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39) 김대중 정부 남북정상회담 추진에...백악관 “갑자기 놀라는 상황 원치 않는다” 경고
청와대-백악관 X파일(139) 김대중 정부 남북정상회담 추진에...백악관 “갑자기 놀라는 상황 원치 않는다” 경고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3.04 06:59
  • 수정 2023.03.0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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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물밑에서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 대통령과 임동원 원장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살을 붙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김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던 정주영 현대 회장은 기업 차원의 포용정책을 발표했다. 

소 1천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건넌 정 회장은 새로운 대북정책의 상징을 부각됐다. 그의 소떼 방북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의 소떼 방북은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갈 때 여비로 쓰라고 아버지께서 빌려주신 소를 갚는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 미군은 이 대규모의 국경 횡단 이벤트를 ‘소떼 드라마’라고 표현했다.

기근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소들이 살아남아 새끼를 번식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이 이벤트는 별 탈 없이 진행됐다. 정 회장과 그의 아들들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정 회장은 DMZ를 넘어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는 관광단지를 개발하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스티븐 보즈워스 주한미대사에게 평양과의 연락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김정일 위원장과 측근들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북한을 두차례 비밀 방문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보즈워스 대사는 그러나 미국과 한국 정부의 양자 관계에 비춰 한국 정부가 북한에 개시하는 행동을 미국에 알리지 않았던 것은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그는 임동원 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하는 일들을 믿지만, 한미 정부의 대북정책에 균열이 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대통령이 세운 목표는 김정일 위원장과 1대1 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에서 발표했던 것처럼 점점 심각해지는 북한의 경제문제와 한국이 줄 수 있는 경제적 도움을 지렛대 삼아 그 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욕이 강했다.

대북 포용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하자 국내에서는 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놀아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임동원 원장을 통해 대북 비밀 접촉을 시작했다. 임 원장은 두차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백악관은 김대중 정부에 “갑자기 놀라는 상황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한미대사를 통해 전달했다.

5월 중순, 청와대는 미국에 사전 통보를 한 뒤,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2000년 6월 15일, 김 대통령은 이틀간의 방북 일정으로 평양으로 날아갔다. 방문이 상징하는 바는 회담의 결과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김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 도착해 김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나라 전체가 숨 죽여 지켜보았던 국내에서는 엄청난 정치적 효과가 일었다.

지난 50년간 한국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해 온 북한의 위협이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결 줄어들었다는 인식이 한층 더 다져졌다. 

2000년 6월 15일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14일 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2000년 6월 1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북정상회담 3개월 후인 9월 한미 정상회담이 뉴욕에서 열렸다.

김대중-빌 클린턴 정상회담은 9월 8일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35층에 자리했던 김대통령의 스위트룸에서 열렸다. 

김 대통령은 회담 도중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가졌던 6.15 정상회담의 한미관련 주요 사항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미래의 남북한 통합 문제 등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오갔던 핵심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이 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김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호응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다.

김 대통령은 뉴욕에 머물면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조찬회동을 갖고, 주미 대사관이 마련한 만찬자리에서 미 중요 인사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그 자리에는 데이비드 록펠러, 프랭크 칼루치, 폴 월포위츠 등 20여명의 기업인, 은행가, 전현직 관료들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의 방미 다음달 북한 군부의 실세 조명록 차수가 사전 통지도 없이 미국을 방문했다.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과도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이 2000년 9월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이 2000년 9월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2000년 6월 13~15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가진 남북정상회담은 '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일컬어진다. 마지막 날인 15일 양 정상은 6.15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2000년 세계 10대 뉴스 중에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1차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및 남북 간 민간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큰 의의는 역시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이 만났다는 점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2000년 정상회담 개최 발표 전에 현대그룹이 북한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됐다. 이는 동교동계와 문재인 현 대통령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

정치적으로 난관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개성공단 가동 등 활발한 남북교류가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1차 정상회담은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박근혜- 이명박 - 문재인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1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퇴색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특히 북한 정권이 핵과 ICBM 등을 무기로 미국과의 직거래를 추진하면서 '한국 정부와는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은 언제 다시 열리게 될 것인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유 진 기자]

 

yoojin@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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