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0) 주한미군 철수 시한폭탄... 박정희 대통령, 홀브루크 차관보에게 “한미정상회담 서둘러달라”
청와대-백악관 X파일(10) 주한미군 철수 시한폭탄... 박정희 대통령, 홀브루크 차관보에게 “한미정상회담 서둘러달라”
  • 위키리크스한국
  • 승인 2018.05.13 06:15
  • 수정 2018.05.1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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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주한미군 철수문제’라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을 안고 79년 1월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킨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나는게 시급했다.

다행히 2년여 동안 한-미 정권의 발목을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78년말 고비를 넘긴데다, 미국이 요구해 온 재야 지도자 김대중도 가석방 형태로 방면되면서 정상회담을 향한 두 개의 큰 걸림돌은 일단 해소됐다.

카터와 박정희는 79년 2~3월 서신을 교환하며 서서히 정상회담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카터는 박정희의 답장을 받은 뒤 나흘 뒤인 3월 17일 홀브루크 국무부 차관보를 청와대로 보내 박 대통령의 여러 생각들을 들어오도록 했다.

홀브루크 차관보는 박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미국은 지난 해 말 이후 한미 관계를 보여주는 원활한 추세가 앞으로 몇 달 간 더욱 강화될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홀브루크는 정상회담 일정과 관련,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오는 6월 29일 서방 7개국 도쿄 정상회담 이후 서울이 가장 편한 시간과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카터 대통령이 여의치 않다면, 본인이 워싱턴을 방문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박정희는 미국이 북한의 군사력을 높이 평가하고, 소련이 해군력을 확장하는 것을 이유로 들며, 현재 동아시아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한국의 긴장이 크게 감소될 때까지 더 이상의 미군 철수는 중단해주기를 촉구했다.

다음 내용은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리처드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의 1979년 3월 19일자 국무부 보고전문을 토대로 박대통령-홀브루크 차관보 대화를 재구성해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홀브루크 차관보의 대화> 1979년 3월 17일 청와대

▶ (홀브루크) 솔직히 한미 관계는 카터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 2년 동안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말을 고비로 개선되기 시작해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리아스캔들로 인한 중대한 문제들이 상당부분 극복됐고,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지금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한국 내 인권문제는 오로지 한국 정부가 결정해야 될 문제이지만, 그 결정이 미국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몇 가지 중요한 결정들이 이뤄져야 될 것이고, 미국은 그 결과로 한미 관계가 더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선 유감스럽게도 정확한 언급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카터 대통령과 국무부 장관은 중동 사태에 전념해왔고, 곧 정상회담 문제에 관심을 돌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 대통령님께서 갖고 있는 어떠한 생각도 기꺼이 전달하겠습니다. 카터 대통령께서 각하에게 이미 통지했듯이, 미국의 군사 정책이 한국에 영향을 줌에 따라 이에 대해 중대한 검토에 들어갔고, 박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 (박 대통령) 먼 길 찾아와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서울 외 지역을 여행하면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겁니다. 종종 한국을 찾아 곳곳을 여행하시기 권유드립니다. 최근까지 여러 사태들이 한미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코리아스캔들은 정말 유감스럽지만, 우호와 협력의 기반 아래 문제가 해결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일전에 팀스피릿 훈련을 참관했었는데, 지속적인 외교적 정치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방법으로 한미가 연합하는 좋은 사례로 여기고 있습니다.

▶ (홀브루크) 남북한 대화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기량에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지속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하에 한국 정부는 자신 있게 대처해나가시는 것 같고, 또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박 대통령) 남북대화 면에서 아직까지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고, 이른 성과를 기대할 수도 없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남북 간의 대화 추진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한국은 의미있는 논의를 끈기있게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정책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북한이 접촉을 고수하려는 이유는 국제적인 여론의 압박과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특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접촉을 지속하면 주한 미군 철수가 빨리 이뤄진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한미정상회담’과 관련, 브라운 장관으로부터 올해 정상회담을 갖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자 하는 카터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관심사가 국제적이기 때문에, 나보다는 카터 대통령의 편의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올 여름 도쿄 경제 정상회담에 카터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우, 서울도 방문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미국 측의 편의에 따라 기꺼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 있을 겁니다.

