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에서 인공지능이 각광받는 것은 신약 개발 비용과 소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신약 출시까지 평균 26억달러(약 2조8000억원)와 14년이 걸리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접목되면 비용과 시간을 4분의 1로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근 발 빠르게 인공지능 회사들과 손을 잡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인공지능 왓슨을 보유한 IBM과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영국 GSK와 프랑스 사노피는 영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엑스사이엔티아와 수천억원대의 신약 개발 계약을 맺었다. 미국 제약사 머크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톰와이즈와 손잡고 신경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성과도 이미 나오고 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제약 부문인 얀센과 제휴한 영국 버네벌런트AI는 이미 루게릭병 치료제 2종을 찾아냈다. 미국 바이오기업 수노비온은 엑스사이엔티아와 협업(協業)을 통해 정신질환 치료제를 개발했으며 곧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예정이다. 제약사들이 동물실험 전 단계까지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데 평균 4.5년이 걸린다. 엑스사이엔티아는 인공지능으로 단 1년에 끝냈다.
속도전의 비결은 인공지능의 엄청난 기계 학습 능력이다. 신약이 될 수 있는 화합물의 수는 10의 60제곱으로 태양계의 원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엑스사이엔티아의 경우 인공지능에게 수많은 화합물과 질병과 연관된 인체 단백질의 구조 정보를 담은 빅데이터를 학습시킨 뒤 스스로 인간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패턴을 파악하도록 했다. 공략할 단백질을 지정하면 인공지능이 새로운 화합물을 제시하는 식이다.
또 컴퓨터가 가상 실험과 문헌 분석을 통해 약효를 사전에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연구자 한 명이 한 해 200~300여 건의 자료를 조사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논문 100만 편을 동시에 조사할 수 있다.
기존 약의 효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효능을 찾는다면 더 빠르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진은 1660억 종의 화합물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는데,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시판 중 약과 약효가 같거나 나은 물질을 단 3분 만에 찾아냈다. 미국 아톰와이즈는 인공지능으로 시판 중인 7000여 종의 약 중에 에볼라 치료제가 될 2종을 단 하루 만에 찾아냈다. 기존 방법으로 했다면 몇 년까지 걸릴 일이었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신약 개발이 시동을 걸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신약 개발 인공지능 지원센터 테스크포스팀에 녹십자·한미약품·대웅제약·동아에스티·JW중외제약·보령제약·한독 등 상위 업체 18개가 참여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이미 작년부터 아주대 유헬스정보연구소와 함께 환자의 진료기록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치료제 개발을 하고 있다. 유한양행, 녹십자도 연구소에 축적된 임상시험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출신 박사 3명이 창업한 스탠다임은 국내 바이오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와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아주대·KAIST와도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파로스IBT는 화합물 1200만종과 약물 표적 단백질 200만 종과 최신 논문들을 분석하는 인공지능으로 대장암·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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