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미국인을 가장 극심히 괴롭혔던 여섯 번의 인플레이션
[월드 프리즘] 미국인을 가장 극심히 괴롭혔던 여섯 번의 인플레이션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6.09 06:35
  • 수정 2024.06.0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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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수퍼마켓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의 한 수퍼마켓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고공행진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11월 재선 도전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재닛 옐런 美 재무부장관이 “생활비의 높은 상승이 대다수 미국민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달간 이어지고 있는 높은 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과 생활용품 가격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옐런 장관이 인정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옐런 장관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식료품 가격이나 임대료를 보면 그렇게 느낄 것”이라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높으면 젊은이들이 집을 사고 싶어도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히스토리닷컴’은 지난 세기 미국을 괴롭혔던 6번의 주요 인플레이션에 대해 소개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1913년부터 인플레이션을 추적해 미국인들이 식품, 의복, 주택, 에너지, 교통 등으로 지불하는 돈을 측정하는 ‘소비자 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를 차트로 작성해 왔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플레이션은 전후 번영, 심각한 불황, 석유 위기, 글로벌 팬데믹 등의 시기에 험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은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던 6번의 인플레이션이다. 

1. 최악을 기록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인플레이션

기록상 미국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 중과 종전 후에 발생했다. 당시 식품, 의류, 가정용품 등 거의 모든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단일 연도 최대 가격 인상률은 1919년 6월부터 1920년 6월까지의 23.7%였다. 그러나 1916년 말부터 1920년 중반까지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물가는 80% 이상 급등했다.

대부분의 인플레이션들과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플레이션 폭발의 기본 원인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였다.

“전쟁,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전쟁은 많은 자원을 요구합니다.”

노동통계국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브 리드는 이렇게 분석했다. 

“자원이 경제의 비군사 부문이 군사적 용도로 전환되면서 일부 자원 부족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나머지 품목의 가격을 높이게 됩니다.”

1920년에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역 은행들은 이자할인률을 급격하게 인상하여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맞서려고 했다. 이는 연준이 통일된 국가 통화정책을 시행하기 전의 일이었다. 높은 이자율과 냉각된 경제로 인해 미국은 1920년부터 1922년까지 단기이기는 했지만 깊은 경기 침체에 빠졌다.

리드는 당시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자 물가 측면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변동성이 큰 시기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1920년에 물가가 23% 이상 급등한 뒤 1921년에는 15% 이상 하락했다.

2. 전후 수요 급증으로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배급 제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대부분 미국인들의 가장 큰 경제적 우려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었다. 1930년대 초 대공황으로 인해 기록적인 실업률과 경제 침체가 발생했다. 지출할 돈이 거의 없어 소비자 수요가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했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의 기간은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인 10%가 넘는 디플레이션을 기록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물가 상승을 견인했던 바로 그 힘이 제2차 세계대전에도 과도하게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모든 것이 동원된 전면전이었습니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인력과 자원을 전쟁으로 빨아들였습니다. 게다가 전시에는 소비자 행동에도 많은 제한이 따랐습니다. 수많은 상품이 배급제로 공급되었던 것입니다. 사치품뿐만 아니라 기본 필수품까지 배급제로 공급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커피, 우유, 고기, 설탕, 통조림, 타이어, 휘발유 등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공급 저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루즈벨트 행정부는 가격 통제와 수요가 많은 상품에 대한 배급을 실시했다. 이 정책은 전쟁이 한창일 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전후 인플레이션 폭발의 기폭제를 마련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배급과 가격 통제가 철폐되자, 예상대로 억눌린 소비자 수요의 쓰나미가 발생했다.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왔고 수년 동안 성실하게 전쟁 채권을 구매해 온 미국 가정은 저축한 돈을 쓰고 싶어했다.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급증했지만, 일반적으로 경제가 군수품에서 다시 민수품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리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공급이 억눌린 수요를 충족시키기까지 기간인 1946년 후반부터 1947년까지 매우 강한 인플레이션이 유지되었습니다.”

전후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인해 1946년 3월부터 1947년 3월까지 인플레이션율이 20.1%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물가도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저지하지 못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 가구는 냉장고 2천만 대, 자동차 2,140만 대, 스토브 550만 대를 구입했다.

[사진 = ATI]
[사진 = ATI]

3. 인플레이션 불안을 촉발한 한국전쟁

1940년대 말이 되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격렬했던 호황기가 끝나고 경제는 불황의 조짐까지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이 1950년 6월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식량 부족과 배급을 기억하고 있던 미국 소비자들은 가정용품, 자동차, 장기 저장 식품을 사기 위해 앞다퉈 움직였다. 이로 인해 1950년부터 1951년까지 전체 인플레이션은 6.8%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식품 가격만 10%나 급등했다.