▶ (홀브루크) 미군 철수문제에 대해서는 카터 대통령께서도 생각이 많으십니다. 이미 철군은 발표했지만,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 고민하고 계십니다.

♣ (박 대통령)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더 이상의 미군 철수가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원래의 결정을 통보받았고 극력 반대할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보완책을 수반한 점진적인 철수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있은 후로, 현재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이 이전에 추정한 것보다 더 커졌습니다. 소련이 동아시아에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런 이유로 한국 주변의 긴장이 크게 완화될 때까지 한국에서 미 군사력을 감축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실을 면밀히 따져볼 때까지 추가 철수를 유보한 카터 대통령의 결정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홀브루크) 현재의 군사력이 한국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최상이라는 각하의 말씀을 꼭 보고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을 것이고,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일을 진행해 나아갈 것입니다. 한국의 안정과 안보는 미국 정책의 중심이 되는 사안이고, 미국은 또한 한국에 도덕적인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인도차이나문제는 아래 원문 번역 내용 참고)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

 

 

 

 

 

 



■ ASSISTANT SECRETARY HOLBROOKE'S CONVERSATION - WITH PRESIDENT PARK

BEGIN SUMMARY. IN MARCH 17 MEETING WITH PRESIDENT PARK, ASSISTANT SECRETARY HOLBROOKE STRESSED OUR HOPE THAT NEXT FEW MONTHS WOULD REINFORCE HEALTHY TREND WHICH HAS MARKED US/ROK BILATERAL RELATIONS SINCE LATE LAST YEAR. HE SAID HE HAD NO INSTRUCTION ON SETTING A TIME AND PLACE OF SUMMIT MEETING THOUGH WE WOULD SOON HAVE TO TURN TO ISSUE. PARK COMMENTED THAT HE HAD ASSUMED MOST CONVENIENT TIME AND PLACE WOULD BE AFTER TOKYO SUMMIT IN SEOUL. IF THIS WERE NOT CONVENIENT FOR PRESIDENT CARTER, HE WOULD BE QUITE PREPARED TO VISIT WASHINGTON. FOLLOWING UP HIS BLUNT CONVERSATION ON HUMAN RIGHTS WITH KCIA DIRECTOR, HOLBROOKE EMPHASIZED THAT EVEN THOUGH THESE DECISIONS WERE ROK INTERNAL MATTER THEY WOULD NEVERTHELESS AFFECT OUR FUTURE RELATIONSHIP. PARK EXPLAINED THAT HE HAD GONE ALONG WITH OUR TROOP WITHDRAWAL DECISION EVEN THOUGH HE DID NOT AGREE WITH IT. CITING OUR HIGHER ESTIMATES OF NORTH KOREAN MILITARY STRENGTH AND EXPANDING SOVIET NAVAL POWER, HE SAID SITUATION IN EAST ASIA HAD NOW CHANGED, AND HE URGED HALT TO FURTHER WITHDRAWALS UNTIL THERE HAD BEEN A SUBSTANTIAL REDUCTION IN KOREAN TENSIONS. DELAY WOULD BE IN INTEREST OF ROK AND EAST ASIA GENERALLY. RE NORTH/ SOUTH KOREAN TALKS, PARK STRESSED THAT HE WAS DETERMINED TO PERSIST WITH CONTACTS BUT HAD REACHED PRELIMINARY CONCLUSION THAT PYONGYANG HAD NOT CHANGED ITS ATTITUDE AND POLICIES WHICH FORECLOSED PROSPECT OF EARLY SUBSTANTIVE PROGRESS.

