽게 경로를 이탈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최초로 등장한 무인 공중 정찰기(UAV)

‘무인 공중 정찰기’로도 불리는 UAV(unmanned aerial vehicles)의 효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의 원격 조종 비행기 ‘에어리얼 타겟(Aerial Target)’이었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국 공군은 UAV를 1917년 영국 전투기들(British dogfighters)의 사격 연습용으로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공군은 UAV 편대를 대공 포병들을 위한 재사용 훈련 표적물인 ‘퀸비(Queen Bee)’로 업그레이드했다. 드 해빌랜드(de Havilland)가 제작한 ‘퀸비’는 무선 제어 서보(servo)를 이용해 기체의 방향타와 엘리베이터 제어 장치를 수동으로 조작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벌(Bee)’을 모태로 한 UAV에서 ‘드론(drone)’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고 여긴다.

요즘 활용되고 있는 제트 추진 드론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비밀 정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 중 34,000회 이상 감시 임무를 수행한 ‘AQM-34 Ryan Firebee’는 레이더 흡수 담요(radar-absorbing blanket)와 레이더 방지 페인트 등의 스텔스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이 드론은 베트공의 위치를 추적하고 표적을 탐지하는 것 외에도 적진 후방에서 선무용 삐라를 뿌리는 데도 활용되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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