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경영시대] 대한민국 경제 “디지털세대 어깨 위에 달렸다”
[4.0 경영시대] 대한민국 경제 “디지털세대 어깨 위에 달렸다”
  • 김완묵 산업 부국장
  • 승인 2018.11.07 14:48
  • 수정 2018.11.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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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그룹들 3~4세 체제로 빠르게 전환… 한국경제에 희망과 불안 교차
담소하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왼쪽)와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들을 비롯한 한국 기업 개척기의 오너들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불철주야 뛰어 기업의 토대를 닦았다. [연합뉴스]
담소하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왼쪽)와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들을 비롯한 한국 기업 개척기의 오너들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불철주야 뛰어 기업의 토대를 닦았다. [연합뉴스]

현대그룹을 창업한 아산 정주영이 1954년 4월 고령교 공사를 수주할 때만 해도 이 공사가 평생 기억에 남을 최악의 악몽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살이 빨라 난공사였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5,478환에 수주한 고령교 공사가 1955년 5월 완공됐을 때 적자가 6,500만환이었다. 정주영은 고령교 공사로 진 빚을 갚는 데만 20년이 걸렸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도 엄청난 고난을 거듭 극복하며 기업을 일궈야 했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마산에서 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그러나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으로 은행 대출을 끼고 확보한 200만평 땅은 졸지에 빚더미 폭탄이 됐다. 빈털터리로 대구로 올라와 삼성상회를 설립, 가족들과 공장 모퉁이 손바닥만한 방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국수사업으로 다시 일어서야 했다.

LG그룹의 구인회, SK그룹 최종건, 한진그룹 조중훈, 금호그룹 박인천, 효성그룹 조홍제, 한화그룹 김종희 등 창업주들은 이처럼 일제 치하- 6.25전쟁과 정치적 격랑 속에서 눈물과 땀으로 기업들을 일궜던 것이다.

이들에 이어 30여 년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범현대그룹 계열 정몽구 회장, LG그룹 구본무 회장, LG에서 분리된 GS그룹의 허창수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이 선친들이 일군 기업을 넘겨받아 글로벌 기업으로 꽃피웠다. SK그룹은 1973년 최종건 창업주 타계로 동생 최종현이 이어받아 영역을 넓히다 1998년 세상을 떠난 뒤 최태원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기업들은 ‘3~4세 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허허벌판에서 기업을 일구던 창업주들, 또한 이들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아가며 기업을 키운 2세들과 달리 3~4세들은 대부분 고생 자체를 모르고 자란 세대다.

이들은 대부분 사설 경호원들의 밀착 경호를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유학을 다녀와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진에 올랐다. 비밀번호만 누르면 돈은 얼마든지 나오게 돼 있다. 안되는 일은 왜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세대다.

직원들에게, 고객들에게 갑질을 일삼고, 가정 문제를 일으키는가 하면 마약에 손을 대 사회적 물의를 빚는 사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문제만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부정적으로 보도돼 온 일부 3~4세들 외에는 창업주와 선친 세대들의 유업을 잇기 위해 밤낮으로 부심하며 경영 현장을 뛰는 이들이 많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3~4세 경영자들은 디지털 세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SNS로 소비자들과 직접 접촉하는가 하면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창업주들과 달리 유창한 외국어로 해외 바이어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곤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7월 청와대 기업인 초청 호프 미팅. 대한민국 재계가 2세대에서 3세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한 자리였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7월 청와대 기업인 초청 호프 미팅. 대한민국 재계가 2세대에서 3~4세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한 자리였다. [연합뉴스]

▶막대한 상속세, 지배구조 개편 문제로 곳곳 승계 차질

현재 30대 그룹에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포함해 20여 명의 3~4세들이 경영 승계를 추진하고 있지만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총수들이 후계자를 정했더라도 넘어야 할 산들은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강행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및 순환출자 해소, 공익법인 규제,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이 승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배구조개편과 막대한 상속세, 또 오너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LG그룹은 지난 5월 구본무 회장 별세로 구광모 회장으로 4세 승계를 완료했으나 막대한 상속세 문제가 남아 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LG주식 11.3% 중 8.8%를 상속받았다. 상속세는 7,000억원 대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측은 투명하고 성실하게 상속세 등을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상속세 마련 과정은 첩첩산중이다. LG는 물론 수천억 원 또는 수조 원대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승계인들이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면서 경영권을 넘겨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정의선 부회장을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에 맞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동시에 이룬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주주들의 반발로 한 차례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한 후 공정위의 재벌 개혁 압박까지 받으면서 승계 작업 마무리를 미뤄둔 상황이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 지분 17.08%를 확보한 이재용 부회장이 총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수조 원 감당해야 할 상황이다.

대림그룹 역시 3세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52.26%를 확보했음에도 상속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채 회장 취임을 미루고 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속세 납부 의무가 있는 상속인 또는 수유자는 6개월 내에 상속세를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조석래 회장이 2016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며 3세 조현준 회장으로 일찌감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 조현준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 등을 주장하며 진행해 온 고소·고발 문제로 진통을 겪어왔다.

▶ 승계와 지배구조 완료한 그룹 2개 불과… ‘제도 정비 시급’ 지적

산적한 난제들 때문에 30대 그룹 중 경영 승계뿐 아니라 상속세나 지배구조 개편까지 완료한 곳은 두산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정도에 그치고 있다.

두산은 4세인 박정원 ㈜두산 회장이 지분 5.5%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경영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두산은 집안 내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수행한 뒤 세대를 넘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정몽근 명예회장이 2006년 3세 경영인 정지선 회장에게 지분 17.09%를 증여하면서 승계를 완료했다. 현대백화점은 증여세를 한무쇼핑 지분 10.51%로 해결했다.

재계 주변에서는 3세 경영체제가 원활하게 안착되기 위해 반드시 상속세 관련 법과 경영권 보호 관련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확산되고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팔면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부 자본의 공격을 막을 여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세금문제로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리가 내부적으로 완료된 기업도 최종 승계 작업을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 기업의 3세들은 시간을 갖고 회사 주식을 모으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금이 확보되면 그때 승계 작업을 완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명석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고령의 오너들이 느리고 해묵은 판단력으로 기업을 후퇴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 사이에서는 해외 선진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1주가 의결권 1표가 아닌 경영진이나 최대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차등의결권 하에서 주당 투표권 10개는 전체 주식의 10분의 1만으로도 전체 주식의 90%를 보유한 효과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처럼 한국 기업들도 ‘소유-경영’을 분리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상 ‘가업 승계’ 트렌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재계 3~4세들이 전면에서 활약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고, 이제 그 시대는 선택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승계인들이 제대로 뛰어야 대한민국 경제가 산다.

이제 대한민국은 그들의 어깨 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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