AT PARK'S INITIATIVE, MUCH OF DISCUSSION CENTERED ON INDOCHINA. HOLBROOKE EXPLAINED OUR POLICY OF NON-INVOLVEMENT IN INTERNECINE WARS AMONG COMMUNISTS, HIGH LEVEL EFFORTS TO PREVENT WIDENING OF SUCH WARS, SPECIAL CONCERN ABOUT THAILAND, AND DECISION TO PROCEED WITH US/PRC NORMALIZATION BECAUSE MORE COOPERATIVE US/PRC RELATIONSHIPS WERE OF FUNDAMENTAL IMPORTANCE TO U.S. AND REST OF WORLD. COMMUNISTS FIGHTING COMMUNISTS WAS HISTORIC EVENT AND OPPORTUNITY WHICH WE SHOULD SEIZE TO STRENGTHEN NON-COMMUNIST COUNTRIES OF EAST ASIA. HOLBROOKE WAS RELUCTANT TO DRAW DEFINITIVE CONCLUSIONS ABOUT "WHO WON THE WAR", BUT SPECULATED NEITHER SRV OR PRC HAD WON. PARK COMMENTED THAT IF OUTCOME WERE "A TIE", SUPERIOR POWER WOULD HAVE SUFFERED MOST. SINO/VIETNAMESE STRUGGLE REMINDED HIM OF ADULT/ADOLESCENT STRUGGLE WITH NEITHER BEING ABLE TO EFFECT CLEAR DECISION. HE AGREED WITH HOLBROOKE'S SUGGESTION THAT ANALOGY COULD ALSO BE APPLIED TO VIETNAM'S FAILURE TO PUT DOWN CAMBODIANS. PARK CONCLUDED IT WOULD BE BEST FOR NON-COMMUNIST WORLD IF SOVIETS AND CHINESE CONFRONTED EACH OTHER WITH ROUGHLY EQUAL STRENGTH. WE COULD NOT TOLERATE SOVIETS USING VIETNAM AS SPRINGBOARD FOR EXPANSION; NEITHER DID WE WANT CHINESE DOMINATION. CONTINUED FRICTION BETWEEN TWO WAS "NOT TOO BAD" FOR REST OF WORLD. END SUMMARY.

ASSISTANT SECRETARY HOLBROOKE MET MARCH 17 WITH PRESIDENT PARK. PARK WAS IN GOOD FORM DURING THE EIGHTYMINUTE SESSION DESPITE THE RESIDUAL EFFECTS OF SEVERE COLD. HOLBROOKE HAS NOT CLEARED THE FOLLOWING RECORD.

AFTER COMPLIMENTING THE PRESIDENT ON WHAT HE HAD SEEN DURING HIS VISIT AND MENTIONING THE VARIOUS SUBJECTS HE HAD ALREADY DISCUSSED WITH OTHER OFFICIALS, HOLBROOKE SAID THAT US/ROK RELATIONS WERE ON A BETTER BASIS NOW RHAN AT ANY TIME DURING THE PAST TWO YEARS. WE HAD SURMOUNTED SERIOUS PROBLEMS OVER THE CONGRESSIONAL SCANDALS; OUR COMMITMENT TO ROK SECURITY WAS NOW UNQUESTIONED; AND WE WERE GRATIFIED AT THE PROGRESS THAT HAD BEEN MADE LAST YEAR IN CERTAIN INTERNAL MATTERS (REFERRING TO AN EXTENDED, BLUNT DISCUSSION OF HUMAN RIGHTS WITH THE KCIA DIRECTOR A FEW HOURS PREVIOUSLY). HOLBROOKE EMPHASIZED THAT EVEN THOUGH THESE INTERNAL MATTERS WERE SOLELY FOR THE ROKG TO DECIDE, THE DECISIONS WOULD NEVERTHELESS AFFECT THE U.S. IN THE NEXT FEW MONTHS SOME IMPORTANT DECISIONS WOULD HAVE TO BE TAKEN AND WE WISHED THE OUTCOME OF THIS PERIOD WOULD BE A STRENGTHENING OF THE US/ROK RELATIONSHIP. HOLBROOKE REGRETTED THAT HE DID NOT HAVE INSTRUCTIONS CONCERNING THE TIME OR PLACE OF A SUMMIT MEETING. THE PRESIDENT AND SECRETARY HAD BEEN HEAVILY OCCUPIED WITH MIDDLE EAST EVENTS. THEY WOULD SOON BE TURNING TO SUMMIT ISSUE, AND HE WOULD BE GLAD TO CONVEY ANY VIEWS PARK MIGHT HAVE. HOLBROOKE ALSO NOTED THAT WE WERE, AS PRESIDENT CARTER HAD INFORMED PARK, ENGAGED IN AN IMPORTANT REVIEW OF OUR MILITARY POLICIES AS THEY AFFECTED KOREA AND WOULD APPRECIATE THE PRESIDENT'S VIEWS.
PARK EXPRESSED APPRECIATION FOR HOLBROOKE'S VISIT, POINTING OUT THAT TRIPS OUTSIDE SEOUL DEEPENED ONE'S UNDERSTANDING OF KOREA. HE ACKNOWLEDGED THAT VARIOUS EVENTS HAD CREATED UNEASINESS IN THE US/ROK RELATIONSHIP. THE SCANDALS WERE EXTREMELY REGRETTABLE, BUT HE WAS PLEASED THAT PROBLEMS HAD BEEN RESOLVED ON A BASIS OF FRIENDSHIP AND COOPERATION. THE "TEAM SPIRIT" EXERCISE, WHICH HE HAD VISITED THE OTHER DAY, WAS AN EXAMPLE OF THE U.S. AND ROK ABILITY TO COMBINE IN UNIQUE WAYS DESPITE SOME CONTINUING DIPLOMATIC AND POLITICAL PROBLEMS.

