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34) 신군부의 ‘북한 개입설’ 조작에 미국 ‘근거 없다’ 발표... 시위는 더욱 확산되고
청와대-백악관 X파일(34) 신군부의 ‘북한 개입설’ 조작에 미국 ‘근거 없다’ 발표... 시위는 더욱 확산되고
  •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8.12.02 14:00
  • 최종수정 2018.12.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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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치 40년 비사 [청와대 백악관 x파일]

[특별취재팀] 한국과 미국은 두가지 문제로 갈등을 거듭했다. 당시 신군부 측은 북한의 개입을 주장하거나 암시하곤 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 일본의 정보원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이같은 소문은 뜬소문으로 확인됐으며, 미국은 한국측에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어 미국측은 “남한에 대한 공격이 임박하다고 믿을 만한 (북한의) 움직임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한국정부는 체면이 손상됐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또 하나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최 대통령 정부의 정치개혁 일정 추진이 지지부진함을 거듭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시위는 격화되고... 김영삼, 김대중 만나 ‘학생 자제 호소해 달라’

글라이스틴은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비상계획 수립에는 계엄령의 조속한 해제와 새로운 선거를 빠른 시일 내에 실시하겠다는 대통령의 분명한 성명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신중한데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최 대통령이 이미 꼭두각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중대한 성명을 내놓을 입장이 못됐다.

더욱이 최 대통령은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던 기간에 10일부터 중동 방문에 나서 관련국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최 대령의 중동방문은 당시 원유 수급문제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중동 국가들과의 유대가 급박했기 때문이었을까?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그가 허수아비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음모였을까? (최 대통령은 국내 사정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일정을 앞당겨 16일 급거 귀국하게 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일 김대중을, 13일 김영삼을 급히 만나 학생들의 자제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두 지도자는 “정부가 하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학생들을 자제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학가가 너무 과열돼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격렬해진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극단적 구호를 내세운 학생들은 최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 전두환의 화형식을 벌였다.

최 대통령이 중동으로 떠난지 4일째인 14일 아침.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이 글라이스틴 대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는 “학생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경우 정부는 전투경찰을 보강하기 위해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2개 여단의 특수부대 병력을 동원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무기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 양측에 군대 동원의 위험을 이미 여러차례 경고했던 글라이스틴은 “학생들의 시위 저지를 위해 경찰력 만으로 대치할지, 군병력을 동원할 지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판단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대사는 군병력 동원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사태 상황. [연합뉴스]
[연합뉴스]

▶경찰 최루탄에도 불구, 수만명으로 불어난 시위대

5월 14일(수) 학생들이 광화문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백명이던 무리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은 중앙청과 청와대에 이르는 지역을 봉쇄하고 있던 경찰 병력을 에워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역에서부터 남대문을 통해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해 한 무리의 학생들을 몰아내면 반대방향에서 다른 무리의 학생들이 다시 밀려들었다. 중앙청과 청와대 진입로를 완전히 봉쇄한 경찰은 수만명의 학생들이 저지선을 넘는 것을 막는데 급급했다.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지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정우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

 

kbs1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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