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미국인들이 프랑스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월드 프리즘] 미국인들이 프랑스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3.27 05:40
  • 수정 2023.03.27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년 3월 23일 목요일(현지 시각), 파리에서 열린 집회가 끝난 뒤 한 시위자가 최루탄 통을 발로 차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 시각), 파리에서 열린 집회가 끝난 뒤 한 시위자가 최루탄 통을 발로 차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프랑스에서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방문이 무산될 정도로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몇 달째 계속되면서 소요 사태로까지 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시위의 경우 프랑스 내무부은 108만9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고, 시위를 주최한 8개 주요 노동조합의 노동총동맹(CGT)은 350만 명이 넘게 거리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CNN은 프랑스 사람들이 왜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이처럼 격렬히 저항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칼럼을 내보냈다. 칼럼을 쓴 캐서린 포이즌(Catherine Poisson)은 프랑스인으로 현재 미국 웨슬리언대학 로맨스언어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프랑스 사람으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필자는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는 고령의 직원들을 보면 언제나 충격을 받는다. 그 모습에서 고령자들의 품위 있는 은퇴가 지원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부정적 측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퇴직 후에도 자발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우리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도 과중하게 여기는 직종에서 고령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목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필자의 고국 프랑스에서 퇴직연금 연령 상향안을 반대하는 전국적 시위가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3개월 동안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인상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대규모  격렬한 시위가 프랑스를 뒤덮고 있다. 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계속된 프랑스 사람들의 분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불신임 투표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마크롱은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징표였다. 지난 1월 법안이 발의된 이후 파업 9일째를 맞는 지난 목요일에는 노동자 단체들이 주관하는 대규모 시위가 새롭게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교사들도 파업에 참여해 학교가 문을 닫았으며, 보통 때는 믿음이 가는 프랑스의 열차 서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은 가동 중단으로 인해 운행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파리는 환경미화 종사자들이 연대해 파업에 가세한 뒤부터 도시의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다.

필자는 해마다 몇 주 동안 프랑스를 방문하는 것 외에는 미국에서 약 30년을 살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를 잘 알고 있다. 필자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나의 고국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격동(激動)을 미국 사람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정년 연장 계획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느끼는 끓어오르는 국민적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미국이 겪은, 지금 프랑스와 가장 비슷한 상황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 정부가 ‘사회보장 연금(Social Security benefits)’ 지급 연령을 상향하기로 추진할 때일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대로 시행되었다. 1983년 미국 정부는 사회보장 퇴직연금 완전 수혜 연령(full Social Security retirement benefits)을 2000년부터 시작해 22년 동안 65세에서 67세로 점진적으로 상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미국도 노령층은 사회보장 혜택의 변화를 중대하게 받아들이며, 투표를 통해 이를 심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처럼 급격한 저항 운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프랑스의 시위는 미국인들의 공감이나 연대의식을 일깨우지 못한다. 대신 미국인들은 이를 정말 황당하게 받아들인다. 필자의 미국인 친지들은 도대체 프랑스인들은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고 묻는 일이 많다.

프랑스에서의 삶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충분한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근로자가 받는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다. 여기에 대학 교육도 거의 무료이다. 그리고 실업 수당 제도는 실직 근로자가 다음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괜찮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 프랑스 근로자들은 이런 혜택 모두를 누리고 있다. 요컨대, 이런 혜택은 프랑스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의 당연한 권리에 해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퇴직제도 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지난 20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복지 면에서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힘들게 쟁취한 혜택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프랑스 국민의 의지에 미국인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두 나라가 근로자의 정체성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일은 그 사람 자신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는 일로 규정된다는 말이다.

연금개혁 반대시위가 끝나고 나서 지저분해진 프랑스 파리 거리 [사진 = 연합뉴스]
연금개혁 반대시위가 끝나고 나서 지저분해진 프랑스 파리 거리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프랑스 문화에 익숙한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일은 대략 40년 동안 지속되는 유한한 삶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할 시간이 다해도 당신은 여전히 젊고 인생이 베푸는 최고의 것을 즐길 수 있을 만큼 건강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퇴직 후의 시간을 수십 년 동안 여행을 다니거나 손주를 돌보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는 데 보내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이는 프랑스가 맺은 사회계약의 일부이다. 프랑스인들은 가장 생산적인 시기에 열심히 일하면서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세금을 낸다. 그런 다음 모두가 고대하는 ‘Troisieme Age’, 즉 ‘제3의 시기’가 찾아온다. ‘제3의 시기’는 바로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에 늘 자리 잡고, 프랑스인들이 가장 집착하는 개념이다.

‘제1의 시기’는 유아기를 말한다. 그리고 ‘제2의 시기’에 프랑스인들 상당수는 일과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제3의 시기’에는 프랑스인들은 가난과 걱정 없는, 건강한 은퇴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는 미국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은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기꺼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시위는 마크롱의 오만한 통치 스타일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몇 년 전 그는 고압적 통치 방식 때문에 일부에게 로마 신들의 제왕인 ‘주피터(Jupiter)’라는 조롱을 받았다. 비판자들의 눈에는 그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마치 제왕처럼 행동한다고 비쳤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국가 연금 시스템이 붕괴 직전이기 때문에 퇴직연금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이견도 만만치 않다. 출산율 감소와 수명 연장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은 맞지만, 이 부문의 예산은 향후 10년 동안 균형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미래의 퇴직연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덜 가혹한 방법이 있다. 우선, 마크롱 대통령은 부유세 폐지 의사를 철회하면 된다. 또, 대기업에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면을 재고할 수도 있다.

마크롱 행정부가 지난주 국회에서의 투표를 회피하며 정년 연장을 위해 개헌을 꺼내든 것은 그의 제국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한 예이다. 이는 그가 여러 차례 시도한 통치 방식으로, 지난해 말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도 그랬다. 그리고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가 시도하려는 또 다른 강압책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제 일부 파업 노동자에게 강제 명령권을 발동하려 한다. 즉,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빼앗겠다고 위협한다는 말이다.

필자 생각에는 이런 스탠스는 힘의 과시보다는 정치적 무능을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 대통령은 정치를 설득의 예술로 보지 않고, 대신 명령으로 통치하고 있다.

연금 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은 최근 며칠 동안 수백 명의 체포로 이어졌고, 이는 대통령이 정치적 수완이 부족하다는 또 다른 징후이다. 이러는 와중에도 노조는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조합원들에게 직장에 복귀하지 말고 굳건히 싸울 것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속 조직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분명히 프랑스인들은 열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거리로 나설 것이다. 이번 사태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정확히 진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프랑스인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더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 오래 산 영향으로 필자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더 큰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필자는 그래도 분명한 프랑스인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가꿔온 삶의 방식을 옛것으로 만들기에는 그 삶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 있다. 그래도 이제는 미래 프랑스 모습을 협상할 때 프랑스인들은 ‘c'est tout ou rien’(all or nothing : 전부 아니면 전무) 원칙을 포기하고 절충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 미국에서 정년을 70세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 그러니까 노후의 신성함에 대해서 현재 거리에 나서고 있는 나의 프랑스 동포들이 미국 근로자들에게 뭔가 가르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