NORTH/SOUTH KOREAN TALKS. HOLBROOKE SAID HE HAD BEEN IMPRESSED WITH THE ROKG'S SKILL IN DEALING WITH THE NORTH/ SOUTH DIALOGUE. ROKG POSITIONS REFLECTED STRENGTH AND CONFIDENCE AT NO RISK TO THE SOUTH'S BASIC POSITIONS OR ITS INTEGRITY, WHICH WE CONTINUED FULLY TO SUPPORT. PARK EXPLAINED THAT THERE HAD BEEN NO MEANINGFUL PROGRESS SO FAR IN THE TALKS AND THAT HE DID NOT EXPECT ANY EARLY SUCCESS. IT WAS NEVERTHELESS MOST IMPORTANT TO GET A NORTH/SOUTH DIALOGUE GOING, AND SEOUL WOULD PRESS PATIENTLY FOR MEANINGFUL DISCUSSIONS. THE BASIC NORTH KOREAN ATTITUDE AND POLICY TOWARD THE SOUTH HAD NOT CHANGED; RATHER THE NORTH KOREANS WERE PERSISTING WITH CONTACTS BECAUSE OF: (A) THE PRESSURE OF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B) THE POSSIBLE EXERCISE OF CHINESE INFLUENCE AND, MOST IMPORTANT, (C) NORTH KOREAN BELIEF THAT CONTINUING CONTACTS WOULD HELP EXPEDITE U.S. TROOP WITHDRAWALS FROM SOUTH KOREA.

US/ROK SUMMIT. THE PRESIDENT COMMENTED THAT SECRETARY BROWN HAD BROUGHT HIM A MESSAGE FROM PRESIDENT CARTER LEADING TO AN AGREEMENT IN PRINCIPLE TO A SUMMIT MEETING THIS YEAR. AS HE HAD ALREADY TOLD US, HE THOUGHT THE DECISION ON TIMING AND PLACE SHOULD CONVENIENCE PRESIDENT CARTER RATHER THAN HIMSELF BECAUSE CARTER HAD GLOBAL CONCERNS. ORIGINALLY HE HAD ASSUMED THAT THE OCCASION OF THE PRESIDENT'S VISIT TO THE ECONOMIC SUMMIT IN TOKYO THIS SUMMER MIGHT PROVIDE OPPORTUNITY FOR A CARTER VISIT TO SEOUL. HOWEVER, IF THERE WERE ANY CHANGE IN CIRCUMSTANCES, HE WAS QUITE READY TO VISIT THE U.S. AT OUR CONVENIENCE.