새로 설립된 ‘물가안정국(Office of Price Stabilization)’ 하에서 연방정부는 1953년 6.25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격통제와 배급을 재개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 식량 부족과 배급은 제2차 세계대전만큼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억눌린 수요 증가와 인플레이션 폭등은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은 기록상 가장 평온한 인플레이션 기간 중 하나로, 강력한 소비자 수요와 경제 호황이 동반되었다. 해당 기간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1~3%였다.

그러나 리드 이코노미스트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미국 경제의 “황금 시대(golden age)”에 대한 향수가 20세기 전반에 걸쳐 물가 변동이 얼마나 금심했는지에 대한 실제 모습을 왜곡시켰고 지적했다.

“1950년대는 번영과 상대적인 가격 안정의 시기로 평가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시기가 영원할 것으로 여긴 것처럼 보입니다.”

리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거의 나머지 부분은 경제 성과 측면에서 더욱 갈팡질팡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4.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20세기 전반기에는 전쟁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었다면 후반기를 지배한 것은 유가였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흔들렸다. 첫 번째는 1973년과 1974년에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가 제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해 석유 금수 조치를 선언한 때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오일쇼크’는 1979년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석유 생산이 중단되면서 찾아왔다.

유가가 급등하면 휘발유, 난방비, 전기, 심지어 식품 가격도 급등했다. 1차 오일쇼크(1972년 12월~1974년 12월) 동안 전체 인플레이션은 10.5%로 상승했고, 에너지 가격은 19.3%, 식품 가격은 16.1%가 올랐다.

2차 오일쇼크 동안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전체 인플레이션이 1979년 3월부터 1980년 3월 사이에 최고치인 14.8%에 달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록상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도 불황에 빠졌다. 이 암울한 이중고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너무 ‘뜨거운’ 경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물가도 오르는 것입니다.”

리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1979년부터 1981년까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실제로 높은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느린 성장 등 ‘두 측면 모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였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수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수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5. 1989년과 2008년의 석유 및 가스 수요 급증

1983년은 고통스러운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고 수십 년간 꾸준하고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해였다. 두 가지 예외는 1989년과 2008년에 있었는데, 석유와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잠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이라크는 1990년 8월 이웃의 산유국 쿠웨이트를 침공했지만,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몇 달 전부터 유가가 급등했다. 원유 가격은 1989년 배럴당 16.04달러에서 1990년 배럴당 32.88달러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석유와 휘발유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미국의 전체 인플레이션율은 1989년 10월부터 1990년 10월까지 12개월 동안 최고 6.3%까지 치솟았다. 그러다가 걸프전 이후 에너지 가격은 다시 안정되었고 인플레이션도 가라앉았다.

다음의 짧은 인플레이션은 대침체(Great Recession), 즉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에 찾아왔다. 주택 시장의 붕괴와 몇몇 주요 미국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상승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유가는 배럴당 최저치인 35.59달러에서 2008년 배럴당 최고치인 127.77달러로 급등했다.

물가 급등은 글로벌 석유 공급에 대한 전반적인 불확실성과 연동된 중국, 중동, 라틴 아메리카의 기록적인 수요 증가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인들은 주유소에서 갤런당 2달러 미만을 지불하다가 2008년 7월에는 갤런당 최고 4.14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전체 인플레이션은 1991년 이후 처음으로 5% 이상 상승했지만, 어려움을 겪던 미국 경제가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잠시 디플레이션에 빠지면서 2009년에는 경기가 빠르게 후퇴했다.

6. 팬데믹으로 인한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

코로나 19 팬데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 집에 머물도록 강요받았고, 글로벌 공급망이 중단되었으며, 광범위한 소비재 부족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마침내 팬데믹 제한이 완화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공급을 쫓는 소비자의 수요가 분출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 발발을 견인하는 완벽한 재료였다.

그 결과 2021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의 12개월 인플레이션율은 모든 상품에 대해 9.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식료품 가격이 11.4% 상승하여 가장 높은 인상을 기록했다.

1991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인플레이션율이 2.3%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미국인들이 이러한 극적인 물가 상승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은 거의 40년 동안 물가가 비교적 완만하게 변동한 후에 찾아온 겁니다.”

리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이었지만 범위를 확대해보면 팬데믹 인플레이션은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닙니다. 1980년대 초나 1970년대 오일쇼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하면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닙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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