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7) ‘인권’ 악몽에 시달린 박정희.. 그의 심장을 노렸던 김형욱
청와대-백악관 X파일(7) ‘인권’ 악몽에 시달린 박정희.. 그의 심장을 노렸던 김형욱
  • 위키리크스한국
  • 승인 2018.04.25 16:00
  • 수정 2018.04.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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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정권 후반부 내내 ‘인권’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해 인권을 개선하라는 카터 행정부의 끝없는 압력에 종종 식사도 거른채 묘안 찾아내기에 골몰했다. 그렇다고 김대중을 그냥 거리에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국내․외 언론과 리더들에게 자신의 정치가 ‘국방 때문에 인권이 다소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한국적 특성’을 감안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변하려 했다.

1978년 11월 헤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발언 해프닝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11월 11일자 주한미국대사관의 국무부 보고 전문에 따르면, 박정희는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을 통해 브라운 장관이 “진정한 인권의 준수는 경제 발전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기준을 고양시키고 국민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며 자신의 입장을 두둔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모든 신문은 출고 전 꼼꼼히 검열을 받았으며, 특히 해외에까지 배포되는 영자지는 종종 기사 방향까지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정희는 브라운의 말에 대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조용히 있으니 브라운이 또 말하길, 인권을 보는 일부 미국인들의 기준이 다소 잘못됐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 대사가 확인한 결과 브라운 장관의 발언은 왜곡된 것이며, 이에 따라 대사가 최관수 비서관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문을 맺고 있다.

박정희 정권을 괴롭게 했던 인물은 국내 김대중을 비롯한 야권인사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비판활동을 펼쳤던 김형욱이었다.

1976년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터진 후 조직된 미국 하원의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일명 ‘프레이저’ 위원회)가 도널드 매케이 프레이저 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박정희 비판활동을 펼쳐왔던 김형욱은 1977년 6월 22일 미 하원 청문회의 증언대에 섰다. 이 자리에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의 치부를 쏟아냈다.

그가 한 번 입을 열자 국가기밀급 이슈들이 줄줄이 새나왔다.

김대중 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인혁당 사건…. 그의 입을 막으려던 박정희 대통령의 회유 서신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편지까지 공개된다.

프레이저위원회는 이후로도 1년여의 활동을 벌여 미국 의회에 ‘프레이저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보고서에는 박정희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정권을 잡았으며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박정희 정권의 모든 것이 망라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친위조직인 중앙정보부를 통해 정권에 유리하도록 음지와 양지에서 미국사회를 조종하려고 했다는 내용과, 이를 위해 박정희 비자금과 비자금 조성방법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다. 이는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미국 의회 차원에서 실제로 조사 확인된 것이고, 추산된 박정희 비자금은 당시 돈으로 8조 5,000억원, 지금 환율로 환산하면 300조원에 이른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 '돈이 흐르는 곳에서 어디든지 손을 벌렸고 협박과 갈취를 일삼으며 권력유지에 혈안이었다. 그들은 권력을 잃으면 악행과 비리가 밝혀져 처벌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더욱 악랄하게 반대자들을 억압하고 폭력과 협박을 통해서 정권유지를 했었다.”
김형욱은 1979년에는 회고록 집필에 나선다. ‘치정’(정인숙 사건)에서부터 대북공작(‘실미도’)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정권의 모든 치부를 낱낱이 까발릴 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다.

김형욱(사진)은 1963년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에 취임해 6여 년이라는 역대 가장 오랜 재임기록을 세운 인물로, 재임기간이 말해주듯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다.

김형욱은 박정희의 충성스런운 개라고 할 정도로 박 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인민혁명당 사건, 동백림사건, 김영삼 질산테러 사건 등 간천.용공분자 사건에서부터 눈엣가시 같은 야당의원 탄압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손수 처리해주면서 권력의 맛을 즐겼다. 그러나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박정희에게서 내쳐졌다. 10월에 중앙정보부장직에서 쫓겨난 김형욱은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유신헌법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의원직에서도 박탈되고 말았다.

악명 높았던 김형욱은 누군가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싸여있었으며, 자신을 내 친 박정희에 대한 원망을 안고 1973년 미국에 망명했다가 1976년 재미 한인 실업가 박동선이 미국 의회에 로비한 ‘코리아게이트’가 터지자, 미국 청문회에 나가 ‘타도 박정희’에 앞장섰던 것이다.

1979년 10월 7일. 김형욱은 프랑스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파리에서 살해된 뒤 센 강에 버려졌다고도 하고, 파리에서 김형욱을 납치해 마취시킨 뒤 산 채로 양계장 분쇄기에 넣어 죽였다는 설도 있다.