TROOP WITHDRAWAL. THE PRESIDENT REAFFIRMED THAT THE ROKG STRONGLY PREFERRED NO FURTHER U.S. TROOP WITHDRAWALS AT THIS TIME. HE SAID THAT THE ROKG HAD BEEN INFORMED OF THE ORIGINAL DECISION AND HAD NOT BEEN IN A POSITION TO OPPOSE. HE HAD THEREFORE AGREED IN PRINCIPLE TO THE CONCEPT OF A GRADUAL WITHDRAWAL ACCOMPANIED BY COMPENSATORY MEASURES. SINCE THAT TIME THERE HAD BEEN MANY CHANGES IN AND AROUND THE KOREAN PENINSULA. THE U.S. ITSELF NOW ESTIMATED GREATER NORTH KOREAN MILITARY STRENGTH THAN ORIGINALLY ASSUMED AND THE SOVIETS WERE INCREASING THEIR NAVAL POWER IN EAST ASIA. FOR THESE AND OTHER REASONS HE THOUGHT IT UNWISE TO REDUCE U.S. MILITARY POWER IN KOREA UNTIL TENSIONS IN AND AROUND KOREA SUBSTANTIALLY EASED, AND HE WAS PLEASED WITH PRESIDENT CARTER'S DECISION TO HOLD FURTHER WITHDRAWALS IN ABEYANCE UNTIL WE HAD WEIGHED ALL FACTORS VERY CAREFULLY. PARK ADDED THAT HE UNDERSTOOD THE U.S. MIGHT NOT ABROGATE ENTIRELY THE POLICY OF TROOP WITHDRAWALS, BUT HE WAS PERSONALLY CONVINCED THAT THE CURRENT FORCE LEVELS WERE THE BEST FOR THE PEACE AND STABILITY OF THE ROK AND EAST ASIA AS A WHOLE. PROMISING TO REPORT PARK'S VIEWS, HOLBROOKE REPLIED THAT WE WOULD REMAIN IN CLOSE CONSULTATION WITH THE ROKG AND WOULD PROCEED CAREFULLY AND RESPONSIBLY. ROK STABILITY AND SECURITY WERE A CENTRAL CONCERN OF OUR POLICY AND WE ALSO HAD A DEEP MORAL COMMITMENT TO KOREA.

INDOCHINA. AFTER DISCUSSING THE CURRENT STATE OF PLAY ALONG THE SINO-VIETNAMESE BORDER AND THE POSSIBILITY THAT CHINA WOULD STIMULATE TROUBLE IN LAOS TO PRESSURE THE VIETNAMESE, HOLBROOKE SAID IT WAS OUR POLICY NOT TO GET DIRECTLY INVOLVED IN WARS BETWEEN THE COMMUNIST COUNTRIES. BUT BECAUSE OF THE DANGER OF SUCH WARS WIDENING, WE HAD AND WOULD CONTINUE TO USE OUR INFLUENCE WITH THE SOVIETS, CHINESE AND OTHERS TO HEAD OFF THIS DANGER. WE WERE STAYING IN CLOSE TOUCH WITH KRIANGSAK IN AN EFFORT TO PREVENT THAILAND'S BEING SWAMPED BY THE PROBLEMS OF INDOCHINA. WE HAD OPPOSED THE PRC INVASION OF VIETNAM AS WELL AS THE VIETNAMESE INVASION OF CAMBODIA AND HAD TOLD THE CHINESE BOTH PUBLICLY AND PRIVATELY OF OUR OPPOSITION. NEVERTHELESS, WE PROCEEDED WITH FULL NORMALIZATION OF OUR RELATIONS WITH THE PRC WHICH IS AN ACCOMPLISHED FACT. WE DID SO IN THE FIRM BELIEF THAT A MORE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CHINA WAS IN OUR INTEREST AND THAT OF THE REST OF THE WORLD.

HOLBROOKE WENT ON TO SAY THAT THE MOST REMARKABLE THING TODAY WAS THAT THE NON-COMMUNIST NATIONS IN EAST ASIA HAD FEWER PROBLEMS AND FRICTIONS THAN AT ANY RECENT TIME WHILE THE COMMUNIST COUNTRIES WERE FIGHTING AND STRUGGLING FIERCELY WITH EACH OTHER. THIS SITUATION MIGHT NOT LAST INDEFINITELY AND WE SHOULD USE THE TIME EFFECTIVELY TO STRENGTHEN THE ABILITY OF NON-COMMUNIST NATIONS TO COPE WITH FUTURE THREATS FROM THE COMMUNISTS. PARK AGREED EMPHATICALLY. ASKED ABOUT THE IMPACT OF RECENT EVENTS IN NORTH KOREA, HE SAID THERE HAD BEEN NO REPORTING ON THE NORTH KOREAN PRESS ON THE VIETNAM/CHINA WAR, REVEALING PYONGYANG'S EMBARRASSED POSITION. THE NORTH KOREANS HAD BEEN TOLD THAT ONLY CAPITALIST COUNTRIES WOULD ATTACK OTHERS, BUT NOW THEY WERE FACED WITH THE SCENE OF SOCIALIST BROTHERS FIGHTING EACH OTHER. BASICALLY, PARK CONCLUDED THAT THE NORTH KOREANS COULD NOT SIDE ENTIRELY WITH EITHER THE CHINESE OR THE SOVIETS ON INDOCHINA OR ANY OTHER ISSUE. HOLBROOKE REMARKED THAT THE VIETNAMESE WAR WAS AN HISTORIC EVENT: THE COMMUNIST WORLD WOULD NEVER BE THE SAME AGAIN IN THAT NATIONALISM AND RACIAL HATREDS HAD OVERCOME COMMUNITS DOCTRINE.

