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아스피린과 더불어 헤로인까지 발명한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
[WIKI 프리즘] 아스피린과 더불어 헤로인까지 발명한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8.12.07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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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을 발명한 펠릭스 호프만 [위키리크스한국 DB]
아스피린을 발명한 펠릭스 호프만 [위키리크스한국 DB]

아버지의 관절염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진통제를 발명했던 펠릭스 호프만은 더 강력한 어떤 약물을 찾아냈다.

펠릭스 호프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약 아스피린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인류는 가장 위험하고 불법적인 마약 헤로인으로부터 시달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펠릭스 호프만은 1868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공장을 운영하였는데, 어린 호프만은 아버지의 공장에서 화학 공정 등의 물질 제작에 관심을 보이고 꿈을 키워나갔다.

호프만은 독일 전역의 약국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뮌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893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호프만의 지도교수였던 아돌프 본 바이엘은 이러한 호프만의 화학과 약학 분야에서의 활약상에 제 빠르게 주목했다. 1905년 염료 합성 업적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바이엘은 호프만에게 당시 독일 제약 및 염료 업계를 주름잡던 기업 바이엘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1894년 호프만은 독일 엘버펠트에 있던 바이엘 회사의 신설 제약연구부에 입사함으로써 스승의 제안에 따랐다.

호프만은 단순히 천연물에서 유효성분을 재생산하기보다는 약으로 쓰일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자하는 연구자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알려진 바대로 그는 또 아버지의 고질적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아스피린의 발명

호프만의 아버지는 전신을 괴롭히는 관절염 때문에 큰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서글프게도 당시에는 이러한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마땅한 진통제가 없었으며, 있다고 해도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환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호프만은 연구를 통해 버드나무 껍질에서 널리 발견되던 물질인 살리실산을 찾아냈다. 1830년 이미 과학자들은 살리실산으로부터 순수물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실험실에서 살리실산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물질은 극심한 복통을 야기해서 일상적으로 복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호프만은 일상적인 복용이 가능하도록 이 합성물질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1897년 8월 10일 식초 속의 유효 화학성분인 아세트산(초산)을 활용하여 화학적으로 순수하고 안전한 형태의 살리실산을 생성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 과학계는 호프만의 발견에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동료 화학자가 그의 발견을 입증해주자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실시되었다. 바이엘의 약학실험실 책임자였던 하인리히 드레서는 이 새로운 물질을 스스로에게 실험해보았다. 이전의 살리실산 추출물은 배탈을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이 심했는데 이 합성물은 이러한 고통을 경감해주고 열을 낮춰주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1917년 뉴욕타임스 아스피린 광고.
1917년 뉴욕타임스 아스피린 광고.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은 ‘아스피린’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아세틸에서 ‘A’를 따고, Spirea(조팝나무)에서 ‘spirin’을 따서 붙였다. Spirea(조팝나무)는 살리실산의 대체 원료가 발견되는 관목의 이름이었다. 아스피린의 발명에는 호프만과 드레서 외에도 호프만의 감독관이었던 아르투어 아이헨그륀의 조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이헨그륀이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업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이엘은 결과적으로 독일의 나치를 지원했던 주요 기업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바이엘은 1899년부터 아스피린을 가루약 형태로 병에 넣어 판매를 시작하였다. 바이엘이 이 상품을 독일에 특허출원했지만 아세틸살리실산이 이보다 먼저 합성된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프만이 생산해낸 것과는 다르게 이 초기의 추출물은 일상에서 복용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하고 안전한 형태의 아세틸살리실산을 추출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이루어져서 바이엘을 세계적 기업이 되도록 했다. 호프만의 아버지는 살리실산에서 발생하는 독성의 피해 없이 고통을 줄일 수 있었으며, 호프만 자신은 아스피린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곧바로 바이엘 제약 부분의 책임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헤로인의 발명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가 숨겨져 있다.

헤로인의 발명

하인리히 드레서는 아편 추출의 합성물이자 모르핀의 완화된 형태인 코데인(codeine)의 진통 효과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코데인이 호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서 호프만에게 살리실산과 같은 과정을 모르핀 연구에도 적용해주기를 바랬다. 그는 코데인을 상품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프만이 모르핀을 아세틸화하자 코데인 대신에 헤로인이 만들어졌다.

헤로인은 특허를 취득하지 못했다. 지독한 중독성 때문이 아니라 헤로인이 이미 1870년대에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자들은 그때까지 헤로인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헤로인은 바이엘에 의해 널리 판매되고 있었다. 기침을 진정시키고, 산통(産痛)과 전투 중에 입은 상해를 완화시켜주는 데 애용되고 있었다. 또, 환자를 마취시키고 일부 정신적인 질병에도 사용되었다.

1900년대 헤로인 광고.
1900년대 헤로인 광고.

호프만의 유산

펠릭스 호프만은 1928년 은퇴해서 부를 누리다가 사망했다. 하지만 1946년 스위스에서 맞이한 그의 말년은 외롭고 쓸쓸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의 125년이 경과한 지금도 호프만의 발명은 애용되고 있다. 아스피린은 진통제와 해열제로 애용되며, 심장질환을 치료하고 심장수술의 회복에도 쓰인다. 또한 아스피린은 혈전의 가능성을 줄이고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데까지 사용될 수도 있다.

아스피린은 지금까지 수백만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만 1년에 적어도 1500만 정의 아스피린이 복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에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심장 질환자의 1/4 정도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자가처방에 따라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헤로인도 아스피린처럼 확산되는 그 어떤 것이 되고 있다. 2017년 미국 한 국가에서만 약 1만5900명이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아스피린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숫자가 언젠가는 헤로인이 망가뜨린 사람들의 숫자를 상쇄할 것이다.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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