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영화 '그린 북'
[WIKI 프리즘] 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영화 '그린 북'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8.11.29 17:16
  • 수정 2018.11.30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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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 [ATI]
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 [ATI]

피아노 신동 돈 셜리는 클래식 음악에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지만, 흑인이었기 때문에 1950년대 미국에서는 팝 뮤직 피아니스트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린 북》이라는 제목으로 곧 개봉될 영화의 원작자 닉 발렐롱가가 서술한 내용들은 모두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돈 셜리의 활약상을 따라 펼쳐진다.

돈 셜리는 ‘짐 크로우’의 고장 딥 사우스를 깊숙이 돌아다니며, 그의 운전사인 이탈리아 출신 백인 바운서(클럽의 정문 경비) 토니 립과 우정을 나눈다. 딥 사우스는 미국 최남동부 지역, 특히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일컫는다.

‘짐 크로우’는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으로 유명한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작가 발렐롱가는 토니 립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발렐롱가는 토니 립과 돈 셜리의 개인적인 삶을 축복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인터뷰하는 데 몇 년을 소비했으며, 각본은 영감을 준 실제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들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영화의 개봉을 놓고 논란도 적지 않다. 돈 셜리의 가족들은 영화가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셜리의 가족들은 《그린 북》이 ‘백인 구원자’를 그린 영화라고 불만을 표출한다. 토니 립이 셜리에게, 흑인에게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법과 백인 음악을 즐기는 법을 전수하고, 마침내는 흑인으로 가득 찬 나이트클럽에서 고루한(?) 클래식 음악을 포기하고 팝송을 연주하도록 만든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 중 어느 것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은 주장한다. 셜리의 조카는 이 영화가 ‘흑인의 삶에 대한 백인의 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돈 셜리의 실제 삶은 지나칠 정도로 사적인 부분에 묻혀있지만, 논란이 많은 그 여정(旅程)의 앞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영화 《그린 북》을 둘러싼 진실과 관련해 일부 실마리들을 추적할 수는 있다.

돈 셜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진짜 천재였다. 1927년 1월 29일 자메이카의 킹스톤에서 태어난 셜리는 불과 두 살 때 피아노 앞에 섰으며, 9살이 되어서는 워싱턴 D.C.의 레닌그라드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했다. 18살 때 연주회 데뷔를 했고, 19살에는 최초로 작곡한 작품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그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 중 하나로 인정받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천재성을 소유했다. 저명한 작곡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그를 두고, ‘돈 셜리의 천재성은 신으로부터 타고났다’고 칭송했다.

돈 셜리의 천재성은 피아노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8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줄 알았고, 화가로서의 전문성으로도 명성을 얻었으며, 심리학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말까 할 인물로, 보통 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정신을 소유해서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돈 셜리는 당대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피부 색깔 때문에 명성을 얻지 못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들었다. 가장 권위 있던 음악 감독 솔 후록은 셜리에게, 미국의 어떤 청중도 클래식 무대에 선 흑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말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솔 후록은 세계의 뛰어난 콘서트와 오페라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던 기획자이기도 했다.

설 후록은 셜리에게 만일 음반을 팔고 싶다면 흑인들의 음악인 재즈를 해야만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돈 셜리는 재즈 음악가가 되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쇼팽의 음악에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셜리는 팝 연주에 그가 사랑하던 클래식 음악을 가미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은 그가 그의 재즈 곡에 뿌려놓은 클래식 훈련의 영향이 깊게 묻어난 독특한 장르라고 칭송받았다.

그의 특별한 기법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60년대가 시작하면서 그가 ‘돈 셜리 트리오’라고 명명한 재즈 그룹 활동을 하며 천재 셜리는 히트곡 ‘워터 보이’를 통해 베스트셀러 음반 탑 40에 들었다. 그는 듀크 엘링턴과 친구가 되어 그를 위해 연주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셜리는 재즈 뮤직 계의 가장 존경받는 작곡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셜리는 열정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새로 얻은 명성을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오르는 발판으로 삼으려했다. 1960년대에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음반 회사도 그의 음악을 출시하지 않았다.

돈 셜리는 오래된 거장들의 작품을 사랑했던 만큼 재즈에 애정을 쏟지는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이 재즈를 연주한다면 고결함을 불어넣고 싶다’고 주장했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존엄과 고결함을 지닌, 흑인의 음악적 경험. 그것만이 내가 염원하는 일’이라고 말했었다.

셜리는 1982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예인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판을 벌여놓은 나이트클럽에 뛰어듦으로써 연예인으로 평가받는 수모를 스스로 감수했습니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주는 쇼팽의 색채를 많이 띤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편곡은 푸가(둔주곡)에 비교되었고, 그는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다른 재즈 연주자들을 경멸적으로 평가했고, 그들의 무대 위에서의 매너리즘에 불만이 많았다.

“그들은 연주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피아노 위에 위스키 잔을 올려놓기도 하면서도 아더 루빈스타인처럼 존중받지 못하면 화를 냅니다.”

셜리는 음악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936년에서 1967년 동안 판매되던 흑인을 위한 여행안내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안내서 「흑인 운전자를 위한 그린 북」은 흑인들이 도발을 일으키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지역들을 안내하는 책자였다.

1962년 당시 돈 셜리는 토니 립과 실제로 도로 위의 여정에 올랐다.

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 [ATI]
전설적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 [ATI]

《그린 북》에 얽힌 실화

영화 《그린 북》에 묘사된 것처럼, 셜리는 뉴욕시에서 바운서 일을 하던 토니 립을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투숙이 허가되는 호텔들을 찾기 위해 「그린 북」을 활용해야만했다.

여행은 토니 립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셜리를 만나기 전에는 인종적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셜리와 여행을 함께 하면서, 셜리를 연주에 초청했던 바로 그 지역의 레스토랑과 화장실 등지에서 셜리가 거부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63년 토니 립은 셜리에게 인종적 욕설을 내뱉은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영화에 그려진 대로 셜리는 보통 흑인들보다 더 끔찍한 편견과 싸워야했다. 영화는 여행 도중에 셜리가 백인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셜리의 성적 성향은 불분명하다. 각본의 작가인 닉 발렐롱가는 ‘셜리가 단 한 번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셜리는 사생활을 문자 그대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놓았다.

발렐롱가는 자신이 셜리에게 그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셜리는 단 한가지의 요청만 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들려준 대로만 정확하게 만들기 바랍니다. 그러난 내가 죽기 전에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발렐롱가는 셜리의 망설임에는 또 다른 무엇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돈 셜리와의 경험이 토니 립의 인생을 바꿔놓은 점만은 분명하다.

토니 립과 돈 셜리와의 우정은 2013년 두 사람이 다섯 달 간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영화 《그린 북》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셜리의 가족들이 주장하는 대로 셜리 자신의 시각보다는 토니 립의 주관이 더 많이 개입되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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