THE PRESIDENT ASKED HOW WE RATED THE OUTCOME OF THE CHINESE PUNISHMENT. HOLBROOKE SAID IT WAS HARD TO TELL WHO WON A GAME PLAYED IN A STADIUM WITH THE LIGHTS OUT. HE WAS INCLINED TO BELIEVE THAT NEITHER SIDE HAD WON, BUT HE PREFERRED TO DEFER A FORMAL ANSWER UNTIL WE HAD THE BENEFIT OF MORE INFORMATION. PARK SUGGESTED THAT IF THE WAR HAD BEEN "A TIE" BETWEEN THE PRC AND SRV THEN THE STRONGER POWER NECESSARILY SUFFERED MORE BY COMPARISON. HOLBROOKE ASKED IF HE MEANT THE SRV HAD GAINED BY NOT LOSING. PARK REPLIED THAT CHINA WOULD HAVE WON IF VIETNAM HAD SHOWN NO RESISTANCE, WHEREAS VIETNAM WOULD HAVE WON IF IT HAD BEEN ABLE TO ORDER CHINA OUT. NEITHER HAD BEEN THE CASE, AND THE SITUATION WAS RATHER LIKE THAT OF AN ADULT TRYING TO DEAL WITH AN ADOLESCENT. HOLBROOKE NOTED THE SAME ANALOGY MIGHT BE APPLIED TO THE VIETNAMESE INABILITY TO PUT DOWN THE ADOLESCENT CAMBODIANS, RESULTING IN A VERY CONFUSING SITUATION THROUGHOUT THE AREA.

PARK SUMMED UP HIS VIEW BY STATING THAT HE DID NOT THINK WE COULD TOLERATE THE SOVIETS USING VIETNAM AS A SPRINGBOARD TO EXPAND THEIR INFLUENCE IN EAST ASIA, BUT BY THE SAME TOKEN WE DID NOT WANT CHINA'S DOMINATION. CONTINUED FRICTION BETWEEN THE TWO WAS NOT "TOO BAD". THE FREE WORLD MIGHT NOT HAVE MUCH TO LOSE SO LONG AS THE SOVIETS AND THE CHINESE CONFRONTED EACH OTHER WITH ROUGHLY EQUAL STRENGTH.

REFUGEES. HOLBROOKE EMPHASIZED OUR PARTICULAR CONCERN OVER THE REFUGEE PROBLEM WHICH THREATENED TO OVERWHELM THE THAIS AND MALAYSIANS. HE SAID WE HAD BEGUN A NEW POLICY TO INCREASE FURTHER OUR INTAKE OF REFUGEES AND WE WERE IN ADDITION CONTRIBUTING ALMOST ONE-THIRD OF THE UNHCR'S BUDGET. WHILE NOT MANY REFUGEES WERE LIKELY TO COME TO JAPAN OR KOREA, BOTH COUNTRIES WERE IN A POSITION TO HELP FINANCIALLY. IF THEY DID, IT WOULD BE GREATLY APPRECIATED. REFUGEES WERE AN ISSUE OF CONCERN AT THE HIGHEST LEVEL WITHIN THE USG.
GLEYSTEEN