산채로 짐짝처럼 포장돼 대한항공(KAL)기편으로 서울로 탁송됐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로 끌고온 후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가 쏴 처형됐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잘못했다고 엎드려 비는 김형욱을 자동차에 태운 채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었다는 설도 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형욱

을 박 대통령 앞에 무릎 꿇렸고, 결국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

 

 

 

 

죽음을 둘러싸고 역사의 미스테리 남아 있는 김형욱 [사진=연합뉴스]

 


■ SUBJECT: PRESIDENT PARK'S COMMENTS ON HUMAN RIGHTS

 

 

 

 

 


  1. ENGLISH LANGUAGE PRESS NOVEMBER 11 QUOTES PRESIENT PARK IN REMARKS TO SAEMAUL LEADERS PREVIOUS DAY. IN STATEMENT DESIGNED TO BLUNT OPPOSITION CIRITICISM OF BUSINESS LEADERS, PARK DEFENDED HIS GOVERNMENT'S RECORD ON INCOME DISTRIBUTION. IN DOING THIS HE MADE REFERENCE TO RECENT VISIT OF SECRETARY BROWN. ACCORDING TO PARK, SECRETARY HAD MADE FOLLOWING COMMENTS TO HIM: "THE TRUE OBSERVANCE OF HUMAN RIGHTS LIES IN ELEVATING THE LIVING STANDARD OF THE PEOPLE AND PROMOTING THE NATIONAL WELFARE THROUGH THE DEVELOPMENT OF THE ECONOMY." PARK CONTINUED THAT "IT WAS WHAT I WANTED TO SAY. AS I REMAINED SILENT, BROWN FURTHER SAID THAT SOME AMERICANS' STANDARDS OF VIEWING HUMAN RIGHTS WERE SOMEWHAT WRONG".

     


  2. KOREA HERALD ALSO CARRIES ORIENT PRESS STORY FROM WASHINGTON QUOTING EA SPOKESMAN CANNON THAT "PRESIDENT CARTER EXPRESSED HIS HOPE IN HIS PERSONAL LETTER TO PRESIDENT PARK CHUNG HEE THAT HE COULD HAVE A SUMMIT (WITH PRESIDENT PARK) IN THE COMING YEAR." ARTICLE ADDS THAT CANNON SAID SUMMIT WOULD PROCEED "ON ITS OWN MERITS" AND THAT THE U.S. "WOULD NOT APPROACH THE SUMMIT IN TERMS OF INTERNAL ISSUES."


  3. COMMENT: OF MAJOR INTEREST HERE IS FACT THAT PARK FELT NEED TO COMMENT, PUBLICLY, ON HUMAN RIGHTS AND IN THE PROCESS LINKED IT TO THE BROWN VISIT. WHILE HE DISTORTED COMMENTS MADE TO HIM BY THE SECRETARY (REFTEL), IN PAST HUMAN RIGHTS HAVE BEEN TREATED AS AN INTERNAL MATTER AND LINKAGE TO FOREIGN OBSERVERS HAS BEEN AVOIDED.



  4.  

 

 

 

 

 

 

CLEARLY THE PRESIDENT IS FEELING SOME PRESSURE AND IS RESPONDING WITH A DEFENSE RATHER THAN AN ATTACK.

 

 

 

 

 

 


  1. AMBASSADOR INTENDS THIS EVENING TO RAISE MISREPRESENTATION OF SECRETARY'S REMARKS WITH SENIOR PROTOCOL SECRETARY CHOI KWAN SOO, WHO INTERPRETTED FOR PRESIDENT/ BROWN CONVERSATIONS. GLEYSTEEN


  2.  


■ 인권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견해 [번역]

 

 

 

 

 

 


  1. 11월 11일자 영자신문은 박 대통령이 전날 새마을 지도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기업가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하려고 계획된 진술에서 박정희는 소득분배에 관한 정부의 전력을 옹호했다.


  2.  


그러면서 그는 최근 브라운 장관의 방한에 대해 언급했다. 박정희의 말에 따르면 브라운 장관이 “진정한 인권의 준수는 경제 발전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기준을 고양시키고 국민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조용히 있으니 브라운이 또 말하길, 인권을 보는 일부 미국인들의 기준이 다소 잘못됐다고 했다”며 박정희는 말을 이어갔다.

 

 

 

 

 

 


  1. 또한 코리아 헤럴드는 “카터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에 내년에 정상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전했다”고 하는 백악관 대변인 캐논의 말을 인용하며 워싱턴 소식에 기사의 방향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사는 캐논이 “정상회담은 ‘그 진가에 맞게’ 진행될 거라고 말했다고 하고, 또 미국이 내부 문제로 회담에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2. 의견: 이곳의 주요 관심사는 박정희가 인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과정에는 브라운의 방한이 연관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브라운 장관이 한 말을 왜곡하는 한편, 인권을 내부 문제로 치부해왔고, 외국의 주시자들과 연루되는 것을 피해왔다. 확실히 박 대통령은 압박을 느끼고 있으며, 공격보다는 방어로 대응하고 있다.


  3. 대사는 브라운 장관의 말을 와전한 것에 대해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최관수 의전수석비서관에게 오늘 저녁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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