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에티오피아 왕자의 유해 반환 요구를 거절한 영국...빅토리아 여왕 시절, 18세로 사망
[월드 투데이] 에티오피아 왕자의 유해 반환 요구를 거절한 영국...빅토리아 여왕 시절, 18세로 사망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5.24 05:52
  • 수정 2023.05.24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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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끌려가 서글픈 삶을 살다가 요절한 에티오피아의 알레마예후 왕자의 생전 모습 [사진 = ATI]
영국으로 끌려가 서글픈 삶을 살다가 요절한 에티오피아의 알레마예후 왕자의 생전 모습 [사진 = ATI]

제국주의 시절 영국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영국 땅에서 사망한 에티오피아 왕자의 유해를 반환해달라는 에티오피아의 요구를 영국 왕실이 재차 거절했다고, 23일(현지 시각) BBC가 보도했다.

에티오피아의 알레마예후 왕자는 겨우 7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이송 과정에서 어머니가 사망하자 고아 상태로 영국에 내리게 되었다.

당시 영국을 통치하던 빅토리아 여왕은 알레마예후 왕자의 처지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의 교육을 주선했고, 그가 18세의 나이로 영국 땅에서 사망하자 장례와 매장까지 직접 챙겼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 있는 알레마예후의 가족은 그의 유해가 에티오피아로 다시 보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나라에 묻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유골을 가족과 에티오피아인에게 돌려주기를 희망합니다.”

에티오피아 왕족 후손 중 한 명인 파실 미나스는 BBC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알레마예후 왕자가 영국 땅에 묻힌 것은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버킹엄궁 대변인은 BBC에 보낸 성명에서 알레마예후의 유해를 발굴하면 윈저궁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 지하묘지에 묻힌 다른 유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근처에 있는 상당수 유택(幽宅)들의 안식을 방해하지 않고 알레마예후 왕자만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왕실 당국은 성명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이 성명은, 예배당 당국은 알레마예후 왕자에 얽힌 역사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고인의 존엄성을 존중할 책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왕실은 과거에도 “에티오피아 대표단의 예배당 방문 요청은 수용”한 바가 있다고 밝혔다.

알레마예후 왕자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영국까지 오게 된 것은 제국주의 시절의 악행과 외교 실패의 결과라는 뼈아픈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1862년, 에티오피아 알레마예후 왕자의 아버지인 테오드로스 2세 황제는 그의 제국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영국과의 동맹을 원한다는 서신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화가 난 테오드로스 2세 황제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영국 영사를 비롯한 일부 유럽인들을 인질로 잡았다. 이로 인해 유럽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영국군과 인도군으로 구성된, 약 13,000명 규모의 대규모 군사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당시의 파병 부대에는 대영박물관의 관리도 포함되었다.

1868년 4월 파병대는 에티오피아 북부의 막달라에 있는 테오드로스의 산악 요새를 포위하고 몇 시간 만에 에티오피아의 방어선을 좁혀들어갔다.

결국 에티오피아 황제는 영국군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뒤 영국군은 수천 개의 종교·문화 유적을 약탈했다. 여기에는 금관, 성경 사본, 목걸이 및 드레스 등이 포함되었다.

역사가들은 이때 보물을 나르는 데 수십 마리의 코끼리와 수백 마리의 노새가 동원될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보물들은 오늘날 유럽의 박물관과 도서관, 개인 소장품에 흩어져 있다.

영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알레마예후 왕자와 그의 어머니 티루워크 우베 황후도 데리고 갔다.

알레마예후 왕자의 삶을 다룬 책 『왕자와 약탈(The Prince and the Plunder)』의 저자 앤드류 헤븐즈에 따르면, 당시 영국인들은 그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왕실 가족을 인질로 영국행에 동승시켰다고 한다.

1868년 6월 고아 상태로 영국에 도착한 알레마예후 왕자의 비참한 처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은 영국 남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와이트섬에 있는 여왕의 별장에서 처음 상봉했다.

여왕은 알레마예후에게 재정적 지원과 함께, 그를 에티오피아에서 데려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트리스트람 스피디 선장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스피디 선장과 알레마예후 왕자는 처음에는 와이트섬에서 함께 살다가 이후 스피디 선장은 알레마예후를 인도를 포함한 세계 각지로 데려고 다녔다.

그러다가 알레마예후 왕자에게 정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알레마예후 왕자와 빅토리아 여왕 [사진 = AIT]
알레마예후 왕자와 빅토리아 여왕 [사진 = AIT]

그는 영국 공립학교 럭비에 입학했지만,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나중에 샌드허스트에 있는 왕립 군사대학으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는 괴롭힘을 당했다.

작가 헤븐즈가 인용한 서신에 따르면 왕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망은 재빨리 진압되었다.

“내가 알레마예후 왕자 자신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흑인의 땅에서 끌려가 마치 실향민처럼 영국에 머물렀던 겁니다.”

에티오피아 왕실의 후손인 아베베크 카사는 BBC에 이렇게 말했다.

결국 알레마예후 왕자는 리즈의 한 사택에서 개인 교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폐렴으로 짐작되는 병에 걸렸고, 한때는 자신이 독살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왕자는 10년의 유랑 생활을 거친 뒤 1879년 겨우 1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알레마예후 왕자의 병과 죽음은 언론이 대서특필할 정도로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일기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왕은 “알레마예후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보로 받았는데,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다. 너무 애달프다! 낯선 나라에서 사고무친으로 그렇게 가다니...”라고 적었다.

“그는 온갖 어려움으로 가득 찬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만을 쳐다본다고 여길 정도로 예민했다. ...... 모든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여왕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여왕은 알레마예후의 유해가 윈저궁에 묻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편, 알레마예후 왕자의 유해를 돌려달라는 에티오피아의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당시 에티오피아의 대통령이었던 기르마 월데기오르기스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시신을 돌려달라고 공식 요청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가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가 다른 나라에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 왕실 후손인 아베베크 카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슬픈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들이 그의 유해를 돌려준다면 그가 살아서 집에 돌아온 것처럼 기뻐할 겁니다.”

그녀는 새로 왕위에 오른 찰스 3세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를 희망했다.

영국-에티오피아 관계 전문가인 알룰라 팽크허스트 교수는 “일반적으로 원상회복은 화해를 이루는 기본 과정이며, 과거를 사죄하는 방법으로 사용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해 반환은 “영국이 과거를 다시 생각하는 방법으로 인식될 겁니다. 그것은 반성이며 제국의 과거 악행을 인정하는 과정이 될 겁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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