■ 홀브루크 차관보와 박정희 대통령의 대화

요약: 3월 17일, 홀브루크 차관보는 박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미국은 지난 해 말 이후 한미 관계를 보여주는 원활한 추세가 앞으로 몇 달 간 더욱 강화될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홀브루크는 우리가 양국의 문제로 곧 돌아와야 하지만,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도쿄 정상회담 이후 서울이 가장 편한 시간과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카터 대통령이 여의치 않다면, 본인이 워싱턴을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인권에 대한 박정희와 중앙정보부 부장과의 직설적인 대화가 뒤를 이었고, 홀브루크는 한국 정부의 결정들이 한국 내의 문제라고 해도, 미국과의 미래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희는 주한 미군 철수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에 따랐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군사력을 높이 평가하고, 소련이 해군력을 확장하는 것을 이유로 들며, 현재 동아시아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한국의 긴장이 크게 감소될 때까지 더 이상의 미군 철수는 중단해주기를 촉구했다. 그는 미군 철수의 연기는 한국과 동아시아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남북한 대화와 관련해서 박정희는 끊임없이 접촉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빠르고 실질적인 진전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평양의 태도와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주도로 인도차이나 문제에 많은 논의가 집중됐다. 홀브루크는 미국의 정책 상,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내전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전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히 태국을 염두에 두고, 고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미국과 중국의 보다 협력적인 관계가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양국의 정상화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산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동아시아의 비공산주의 국가들을 강하게 만들 기회라고 했다. 홀브루크는 이 전쟁에서 누가 승자인지 최종 결론을 끌어내기를 주저했지만, 베트남도 중국도 아닐 거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결과가 무승부라면, 힘이 우세한 쪽이 타격이 클 거라고 말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싸움은 박정희에게 확실한 결과를 낼 수 없는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비유가 캄보디아인들을 굴복시키려던 베트남의 실패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홀브루크의 말에 동의했다. 박정희는 소련과 중국이 서로 대등한 힘으로 맞붙는다면 비공산주의 세계에 더 없이 좋을 것이며, 미국은 소련이 베트남을 세력 확장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고, 중국의 지배 또한 원치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두 국가 간의 지속적인 마찰은 다른 세계들에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 요약 끝

3월 17일 홀브루크 차관보가 박 대통령과 만났다. 박 대통령은 혹한 뒤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80분 간의 회담 동안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다음의 기록은 홀브루크에게 승인된 것은 아니다.

홀브루크는 박 대통령에게 방한 중 본 것에 대해 찬사의 말을 하고, 각료들과 이미 논의했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을 한 뒤, 지난 2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한미 관계가 더 나은 기반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의회 스캔들로 인한 중대한 문제들을 극복해왔고,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지금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특정한 국제적 문제(몇 시간 전 인권에 대해 중앙정보부 부장과 가진 거침없는 연장 토론 참조)에 있어 작년에 이뤄진 진전에 만족했다고 했다. 홀브루크는 이 국내 문제는 오로지 한국 정부가 결정해야 될 문제이지만, 그 결정이 미국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몇 가지 중요한 결정들이 이뤄져야 될 것이고, 미국은 그 결과로 한미 관계가 더 강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홀브루크는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에 대해 정확한 언급을 할 수 없음을 유감스러워 했다. 미 대통령과 국무부 장관은 중동 사태에 전념해왔고, 곧 정상회담 문제에 관심을 돌릴 것이며,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어떠한 생각도 기꺼이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홀브루크는 또한, 카터 대통령이 박정희에게 통지했듯, 미국의 군사 정책이 한국에 영향을 줌에 따라 이에 대해 중대한 검토에 들어갔고, 박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서울 외 지역을 여행하면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고 말하며, 홀브루크의 방문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여러 사태들이 한미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스캔들은 정말 유감스럽지만, 그는 우호와 협력의 기반 아래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고 했다. 일전에 그가 참관했던 팀스피릿 훈련은, 지속적인 외교적 정치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방법으로 한미가 연합하는 한 예라고 했다.

남북한 대화 - 홀브루크는 남북한 대화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기량에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지위는, 미국의 지속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하에 든든한 남쪽의 기본 입장이나 그 완전무결함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반영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 간의 대화에 지금까지 의미있는 진전이 없었고, 이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남북 간의 대화 추진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한국은 의미있는 논의를 끈기있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남한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정책은 변하지 않았으며, 북한이 접촉을 고수하려는 이유는 국제적인 여론의 압박과 중국의 영향력 아래의 활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접촉을 지속하면 주한 미군 철수가 빨리 이뤄진다는 북한의 믿음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 박 대통령은 브라운 장관으로부터 올해 정상회담을 갖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자 하는 카터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이미 우리에게 말했듯, 그는 카터의 관심사가 국제적이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카터 대통령의 편의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야 된다고 여겼다. 그는 올 여름 도쿄 경제 정상회담에 카터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우, 서울도 방문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미국측의 편의에 따라 박 대통령이 기꺼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군 철수 - 박 대통령은 이번에 더 이상의 미군 철수가 없기를 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원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켰다. 그는 한국 정부가 원래의 결정을 통보받았고 반대할 입장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보완책을 수반한 점진적인 철수에 동의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있은 후로, 현재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이 이전에 추정한 것보다 더 커졌으며, 소련이 동아시아에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런 이유로 한국 주변의 긴장이 크게 완화될 때까지 한국에서 미 군사력을 감축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면밀히 따져볼 때까지 추가 철수를 유보한 카터 대통령의 결정을 반가워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이 미군 철수 정책을 완전히 철회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이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군사력이 한국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최상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홀브루크는 박 대통령의 의견을 보고하기로 약속하며, 미국이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을 것이고, 조심스럽고 책임감있게 일을 진행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안정과 안보는 미국 정책의 중심이 되는 사안이고, 미국은 또한 한국에 도덕적인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인도차이나 -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을 따라 벌어지는 현 상황과 중국이 라오스에서 베트남을 압박하기 위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후, 홀브루크는 공산국가들끼리의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전쟁이 확산될 위험 때문에, 이 위험을 막기 위해 소련과 중국과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태국이 인도차이나의 사태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크리앙삭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의 베트남 침략과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을 반대해왔고, 공개적으로 또 은밀하게 중국에 반대의 뜻을 말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 완전한 정상화를 추진했고, 이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보다 협조적인 관계가 미국과 나머지 세계에 득이 될 거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미국이 그렇게 했다고 했다.

홀브루크는 오늘날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분투하는 한편,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의 비공산주의 국가들에 문제와 마찰이 덜 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상황이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이 시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비공산주의 국가들이 공산국가들의 미래의 위협에 대처할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최근 사태들이 북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질문에 박 대통령은 베트남과 중국의 전쟁에 대해 평양의 곤란한 입장을 드러내는 북한 언론의 보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이 자본주의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을 공격한다는 이야기만 들어왔지만, 지금은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이 서로 싸우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은 북한이 인도차이나나 기타 다른 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중국이나 소련의 편에 설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홀브루크는 베트남 전쟁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공산주의 세계가 다시는 국수주의로 일치하지 않을 것이고, 인종 혐오가 공산주의 원칙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의 처사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우위를 매겼는지 물었다. 홀브루크는 캄캄한 경기장에서의 게임에서 누가 이겼는지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아무도 이기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유용한 정보를 더 얻을 때까지 공식적인 대답을 미루기를 원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이 무승부라면 더 강한 쪽이 필시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거라고 했다. 홀브루크는 베트남이 잃은 게 없어서 득을 봤다는 뜻이냐고 물었고, 박 대통령은 베트남이 저항하지 않았으면, 중국이 이겼을 것이고, 베트남이 중국을 몰아낼 수 있었다면, 베트남이 이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지만, 상황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루려고 애를 쓰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홀브루크는 어린 캄보디아를 굴복시키려다 이 지역에 큰 혼란을 야기시킨 베트남의 무능함에 같은 비유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소련이 베트남을 발판으로 이용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장시키려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같은 의미에서 중국의 우세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요약했다. 두 나라의 지속적인 마찰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고, 소련과 중국이 서로 대등한 힘으로 맞서는 동안은 자유 세계는 잃을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난민 - 홀브루크는 태국과 말레이시아에 휩싸인 난민 문제에 대한 미국의 특별한 관심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난민 수용을 더 늘리기 위한 새 정책을 시작했고, 유엔난민기구 예산의 거의 3분의 1을 기부한다고 말했다. 난민들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두 나라는 재정적으로 도움을 줄 입장에 있다고 했고, 두 나라가 그렇게 한다면, 정말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 난민들은 미국 정부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문제라고 했다.
–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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